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스페이스=김문균 기자] 영국 서식스 공작 해리 왕자가 2025년 7월, 전쟁으로 황폐해진 앙골라를 다시 찾았다. 이번 방문에서 그는 어머니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1997년 직접 지뢰밭을 걸었던 길, 바로 그곳을 보호복을 입고 다시 밟으며 ‘지뢰 없는 앙골라’라는 숙명을 짊어진 채 현장을 점검했다고 BBC, SKY News, CNN 등의 매체들이 보도했다.
다이애나에서 해리로, 유산의 계승과 전진
해리 왕자의 앙골라 방문은 고(故)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유산을 잇는 상징적 행보다. 다이애나는 1997년 앙골라를 방문, 방호복 차림으로 후암보 지뢰밭을 직접 걸으며 국제사회의 지뢰 반대 여론을 이끌어냈다. 이로 인해 그해 말 ‘오타와 협약(Mine Ban Treaty)’ 체결까지 이끌었다는 평가다.
해리 역시 “아이들이 밖에서 놀거나 학교에 가는 길에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이곳 앙골라에서는 30년이 지나도 전쟁의 흔적이 여전히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앙골라의 지뢰 현실과 HALO 트러스트의 역할
앙골라는 2002년 내전 종료 후에도 여전히 1000곳이 넘는 지뢰밭(67㎢, 서울시 면적의 1/9 규모)이 남아 있다. HALO 트러스트에 따르면 약 8만8000명에 가까운 앙골라인이 내전과 이후 지뢰로 인해 사망·부상했다. 최근 통계로는 2008년 이후에만
6만명 이상이 지뢰로 희생됐고, 2024년 한 해에도 여전히 8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
HALO 트러스트(The HALO Trust, 위험지역 생명지원 기구)는 전 세계 분쟁 지역에서 남겨진 지뢰와 불발탄을 제거하는 국제 인도주의 비정부기구(NGO)로, 1988년 영국과 미국에서 설립됐으며, 본부는 스코틀랜드에 위치해 있다.
1994년 이래 HALO 트러스트는 앙골라 전역에서 12만3000개 이상의 지뢰와 10만여 개의 미폭발탄을 제거했다. 이는 축구장 약 6000~7000개 분량의 토지에 해당하며, 지뢰밭이 마을과 학교, 농지, 인프라로 거듭나는 원동력이 됐다.
특히, 전략적 물류와 경제성장을 좌우하는 ‘로비토 철도 회랑(Lobito Corridor)’ 일대의 지뢰 정화가 완료되면서 국제 교역·투자 활로가 뚫리고, 앙골라 내 국립공원의 생태·관광적 가치도 증대되고 있다.

정부와 국제사회의 투자, 그리고 해리 왕자의 메시지
해리 왕자는 이번 방문에서 앙골라 대통령 주앙 로렌수와 만났으며, 이 자리에서 HALO 트러스트에 대한 향후 3년간의 신규 지원계약을 체결됐다.
앙골라 정부는 2025년까지 완전한 지뢰 해방을 선언하기 위해 총 2억4000만 달러(약 3100억원)에 달하는 재원이 추가적으로 필요하다고 밝혔다. 지뢰 제거 비용은 1평방미터당 약 3달러 수준이다.
이날 해리 왕자는 어린이 대상 안전교육 프로그램에 직접 참여하고, 남아프리카산 대전차 지뢰 2개를 파괴하는 작업에도 동참했다. HALO 트러스트 역시 여성이 전체 인력의 44%까지 참여하는 등 현지화 및 성평등의 변화도 이끌어내고 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과제
앙골라 안팎의 전문가들은 “앙골라가 2025년까지 ‘완전 지뢰 해방’ 국가를 목표로 삼고 있지만, 내전 기간에 군·민간 모두 제대로 지도와 기록 없이 지뢰를 매설해 예측 없는 위험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일부 데이터는 앙골라가 국제협약의 지뢰 제거기한(Article 5)을 준수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해리 왕자는 “지뢰 없는 앙골라라는 목표에 끝까지 연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다이애나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해리 왕자의 행보는 지뢰 피해자의 고통과 국제사회의 책임을 다시금 일깨우는 계기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