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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건축

[지구칼럼] '호랑이 줄무늬’ 진화의 비밀, 온라인 게임 밝혔다…해답은 햇빛과 그림자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과학자들이 1000명 이상이 참여한 온라인 게임을 통해 호랑이가 왜 특유의 줄무늬를 진화시켰는지를 밝혀냈다.

 

영국 엑서터 대학교와 브리스톨 대학교 연구진의 연구에 따르면, 호랑이 줄무늬처럼 강한 대비를 이루는 무늬는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환경과 키 큰 풀밭이나 숲 속 덤불처럼 복잡한 3차원 서식지에서는 눈에 띄기 어려운 반면, 흐린 하늘 아래나 짧은 풀밭처럼 단순한 환경에서는 오히려 단조로운 무늬가 더 효과적인 위장 수단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사광선 아래에서는 호랑이처럼 줄무늬가 뚜렷한 고대비 패턴이, 흐린 날과 단순한 환경에서는 오히려 단색에 가까운 무늬가 더 강력한 위장 효과를 낸다는 연구결과가 온라인 게임을 통해 정량적으로 검증된 셈이다. 햇빛과 서식지 구조가 포식자 무늬의 진화 방향을 어떻게 결정하는지 데이터를 기반으로 보여줬다.

 

‘숨바꼭질 게임’이 된 진화 실험실


연구진이 설계한 온라인 게임의 구조는 단순하다. 참가자들은 자연 서식지 사진 위에 숨겨진 작은 구체(sphere)를 화면에서 찾아 클릭해야 한다. 영국 전역 28개 서식지(키 큰 풀밭, 관목, 숲 가장자리, 초지 등)를 대상으로 각각 직사광선 조건과 간접광(그늘·흐린 날) 조건에서 촬영한 이미지를 배경으로 사용했다.

 

게임의 핵심은 ‘디지털 자연선택’ 알고리즘이다. 어떤 구체가 플레이어에게 가장 늦게 발견되면, 그 구체의 패턴이 ‘위장이 가장 잘된 개체’로 간주돼 다음 세대의 패턴 설계에 더 많이 반영된다. 연구는 총 20세대에 걸쳐 진행됐으며, 매 세대마다 가장 늦게 발견된 패턴 쌍을 조합·변형해 새로운 패턴 집단을 만들고, 다시 이용자들에게 “찾기 게임”을 시키는 방식으로 반복됐다.

 

이 과정은 실제 자연에서의 진화 메커니즘과 구조적으로 상당히 유사하다. 자연환경에서는 ‘포식자에게 가장 늦게 들키는 개체’가 더 오래 살아남아 번식할 가능성이 높고, 그 형질이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 게임에서는 생존과 번식 대신 ‘발견 시간’이라는 수치를 적합도(fitness)로 치환한 것이다. 엑서터대 생태보전센터의 조지 핸콕 박사는 “우리는 디지털 진화를 이용해 실제 자연선택의 방향을 실시간으로 시뮬레이션했다”고 설명했다.

 

햇빛 쏟아질수록 줄무늬가 유리했다

 

연구진이 세대별 패턴 변화를 분석한 결과, 조명 조건과 서식지 구조에 따라 ‘진화해 가는 무늬’의 방향이 뚜렷하게 갈렸다. 직사광선이 강하게 비치는 사진과 3차원 구조가 복잡한 배경(키 큰 풀, 관목, 울창한 수풀 등)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다음 세대 구체에 아래와 특징이 두드러졌다. 

 

▲몸통 전체에 걸친 강한 고대비(밝고 어두운 부분의 차이가 큼)  ▲수직·사선 방향으로 길게 이어지는 줄무늬 패턴의 증가 ▲위는 진하고 배는 연한 역음영(countershading) 형태의 명암 배치 ▲몸의 윤곽을 흐리게 만드는 가장자리 교란(edge disruption) 효과 강화 등이다.

 

이는 실제 호랑이의 체색·체형과 놀라울 정도로 겹친다. 호랑이는 황갈색 바탕에 짙은 검은 줄무늬를 갖고 있는데, 줄기는 수직으로 뻗은 나무와 풀, 그리고 햇빛이 만들어내는 긴 그림자와 시각적으로 결을 맞춘다. 햇빛이 강한 정글·사바나 가장자리에서 긴 줄기와 가지, 풀 사이로 쏟아지는 빛은 불규칙하면서도 방향성이 있는 줄무늬 그림자 패턴을 만들어낸다.

 

핸콕 박사는 “햇빛이 비치면 그림자가 배경을 더 복잡하고 방향성 있게 만든다. 키 큰 식생이 있을수록 이런 효과는 극대화된다”며 “호랑이 줄무늬는 바로 이 ‘줄무늬 그림자’와 동기화된 위장 패턴”이라고 설명했다.

 

반대로, 흐린 날이나 그늘처럼 간접광이 우세하고 배경이 평평하고 단순한 서식지(짧은 풀, 개활지 등)에서는 진화 방향이 달라졌다. 이 조건에서 구체들은 무늬 대비가 낮아지고, 큰 덩어리 위주의 단순한 색 패턴을 띨수록 더 잘 숨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복잡한 그림자가 사라진 환경에서는 줄무늬·점무늬보다 ‘큰 색 덩어리’가 배경과 섞이기 유리하다는 것이다. 이는 사막·초원에 사는 사자·가젤 등 많은 대형 포유류가 상대적으로 단색에 가까운 체색을 가진 이유와도 맥이 닿는다.

 

연구진은 또 하나의 포인트로 포식자 활동 시간대를 지목했다. 많은 대형 포식자들이 새벽과 황혼(일명 “박명 시각”)에 가장 활발히 움직이는데, 이때 태양은 낮보다 훨씬 낮은 고도에서 빛을 쏘며 긴 그림자를 만든다. 긴 그림자가 촘촘히 겹쳐지는 이 시간대에는 배경의 시각적 복잡성이 극대화되면서 줄무늬·점무늬 같은 고대비 패턴의 위장 효과가 한층 강화된다.

 

‘줄무늬의 진화’와 기존 이론의 만남


호랑이 줄무늬의 진화에 대해 과학계는 오랫동안 “위장 효과를 극대화한 자연선택의 결과”라는 설명을 제시해 왔다. 여기에 1952년 앨런 튜링이 제안한 반응-확산(reaction–diffusion) 이론, 이른바 ‘호랑이 줄무늬 이론’은 세포 수준의 패턴 형성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수학적으로 설명해 왔다.

 

이번 엑서터·브리스톨대 연구는 그 흐름 위에 “어떤 환경·어떤 조명에서 어떤 패턴이 실제로 덜 들키는지”를 행동 데이터와 시간 측정값으로 정량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기존 연구가 주로 이론·모델·사진 분석에 의존했다면, 이번 실험은 1,000명 이상 일반 이용자의 시지각 반응을 이용해 ‘실전 위장 테스트’를 한 셈이다.

 

즉, 유전·발생 단계에서 튜링식 패턴 생성 메커니즘이 줄무늬·점무늬를 가능하게 했다면, 그중 어떤 패턴이 장기간에 걸쳐 살아남았는지는 햇빛, 그림자, 서식지 구조와 같은 환경 요인과 포식·은폐 전략에 의해 선택됐다는 그림이 보다 구체화된 것이다.

 

서식지 조명 바뀌면 ‘위장 전략’도 위험해진다


연구진은 이번 결과가 보전생물학에도 직접적인 경고 메시지를 던진다고 강조한다. 토지 이용 변화, 산림 벌채, 도시화, 조명 공해, 그리고 기후 변화로 인한 구름 양·강수·식생 구조의 변화는 야생동물의 위장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

 

예를 들어, 숲 가장자리와 키 큰 풀밭이 사라지고 단순한 초지나 농경지로 대체된다면, 그 환경에 최적화된 줄무늬·점무늬 위장 전략은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인공 조명 확대로 밤과 박명 시간대의 명암·그림자 패턴이 바뀌면, 오랜 세대에 걸쳐 특정 시간대에 최적화된 포식·은폐 전략 역시 교란된다.

 

엑서터대 졸리언 트로시안코 박사는 “조명과 서식지 구조의 변화가 특정 종의 생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이해하는 것은, 이미 개체수가 줄고 있는 대형 포식자에게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 따르면, 벵골호랑이·아무르호랑이 등 대부분의 호랑이 아종은 취약(VU) 이상 등급으로 평가되며, 야생 개체수는 전체 합산 기준으로 5,000마리 안팎에 그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크고 눈에 띄는 동물일수록 밀렵·서식지 파괴에 취약한데, 여기에 “위장 전략 자체의 효율 저하”라는 추가 리스크가 얹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시민참여형 온라인 게임이라는 형식을 빌렸지만, 본질적으로는 “빛과 그림자라는 물리 환경이 동물의 색과 무늬의 진화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밀어왔는가”에 대한 정량적 답변을 던진 실험이다. 햇빛이 만드는 줄무늬 그림자는 더 이상 배경이 아니라, 호랑이 줄무늬를 설계한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공진화 파트너’였다는 점이 데이터로 확인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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