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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건축

[지구칼럼] 1만5000년 전 점토 구슬 어린이 지문, 선사시대 역사 다시 쓰다…나투프 수렵채집인 사회 해독 열쇠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1만5000년 전 이스라엘 지역에 살던 나투프(Natufian) 수렵채집인들이 굽지 않은 점토로 만든 142개의 구슬과 펜던트에 남은 어린이·청소년·성인의 지문이 포착되면서, 서남아시아에서의 점토 상징화와 ‘정착 문화의 기원’이 다시 정립될 조짐이 일어나고 있다.

 

eurekalert, discovermagazine, labrujulaverde, Archaeology Magazine, The Jerusalem Post에 따르면, 이 연구 결과는 3월 17일자 미국 과학재단 보도자료와 19일자 국제학술지 Science Advances에 발표된 논문을 통해 전 세계 고고학계에 소개되며, “기능적 도기 이전의 상징적 점토”라는 패러다임 전환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이스라엘 북부 엘-와드(el‑Wad), 나할 오렌(Nahal Oren), 하요님(Hayonim), 에이난‑말라하(Eynan‑Mallaha) 등 네 곳의 나투프 유적지에서 회수된 142개의 점토 구슬·펜던트는 기원전 약 1만5000년 전, 즉 약 1만7000년 전부터 약 1만4000년 전까지 약 3000년에 걸쳐 쓰인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연구 이전까지 전 세계적으로 같은 시기(구석기말~중석기)의 점토 구슬은 겨우 5개만 보고된 바 있어, 이번 발굴은 서남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점토 장신구 집합체이자, 점토의 상징적 사용 시점을 수천 년 단위로 앞당기는 사례로 평가된다.

 

히브리대학교 고고학연구소의 로랑 다빈(Laurent Davin) 박사는 “이번 발견은 점토, 상징주의(symbolism), 그리고 정착 생활의 출현 사이의 관계를 완전히 재정의해 준다”고 말하며, 기존에 ‘농경과 함께 시작된 점토 상징화’라는 가정을 뒤집는 사례라고 강조했다.

 

나투프 문화는 야생곡물 수렵·채집을 하면서도 이미 반영구적 정착과 공동무덤, 석회 플라스터 사용 등 초기 사회집단의 특징을 보이는 집단으로, 신석기 전기 정착 문화의 ‘직접적 전단계’로 일반적으로 평가된다.

 

연구팀은 점토 구슬 표면에 남은 지문 50개를 분석해 제작자의 연령대를 1차적으로 추정했다. 이 숫자는 구석기시대에서 기술적으로 문서화된 지문 집합체 가운데 가장 큰 사례로, 어린이부터 청소년, 성인에 이르기까지 여러 세대가 공동으로 장신구를 만들었다는 직접적 증거가 된다. 일부 구슬은 길이가 몇 센티미터 수준으로 작아, 어린 손에서 형성된 것으로 보인 ‘10세 전후의 지문’이 분석 결과로 제시되기도 했다.

 

또한 너비 약 10mm 정도의 매우 작은 점토 반지처럼, 어린이의 손에 맞춰 제작된 물건들도 확인되면서, 장신구 제작이 단순한 성인의 전문기술이 아니라, 학습·모방·놀이 요소가 섞인 ‘가족 단위 공동 활동’이었음을 시사한다. 다빈 박사는 “ornament making이 일상적 공동 활동이었고, 세대 간 사회적 가치와 기술 전승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142개의 점토 장신구는 원통형, 원반형, 타원형 등으로 형성되었고, 많은 경우 굽지 않은 점토 위에 붉은 황토(붉은 산화철계 물질)를 얇은 액상 점토 층으로 코팅하는 ‘앙고브(engobe)’ 기법으로 색상을 칠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동일시기에서 확인된 가장 초기의 앙고브 사례로, 도기 구운 뒤 채색하는 방식이 아니라, 건조 전 점토에 이미 색상을 부여하는 상징적 작업이 가능했음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19가지로 분류된 구슬 유형 중 상당수가 야생 보리, 아인콘 밀, 렌즈콩, 완두콩 등 당시 나투프인들이 주로 수확·섭취하던 식물의 형태와 매우 유사하다는 점이다. 이 식물들은 후세 농업의 핵심 작물이 될 종들이기 때문에, 점토 장신구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식량·생존의 중심축을 상징적으로 재현하는 매개체였을 가능성을 높인다.

 

수십 년 동안 학계는 서남아시아에서 점토의 상징적 사용이 농경과 신석기 생활 방식이 확립된 이후에야 본격화했다고 예측했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나투프처럼 여전히 수렵·채집을 하면서도 반정착·영구정착을 시도하던 집단에게 이미 점토를 “조리나 식기용이 아니라, 정체성·사회적 위치·세대 간 랠리를 표현하는 매체”로 사용하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히브리대학교 레오레 그로스만(Leore Grosman) 교수는 “이 유물들은 심오한 사회적·인지적 변화가 이미 진행 중이었음을 보여준다”며, 신석기 시대의 뿌리가 우리가 한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고 이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구석기 말기에서 중석기·신석기 전기로 이어지는 ‘정착·농업·사회집단화’의 과정이 단단한 기술적 래더(농경→도기)가 아닌, 상징·의식·정체성이 선행된 ‘문화적 전환’으로 이어졌음을 시사하는 대표적 사례다.

 

이처럼 1만5000년 전 나투프인들이 남긴 점토 구슬과 그 위 어린이의 지문은 단순히 ‘유물’이 아니라, 정착과 농업의 전야에 이미 존재한 상징적 상상력과 사회적 전승 방식을 읽어내는 중요한 열쇠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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