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스페이스=김혜주 기자] 국내 성인 대상으로 실시된 최근 설문조사에서 “당신보다 더 힘든 사람도 많아요”라는 말이 우울증 환자에게 가장 상처가 되는 말 1위로 선정됐다.
임상우울증학회는 2025년 9월 16~22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남녀 1195명(남성 270명, 여성 925명)을 대상으로 ‘우울증 환자에게 위로 또는 상처가 되는 말’ 조사(PHQ-2 기준)를 진행했으며, 응답자 중 40.8%(488명)가 우울증이 의심되는 집단으로 분류됐다.
해당 집단에 “당신보다 더 힘든 사람도 많아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상처가 된다는 응답은 86.9%로 집계됐는데, 비우울 집단(68.8%)보다 약 18%p 높았다. “너무 예민한 것 같으니, 편안하게 생각하세요.” “힘내세요,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운동이나 취미 활동을 하면 나아질 거예요.” 등도 환자군에서 더 높은 상처 반응(79.8%/68.9%/67.1%)을 보였다.
같은 표현에 대해 비환자군은 33.2~37.1%에 머물러 확연한 인식 차이를 확인시킨다. 이는 단순한 조언이나 비교, 긍정 강요가 환자에게 부담과 자책, 고립감을 키울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울증 환자에게 가장 상처가 되는 말을 1위부터 10위까지 순위대로 나열하면 아래와 같다.
1위 당신보다 더 힘든 사람도 많아요 (77%)
2위 너무 예민한 것 같으니, 편안하게 생각하세요 (68.6%)
3위 괜찮아질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시간이 해결해 줄 거예요 (51.2%)
4위 힘내세요,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68.9%) [환자군 기준, 비환자군 37.1%]
5위 운동이나 취미 활동을 하면 나아질 거예요 (67.1%) [환자군 기준, 비환자군 33.2%]
6위 마음 좀 강하게 먹어요
7위 다 잘될 거예요. 다들 한 번쯤 겪는 일이에요
8위 나도 힘들어, 너만 그런 게 아니야
9위 별것도 아닌 일 가지고 왜 그래?
10위 노력해 봐, 밖에 나가서 움직이기라도 해봐
상위 5개 항목은 실제 설문조사 통계 수치 기반이며, 6~10번은 정신건강 전문의와 글로벌 자료에서 반복적으로 상처 발언으로 등장한 사례를 추가 정리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우울증 환자 누군가에게는 단순 조언·비교·긍정 강요가 독이 될 수 있음을 반드시 주의해야 한다"는 강조했다.
반면, “이야기하고 싶을 때 말해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니 죄책감 갖지 마세요”, “천천히 한 걸음씩 나아가도 괜찮아요”, “이 길을 함께 걸을게요”,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에요” 등 공감 및 지지의 언어는 80% 이상이 위로로 받아들였다는 점이 대조적이다.
특히 여성은 “우리는 이 어려움을 함께 헤쳐나갈 수 있어요”, “기분이 돌아올 수 있도록 우리가 함께 할 거예요” 등 공감적 표현에서 남성 대비 평균 점수가 높았고, “혼자가 아니에요” 등 격려성 언어도 여성 집단에서 더 긍정 평가를 받았다. 성별에 따라 위로 표현 수용 방식에서도 유의미한 차이가 발생했다.
해외 연구에서는 우울증 집단이 임상 인터뷰 등에서 부정적 평가 단어와 부정적 감정 단어 빈도가 더 높다는 것이 여러 차례 확인됐다. 남녀 간 언어 사용에서는 남성이 더 부정 감정 단어, 자기지칭어 사용 빈도가 크며, 우울증 상태일 때 이 경향이 더욱 심화되는 것이 통계적으로 입증되었다(F값, p<0.001 등). 국내 조사결과와 결합하면, 단순한 긍정 동기부여보다는 개별적 상황과 감정 존중, 공감·지지 언어가 우울증 환자의 심리적 안정에 필수임을 시사한다.
특히 실손보험 등 정신건강 진단 관련 사회적 차별도 존재했다. 정신질환을 진단받은 뒤 실손보험 가입/보험청구 등에서 불이익 경험은 9.8%에 달했고, 2016년 표준약관 개정 이후에도 가입자(11.9%)가 비가입자(6.7%)보다 높은 차별 경험을 보고했다. 사회적 편견·차별 완화와 맞춤형 소통전략 마련이 시급하다는 경고다.
이번 조사를 주도한 서울아산병원 김영식 명예교수는 “언어적 위로의 수용 방식이 성별, 우울증 여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며 “조건 없는 지지와 공감, 감정 수용이 환자에게 더 크게 힘이 된다”고 밝혔다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우울증 환자를 위한 진정한 위로란 조언·비교·긍정 강요보다 ‘진심 어린 공감’과 ‘감정 받아들이기’에 있다"며 "위기와 상처의 순간에, ‘내가 당신 곁에 있다’는 말 한마디가 무엇보다 큰 치유의 힘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