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변에서 위고비, 마운자로 등 GLP-1 계열의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는 말을 부쩍 자주 듣는다. 눈에 띄게 달라진 동료들을 보면 솔직히 마음이 흔들린다. 저렇게 빠르게 다이어트가 가능하다면 나도 한번 해볼까 싶다가도 금세 머뭇거리게 된다. 요요가 두렵기도 하고, 장기 부작용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약물이라는 점도 마음에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련은 남지만 선뜻 시도가 어렵다. 이 신약이 불러온 변화는 단순한 다이어트 혁명만이 아니다. 경제학을 공부했던 나에게 이 약물이 흥미로운 이유는 따로 있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인간이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이유를 '현재 편향'으로 설명한다. 지금 당장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욕망이 건강한 미래보다 항상 더 강하게 작동한다는 것이다. 수천 년간 인류는 수많은 욕망들과 대립하며 의지로, 습관으로, 환경 변화로 힘겹게 싸워왔다. 그런데 이 약물은 그 싸움의 판 자체를 바꿔버렸다. 욕망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욕망이 작동하는 메커니즘 자체를 재설계한 것이다. 더이상 더 먹고 싶은 나와 힘겹게 싸우지 않아도 되게 만들어준다. 자본주의의 가장 강력한 연료였던 욕망이라는 본능을 약물이 조용히 덮어쓴 셈이다. 최근 내가 다
나는 주린이다. 얼마전 돈이 생겨서 소소하게 투자를 시작했다. 요즘 같은 불장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주식을 투기나 위험한 것으로만 치부했던 적도 있었으나, 공부를 해보니 세상이 달라져 있었다. ETF 같은 안정적인 지수 투자 상품이 늘어났고, 연금저축이나 IRP, ISA 등 제도를 활용해 현명하게 절세하며 장기 자산을 모아갈 방법도 많다는 것을 새롭게 깨달았다. 주식은 일희일비하는 단기 도박이 아니라, 적어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의 미래 가치에 동행하는 여정이라는 본질도 조금씩 알아가던 참이었다. ◆ 주린이의 평온은 오래가지 않았다 하지만 시장은 초보 투자자의 얄팍한 평온을 가만두지 않았다. 거침없이 급등하던 증시는 지난주 금요일 미국 고용지표 우려와 기술주 폭락의 직격탄을 맞더니, 월요일까지 무서운 기세로 하락했다. 화면을 보는 내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지금 팔아야 하나?' ◆ 두려움은 언제나 먼저 도착한다 두려움이 엄습했다. 주식은 예측이 아니라 대응이라고 했다. 하지만 초보에게 가장 힘든 건 '내 판단이 옳은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 불확실성이 공포를 키웠다. 실제로 오늘 시장에서는
얼마 전, 한 대학교의 학생들이 우리 회사를 방문했다. 나는 그들을 대상으로 회사의 가치체계와 ESG 경영에 대한 강의를 진행했다. 강의 후 기후변화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질문이 오갈 것이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끝난 후 쏟아진 질문은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지금부터 어떤 준비를 해야 기업에 입사할 수 있을까요?" "학점이나 자격증 외에 면접관의 눈을 사로잡는 진짜 팁이 무엇인가요?" 빛나는 눈으로 '어떻게 해야 취업할 수 있는지' 묻는 청춘들을 보며, 문득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졌다. ESG 경영이라는 거시적 담론보다 그들에게 당장 시급한 것은 '생존'과 '안정'이 걸린 취업 방법이자 합격 팁이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채용은 점점 더 힘들어질 테고 청춘들의 불안은 깊어만 가는데, 그 절박한 눈빛들 앞에서 인사담당자로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마음이 무거웠다. ◆ 평생직장의 소멸과 상시화된 커리어 불안 이러한 풍경은 비단 대학교 강의실만의 일이 아니다. 최근 고용 시장의 흐름을 보면, 글로벌 기업들을 시작으로 대규모 인력 감축이 상시화되고 있으며 꼭 필요한 영역이 아니라면 더 이상 신규 채용을 하지 않는 기조로 시대가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 회사 역시 개
얼마 전 TV에서 서커스 공연을 봤다. 한 저글러가 가느다란 막대 위에 수십 개의 접시를 올려두고 동시에 돌리고 있었다. 하나라도 멈추면 금세 떨어질 텐데, 이상하리만큼 표정은 평온했다. 비결을 찾아보니 의외로 단순했다. 그는 모든 접시를 붙잡고 있지 않았다. 속도가 느려지는 접시에만 다가가 짧고 강하게 회전력을 더해줄 뿐이었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문득 내 모습이 겹쳐졌다. 임원이 된 뒤 내 이메일 함에 매일 수십 개의 ‘업무 접시’가 올라온다. 하고 싶은 일은 산더미고 열정은 그야말로 '만렙'인데, 왜 나는 저 저글러처럼 평온하지 못할까. 왜 늘 숨이 차 있고, 무언가를 놓칠까 불안한 채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을까. ◆ “담당님, 저희가 속도를 못 따라가겠어요” 임원이 되고 가장 먼저 부딪힌 벽은 ‘속도의 불일치’였다. 성과를 위해 더 빨리, 더 멀리 내달리고 싶은 나의 의욕과 달리, 현장의 보폭은 그만큼 빠를 수 없다. 사실 리더의 과도한 열정은 때로 구성원들에게 영감이 아닌 '질식'으로 다가간다. 숨이 턱 끝까지 찬 팀원들의 눈빛을 보며 생각했다. 리더의 열정에는 '속도 조절'이라는 브레이크가 필요하다는 것을. 리더가 모든 접시를 직접 손에 쥐고 뛰면
오늘 아침 출근길, 4년 차 팀장을 마주쳤다. 짧은 인사 끝에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담당님, 왜 갈수록 리더라는 자리가 더 어렵고 조심스러울까요? 처음엔 열정으로 다 될 줄 알았는데, 이젠 제가 정말 좋은 리더인지 잘 모르겠어요." 낯설지 않은 질문이다. 나 역시 3~4년 차 팀장 시절, 스스로의 자질을 의심하며 내 상사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임원의 자리에 올라와 보니 비로소 알게 됐다. 이러한 혼란이야말로 리더십 교육이 필요한 이유라는 것을 말이다. ◆ "리더십 교육 내용은 너무 뻔하지 않나요?" 가장 많이 듣는 질문 리더십 교육을 기획하거나 진행하다 보면 반드시 마주하게 되는 시선이 있다. "어차피 다 아는 말 아닌가요? 뻔한 이야기네요." 틀린 말은 아니다. '경청하라, 신뢰를 쌓아라, 구성원의 강점을 발견하라' 등 리더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이야기들을 배운다. 그렇다면 왜 이 뻔하고 다 아는 말을 우리는 반복해서 들어야 하는 걸까. 여기서 질문 하나를 던져보자. '아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은 과연 같다고 할 수 있을까. ◆ 앎과 행동 사이의 간극, 교육이 반복되어야 하는 이유 현장에서 다양한 계층의
◆ "그럼 저는요?" 요즘 AX 관련 다큐나 뉴스 인터뷰가 부쩍 늘었다. 얼마 전 본 프로그램에서 공장 자동화를 도입한 기업의 직원이 카메라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계가 내 일을 더 잘하는 건 알아요. 근데… 그럼 저는요?" 짧은 한 마디였다. 하지만 기업 현장에서 이런 변화를 체감하는 나는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 사실 저 질문은 AI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이미 나온 말이다. ◆ '더 빠르게, 더 정확하게.' 최근 기업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내뱉는 주문이다. AX(AI Transformation)가 시대의 화두가 되면서 업무 프로세스의 효율화와 시스템 최적화는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비단 AI만의 문제가 아니다. ERP가 도입될 때도, 새로운 성과관리 체계가 세워질 때도 조직은 늘 비슷한 진통을 겪어왔다. 그리고 그 진통의 진원지는 언제나 사람을 향해있었다. ◆ 효율성이라는 이름의 '불편한 진실' 회사가 새로운 제도와 시스템을 설계할 때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따지는 것은 당연하다. 투입 대비 산출을 극대화하여 기업의 기초 체력을 기르는 것은 경영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직시해야 할 불편한 진실이 있
학습혁신담당으로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팀원에게 질문을 받았다. "담당님은 이 업무를 안 해보셨잖아요. 근데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적응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내세요?" 칭찬보다는 순수한 궁금증으로 보였다. 본인이 수년간 다뤄온 교육 실무 영역이 나에게는 처음 맡는 영역이라 생소할 텐데, 어떻게 맥락을 금방 파악하고 속도감 있게 움직이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잠깐 생각해보다가 꽤 명확하게 대답했다. "기획의 본질은 콘텐츠, 그러니까 내용물이 아니라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방법'에 있어요. 콘텐츠는 매번 달라지지만, 구조를 세우고 맥락을 읽고 사람들을 움직이는 흐름을 설계하는 건 어떤 아젠다든 동일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는 주니어 때부터 '무엇의 전문가'가 아닌, 콘텐츠에서 자유로운 기획 전문가가 되는 게 목표였어요." 팀원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마 그 말이 바로 와닿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나도 처음부터 이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으니까. ◈ 첫 번째 블렌딩: Content Free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교육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 교재에서 본 한 문장을 잊을 수 없다. '비즈니스 민감성에 기초한 Content Free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여
그녀는 실력이 좋다. 강의도 잘하고, 사람을 읽고 조직을 다루는 감각도 있다. 외국계 기업에서 HR 매니저로 일하며 무대 앞에 서는 일이 잦은 대학원 동기다. 어느 날 내게 문자가 왔다. "언니처럼 옷 입고 싶어. 옷 골라줄 수 있어?" 워킹맘으로 치열하게 살다보니, 자신을 꾸미는 데 쓸 여유가 없었다. 아이들, 회의, 보고서, 그 사이에서 그녀의 옷차림은 늘 ‘편리함’ 뒤에 숨어 있었다. 그렇게 평소 내 스타일을 좋아하던 그녀의 부탁으로 함께 옷을 골랐다. 단순히 유행하는 옷이 아니라, 그녀가 가진 단단한 전문성이 겉으로 드러날 수 있는 스타일을 제안했다. “좋은 신발은 연인을 도망가게 한다는 말도 있지만, 사실 진짜 좋은 신발은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준대. 나를 귀하게 대접하는 옷차림은 어쩌면 나를 지키고 빛내는 가장 확실한 '이미지 자산' 아닐까?.” 컨설팅 이후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다. 옷만 살짝 바꿨을 뿐인데 회사 사람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는 것이다. "멋지다", "분위기 좋다"는 찬사가 이어졌고, 그 기분 좋은 자극은 그녀를 움직였다. 자신감을 얻은 그녀는 미뤄둔 운동을 시작했고, 거울 속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 첫 번째 블렌
같은 말을 들어도 누군가는 동기부여를 받고, 누군가는 상처를 받는다. 똑같은 팀장의 피드백 한마디가 어떤 사람에게는 자극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망치는 말이 된다. 퍼실리테이션을 배우고 나서도 이 질문만큼은 여전히 나를 붙잡고 있었다.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건 결국 뭘까?' 조직의 소통 방식은 조금 알게 됐지만, 그 안에 있는 '개인'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었다. 나는 결국 그 답을 찾아 심리 진단 도구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국민 진단 도구라 불리는 MBTI는 입문이었다. 그 다음은 에니어그램이었다. MBTI가 행동유형을 보여준다면, 에니어그램은 그 행동의 뿌리에 있는 두려움과 욕망을 건드린다. 처음 내 에니어그램 유형을 확인했을 때, 솔직히 좀 민망했다. '내 마음속에 이런 욕구가 있었나?' 그 불편함이 오히려 흥미와 이해의 기반으로 바뀌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도 주목받기 시작한 버크만 진단까지 손을 뻗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드러나는 숨은 욕구를 찾아내며 일하는 방식을 알려주는 진단 도구였다. 닥치는 대로 공부했고, 하나씩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런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오히려 확신이 줄었다. 나조차도 나의 행동을 이해하기
리더 혼자 이야기하고, 나머지는 노트북만 두드리는 회의. 뒷자리에 앉아 속으로 되뇌던 말. '이럴 거면 그냥 메일로 보내시지.' 그 불만이 문제의식으로 바뀐 건, 내가 직접 그 회의를 이끌어야 하는 프로젝트 리더의 자리에 앉게 되면서였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하던 날,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익숙한 책상과 묵직한 과제들이었다. '회사의 가치체계 재정립 프로젝트' 머리로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손은 생각만큼 움직이지 않았다. 실무를 떠나 있던 시간만큼의 공백감이 매일 아침 출근길을 조금 무겁게 했다. 그 무게감보다 더 버거웠던 건, 회의실에서 마주하는 침묵이었다. 대부분 리더가 말을 주도 했는데 어딘가 텅 빈 느낌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건 그들의 진짜 생각이었지만, 직급과 분위기라는 보이지 않는 벽 앞에서 그건 좀처럼 꺼내지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저 침묵을 깰 수 있을까?' 그때 만난 것이 퍼실리테이션이었다. 배우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건 기술보다 태도였다. 답을 알고 있어도, 먼저 꺼내지 않고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을 펼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배운 것을 회사 밖에서 먼저 써보기로 했다. 비영리 단체를 대상으로 미션과 비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