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10월 25일은 대한민국 최동단의 섬 독도를 기념하는 ‘독도의 날’이다.
단 하루의 기념일이지만, 그 안에 담긴 125년의 역사는 한 국가의 근대화, 주권, 자긍심을 압축해 보여준다. 대한민국의 영토 가운데 가장 작은 섬, 그러나 그 존재감은 가장 크다.
독도는 매년 수많은 뉴스에 오르내리지만, 그 심해와 땅속, 그리고 그곳을 지켜온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1.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서 시작된 날
1900년 10월 25일. 대한제국 고종 황제는 칙령 제41호를 반포해 울릉도를 ‘울도군(鬱島郡)’으로 승격시키고 그 관할 구역에 죽도(竹島)와 석도(石島)를 포함시켰다. 여기서 석도가 바로 오늘날의 독도다.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2000년 민간단체 ‘독도수호대’가 ‘독도의 날’을 제정했다.
2. 동해를 품은 독도의 생태·지질학적 가치
독도는 단순한 바위섬이 아니다. 460만년 전 용암이 굳어 형성된 화산섬으로, 해저산의 진화 과정을 보여주는 세계적 지질유산으로 평가받는다. 섬 전체가 화산암과 화산쇄설성 퇴적암류로 구성되어 있으며, 1982년 천연기념물 제336호로 지정됐다. 동도(높이 98.6m)와 서도(높이 168.5m)를 중심으로 89개의 바위섬이 흩어져 있어 총 91개의 섬으로 이루어진다.
이곳에는 괭이갈매기를 비롯한 150여 종의 조류와 희귀 식물, 해양생물이 서식하며, 독도 주변 해역은 해삼·문어·대구 등 어장이 형성된 풍부한 생태 보고이기도 하다.
3. 해양주권의 상징, 그리고 안보의 최전선
독도는 지정학적으로 대한민국의 ‘해양주권 전초기지’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조사에 따르면, 만약 독도를 상실할 경우 남한 면적의 60%에 해당하는 해양영토(약 6만574㎢)를 잃게 된다. 또한 북태평양 방위 체계상 한국·일본·러시아의 해상항로가 교차하는 요충지로, 군사·안보적으로도 전략적 가치가 막대하다. 러일전쟁 시기 일본군이 독도를 군사용 중계기지로 점거하려 한 기록이 남아 있듯, 이 작은 섬은 과거부터 동북아 세력 균형의 핵심 축이었다.
4. 2000m 아래 숨은 수중화산의 비밀
사람들이 눈으로 보는 독도는 전체의 3%에 불과하다. 수면 아래에는 실제로 ‘독도 해산’이라 불리는 거대한 화산체가 자리 잡고 있다. 이 해산의 깊이는 무려 2000m.
과학자들은 “독도는 이미 사라진 거대 화산의 마루 부분”이라며, 지질학적으로 동해판의 움직임을 연구하는 핵심 포인트라 평가한다. 독도 서쪽 아래에는 ‘탐해해산’과 ‘동해해산’이 존재해, 독도가 사실상 바닷속 거대한 화산지대의 꼭대기라는 점도 흥미롭다.
5. 메탄하이드레이트, 바다 밑의 ‘하얀 황금’
독도 인근 해저에는 천연가스의 대체 자원으로 불리는 메탄하이드레이트가 6억톤 규모로 매장돼 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개발 가치만 최소 300조원 규모에 달한다. 메탄하이드레이트는 얼음 속에 천연가스가 갇힌 고체 에너지로, 일본과 중국이 독도를 탐내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이 ‘바다 밑의 백금’은 향후 한국의 에너지 안보와 직결된 숨은 보물이다.
6. 생존과 저항의 기억, 독도 해녀와 어부들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제주의 해녀들이 생계를 위해 독도까지 건너와 물질했던 사실은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그들은 바위굴에 머물며 세 달 이상 해조류와 전복을 채취했고, 바람과 파도 속에서도 바다와 싸웠다. 해녀들의 ‘독도 생활사’는 독도의 실효지배가 단순한 행정적 개념이 아니라, 사람의 몸으로 증명된 역사라는 점을 보여준다.
7. 멸종된 ‘독도 강치’, 바다의 수호신이 남긴 흔적
100여년 전, 독도는 강치(바다사자, Eumetopias jubatus stelleri)의 천국이었다. 한때 4만 마리가 넘는 강치가 서식했으나, 1905년 일본 어선들이 가죽과 지방을 얻기 위해 1만4000마리가량을 대량 포획하면서 멸종됐다. 독도 해안 절벽 주위에는 지금도 강치의 뼈가 발견되기도 하며, 이들은 ‘독도의 수호신’이라 불린다. 강치의 멸종은 독도가 겪은 ‘침탈의 기억’을 상징하는 생태적 증언이다. 한국과 일본 모두 ‘독도 강치의 멸종을 인정하고 있으며, 일본 시마네현에도 표본 박제가 보존되어 있다.
8. 1만2000그루의 나무, 그리고 단 30그루 생존
1990년대 초, 독도를 푸르게 만들기 위한 식수 사업이 추진됐다. 울릉도에서 1만2000그루의 나무를 옮겨 심었지만, 강한 염분과 거센 바람, 토양 부족으로, 거의 대부분 고사했고 생존률은 극히 낮다(1% 이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섬초롱꽃, 독도사철나무, 참소리쟁이 등은 여전히 낮게 엎드려 생존 중이며, ‘바위에 뿌리내린 존재의 은유’로 읽힌다.
9. 독도의 진짜 주인 ‘괭이갈매기’
봄이면 독도는 괭이갈매기의 왕국이 된다. 약 1만 마리가 독도를 뒤덮고, 서로 둥지 자리를 두고 싸우기도 한다. 새끼가 태어나 성체가 될 때까지 독도를 떠나지 않는 까닭에 ‘봄의 주인은 갈매기’라 불린다. 최근에는 동해 수온 상승으로 괭이갈매기의 산란 시기가 점차 앞당겨지고 있으며, 이는 기후위기의 징후로 해양생태 변화의 상징처럼 불린다.
10.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시간의 섬’
독도는 대한민국에서 해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땅이다. 1월 한겨울이면 오전 7시 26분경, 동도 정상에서 첫 햇살이 수평선을 가른다. 독도의 일출은 한국 천체관측 기준점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으며, ‘시간의 시작점’이라는 신화적 의미까지 지닌다. 다만 하지철에는 위도가 달라 울릉도 또는 함경북도 나진 인근이 더 빠르다.
11. 독도의 심해, 미지의 생명체가 사는 곳
KBS 다큐팀이 심해 2600m를 탐사한 결과, 이전에는 확인되지 않았던 신종 심해생물들이 포착됐다. 바다 밑에는 형형색색의 해면동물, 산호류, 그리고 미확인 희귀 심해생물들이 존재하며, 이는 우리나라 바다 생물주권의 새로운 연구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12. 독도의 문화·역사와 유래
독도는 512년 신라 지증왕 때 이사부 장군이 우산국을 정벌하면서 우리 영토로 포함시킨 이후 여러 문헌에 ‘우산도(于山島)’·‘삼봉도(三峰島)’ 등으로 등장한다. 흥미롭게도 19세기 서양 항해자들은 이 섬을 프랑스 탐사선 ‘리앙쿠르호’의 이름을 따 ‘리앙쿠르 암초(Liancourt Rocks)’라고 기록했다.
또 독도의 이름 ‘독(獨)’은 경상도 방언 ‘돌섬(독섬)’에서 비롯됐다. 돌로 이루어진 섬이라는 의미가 세월을 건너 한자로 옮겨지며 ‘독도(獨島)’로 정착된 것이다.
13. 오늘의 독도, 내일의 바다
현재 독도에는 독도경비대, 등대관리원, 울릉군 공무원 등을 포함해 약 40여명이 상주하며 실효지배를 이어가고 있다. 연간 20만명 이상이 입도 신고를 하고 방문할 정도로 국민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독도는 단지 동해 한가운데 떠 있는 섬이 아니다. 125년 전 고종의 칙령이 품었던 ‘자주국가의 선언’이 오늘날 주권의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한반도의 물리적 공간을 넘어 정신적 영토가 되어가고 있다.
오늘 10월 25일, ‘독도의 날’은 공간사회학적으로 한 국가의 정체성과 기억이 물질적 공간 위에서 어떻게 재구성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울릉도에서 동해를 바라볼 때, 저 멀리 떠오르는 두 개의 바위섬은 단지 섬이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의지’ 그 자체다.
두 점의 바위가 만든 복합영역 ‘독도’는 단순한 영토가 아니라, 기억과 생태와 인간의 시간이 층층이 쌓인 ‘살아 있는 기록 장치’다. 공간사회학의 시선으로 보면, 독도는 물리적 장소를 넘어 ‘국가적 정체성의 기억 장소(lieux de mémoire)’이다.
그 바위 위에서, 그리고 그 바다 밑에서 대한민국은 여전히 숨 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