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9월 9일부터 10일까지 팔레 데 나시옹에서 개최된 유엔 군축연구소(UNIDIR)에 참석한 국제 우주 전문가와 외교관들은 우주 안보 회의에서 우주 공간을 둘러싼 낡은 국제법과 급속히 심화되고 있는 우주 환경의 위기의 심각함에 뜻을 같이 했다.
ESA Space Environment Report 2025, UNIDIR Outer Space Security Conference, EU Space Act Proposal, European Commission, sciencedirect, Universe Today에 따르면, 우주 파편과 위성 충돌, 그리고 군사화가 가속화되는 궤도 환경에 대응하지 못하는 기존의 국제 우주법은 '와일드 웨스트'와 같은 무법 천지를 만들 위험에 처해 있다고 긴급경고를 제신 한 것이다.
‘와일드 웨스트’란 미국 서부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한 용어로, 19세기 미국 서부 지역에서 법질서가 확립되지 않아 카우보이, 총잡이 등이 무법 상태로 활개 치던 사회적 혼란기와 무법 천지를 의미한다. 즉, 질서와 통제가 미흡해 무법행위가 빈번하고 규제가 부재한 상태를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 ‘와일드 웨스트’라는 말을 쓴다. 이 표현은 보통 무질서하거나 통제가 잘 안 되는 상황, 특히 새로운 영역에서의 경쟁과 갈등이 치열한 환경을 가리킨다.
이처럼 ‘우주 거버넌스의 위기’라고 부르는 문제에 대한 시급함은 반우주 무기에서 통제되지 않는 파편 축적까지, 재앙적인 연쇄 반응을 촉발할 수 있는 다양한 위협의 증가에서 비롯됐다.
낡은 우주 법제,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
1967년 채택된 우주 조약(Outer Space Treaty)은 여전히 대량살상무기 금지 규정을 중심으로 한 기본 틀에 머물러 있다. 민간 기업들이 주도하는 스타링크 위성 등 다수의 상업용 대규모 위성 군집과 복잡한 군사적 활용 현황을 제대로 규율하지 못해 법적 공백이 커지고 있다.
베를린 국제안보문제연구소의 줄리아나 쑤스는 “현대적인 우주 환경의 변화 속도를 국제법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우주국(ESA)의 2025년 우주 환경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지구 저궤도에는 약 4만개의 물체가 추적되고 있으며, 그중 1만1000여개가 활성 위성이다. 위성 밀집 지역에서는 활성 위성 수가 우주 파편과 같은 규모로, 충돌 가능성이 급증하고 있다.
심화되는 군사화와 안보 위협
2022년 10월 러시아가 외국 상업 위성을 합법적인 공격 대상으로 지정한 이후, 우주 공간은 명백한 군사 작전 영역으로 부각되고 있다. 미국은 2019년 창설한 우주군을 중심으로 우주 전장을 각종 전자전, 사이버전, 미사일 방어체계 구축 등으로 확대하고 있으며, 중국과 러시아는 고고도 극초음속 무기 실험과 핵무기 우주 배치를 암시하는 군사 계획을 추진 중이다.
2025년 발표된 군사 우주시장 보고서는 2025년부터 2034년까지 연평균 9.7% 성장하며 미·중·러의 첨단 군사우주기술 경쟁이 가속화될 것임을 예고했다. 특히, 위성 요격 및 방어용 위성 배치 계획들은 우주 군비경쟁의 신호탄으로 평가된다.
유럽·미국, 선제적 규제와 법제 개혁 추진
유럽연합은 2025년 6월 ‘우주법(Space Act)’을 제안하며 우주 서비스에 대한 최초의 포괄적 규제체계 수립에 나섰다. 위성 충돌 회피 의무화, 임무 후 위성 폐기 계획, 환경 지속 가능성 이행 등을 포함하며, 이를 불이행할 경우 전 세계 연 매출의 최대 2%까지 벌금을 부과하는 강력한 조치가 담겼다.
미국은 발사 규제 완화 및 민간 우주산업 활성화 정책과 함께 ‘2025 보안 우주법(Secure Space Act)’을 발의, 국가 안보 위험이 있는 외국 단체의 미국 위성 시장 접근을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우주 파편 증가와 ‘케슬러 신드롬’ 우려
ESA 보고서는 2024년 한 해 동안 3000여개 이상의 우주 파편이 신규 발생하는 주요 분열 사건이 잇따랐다고 밝혔다. 현재 1cm 이상 크기의 우주 쓰레기는 120만개 이상으로 추정되며, 10cm 이상 파편도 5만개를 넘는다. 인공위성과 로켓 잔해는 하루 평균 3회 이상 지구 대기로 재진입하지만, 활용 궤도에서 제대로 탈출하지 못하는 위성이 많아 충돌 위험은 더욱 증대된다.
이로 인해 발생할 ‘케슬러 신드롬’은 연쇄 충돌로 궤도 사용 불가능 사태까지 초래할 수 있어 적극적인 파편 제거와 국제협력 강화를 촉구하고 있다.
케슬러 신드롬(Kessler Syndrome)은 1978년 미국 NASA 과학자 도널드 J. 케슬러가 제기한 이론으로, 우주 공간에 일정 밀도 이상의 인공물체들이 존재할 경우 위성이나 로켓 잔해 등이 충돌하면서 수많은 파편이 생성되고, 이 파편들이 또 다른 물체들과 충돌해 더 많은 파편을 만드는 연쇄 반응 현상을 뜻한다.
즉 이 과정이 반복되면 궤도 전체가 우주 쓰레기로 뒤덮여 결국 인공위성 발사와 우주 탐사가 불가능해질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이르게 된다는 주장이다. 케슬러 신드롬은 마치 도미노 효과처럼 충돌이 충돌을 낳는 피드백 폭주 현상으로, 현대 우주활동에 심대한 위협으로 간주된다. 즉, 케슬러 신드롬은 우주 공간에서 쓰레기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인류의 우주 진출과 위성 활용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잠재적 재앙 시나리오를 의미한다.
유엔 군축연구소 로빈 가이스 소장은 “우주는 전 세계 평화와 안보를 떠받치는 필수 인프라지만, 가해지는 압력은 점점 심하다”며 “이번 회의는 와일드 웨스트로 전락하는 우주를 막기 위한 국제 공조의 분수령”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 제네바 회담은 국제사회가 우주 안전과 질서 유지를 위해 법적, 기술적, 정치적 대응을 강화하는 중대한 기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우주 산업과 국가 안보의 교차점에 자리한 이슈인 만큼 다자간 협력을 통한 실질적 규범 제정과 민간-공공 영역 협력이 더욱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