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스페이스=김희선 기자]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당근마켓)의 고객센터 상담사들이 “연차 쓰려면 진단서 내라”는 사내 정책에 항의하며 트럭 시위에 나섰다.
이번 사태는 당근서비스(고객센터 운영 자회사) 내부의 노동환경 실태와 조직문화의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며, ‘따뜻한 커뮤니티’라는 기업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조직 내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아파도 연차 못 쓴다”…진단서 강제 요구·징계 협박까지
상담사들은 서울 강남 당근 본사 앞에서 “아파서 연차·반차 쓴다니까 유료 진단서 필수로 내라고요? 안 내면 무단결근이라고요?”라는 문구를 내건 트럭 시위를 벌였다.
실제로 당근서비스는 2023년 4월부터 연차 사용 시, 특히 휴가일 기준 1주일 이내의 연차에 대해 유료 진단서(2만~3만원 상당) 제출을 의무화했다. 가족이 아파서 연차를 쓸 때는 가족 진단서까지 요구한 사례도 있었다. 이를 거부하면 인사팀에서 징계를 언급하며 사실상 ‘협박’이 이뤄졌다는 증언이 나왔다.
노무 전문가들은 “연차 사용을 제한하기 위해 진단서를 요구했다면 이는 근로기준법 위반”이라고 지적한다. 근로기준법 제60조 5항은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연차휴가를 줘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에, 진단서 강제 제출은 명백한 법 위반 소지가 크다.
연차 사용 제한·퇴사 유도…조직 내 불신과 인력 이탈 심화
상담사들은 “월요일, 금요일, 공휴일 다음날엔 연차 사용을 자제하라는 지침이 내려온다”, “여러 명이 같은 날 연차를 내는 것도 금지된다”, “관리자에게 이의를 제기하면 부서 이동이나 업무 배제, 인사팀 옆자리로 이동 등 사실상 퇴사 압박이 가해진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입사자보다 퇴사자가 많고, 남은 인력은 과중한 업무에 떠밀려 연쇄적으로 이탈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내부 증언도 나왔다.

당근의 해명과 현실 괴리
당근 측은 “고객응대가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업무 특성상 팀 단위 일정 관리가 필요해 진단서를 요구했다”며, “올해 중순 노무 자문을 받아 해당 정책을 폐지했고, 현재는 진단서 없이 연차 사용이 가능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현장 직원들은 “정작 공지 받은 적도 없고, 시위 이후 언론 대응을 위해 급히 해명한 것 같다”며 불신을 드러냈다.
‘따뜻한 커뮤니티’와는 딴판…조직 내 신뢰·소통 '빨간불'
당근은 ‘이웃을 잇는 따뜻한 커뮤니티’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내세워왔지만, 정작 조직 내에서는 근로자 권리 침해와 소통 부재, 인사권 남용 등 심각한 신뢰 위기가 드러났다.
실제로 지난해 직장인 대상 설문조사에서도 ‘유급연차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다’고 답한 비율은 50%에 불과했고, ‘없다’는 답변도 23.6%에 달했다. 당근서비스의 사례는 국내 IT·플랫폼 업계 전반에 만연한 ‘연차 통제’ 관행의 민낯을 보여준다.
‘조직문화 혁신’ 없인 신뢰 회복 불가
이번 트럭 시위는 당근이 표방해온 ‘따뜻한 커뮤니티’ 가치가 조직 내에서는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연차 사용 제한, 진단서 강제, 퇴사 압박 등 구시대적 인사관리 관행이 지속된다면, 당근의 대외 신뢰와 내부 결속 모두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근본적 조직문화 혁신과 투명한 소통, 근로자 권리 보장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