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 정답을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답답한데 우라 점보러 갈래?", "소름 돋아. 지난번 그 점쟁이가 말한 대로 됐어." 사주, 신점, 손금, 타로... 등 서로의 경험을 주고받으며 웃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은 회사에서 이제 익숙한 풍경이다. 많은 사람들이 답답한 현실과 미래의 불확실성 앞에서 불안한 마음을 안고 살아간다는 뜻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그런 마음이 고개를 든다. 앞이 잘 보이지 않고, 무거운 감정이 나를 짓눌러 한 걸음도 나아가기 어려울 때가 있다. 누군가가 "이게 정답이에요. 시키는 대로만 하세요"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인간이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은 아주 오래된 본능이다. 옛날 왕들이 별의 움직임을 읽는 점성술사나 관상감을 곁에 두었던 것처럼이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이라는 어려운 시험 앞에서 누군가 미리 써놓은 답을 훔쳐보길 바라고 있는 건 아닐까. ◆ AI도 내 인생을 알 수 없다 얼마 전 생성형 AI에게 내 사주를 물어봤다. 생년월일과 시간을 입력하자 10초도 지나지 않아 엄청난 분량의 글이 쏟아졌다.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조언들이 정제된 언어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게 맞네
늦은 주말 오후. 아이들의 목소리와 TV 소리로부터 잠시 도망쳐 나왔다. 좋아하는 카페문을 열고, 가장 구석진 창가 자리에 앉아서 늘 마시던 디카페인 커피를 주문했다. 언제부터인가 숙면을 위해 내 생존 본능이 만들어 낸 작은 습관이다. 커피가 그리워 카페에 왔지만 카페인은 피하고 있는 이 아이러니 상황. 조금 우스운 듯 하지만 난 이 순간이 좋다. 주변을 돌아보니 많은 사람들이 진한 커피로 남은 오후를 충전하고 있다.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가방에서 충전기를 꺼냈다. 하얀 케이블을 스마트폰에 연결하자 화면에 작은 번개모양이 그려졌다. 기계는 참 정직하다. 방전되기 전에 미리 알려주니까. 사람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 아니, 오히려 조용히 무너진다. ◆ 나를 방전시키는 것들은 아주 사소하다 문득 나를 방전 시키는것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것들은 대단한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다. 회의가 끝난 뒤 팀원의 어두웠던 표정, 작은 실수로 핀잔을 들었던 아침, 늦은 밤 아이의 가방 속에서 뒤늦게 발견했던 구겨진 안내문과 '내일 오전까지'라고 적힌 준비물을 확인하는 순간 등... 아이의 학부모 단체톡방에서 누군가 "체험학습 어떠셨어요?"라고 물었을 때도 그랬다. 나는
◆ 침묵 뒤에는, 말보다 많은 감정이 숨어 있다 “팀장님이 자꾸 편하게 말하래요. 그런데 저는, 그 말이 제일 불편해요.” 눈을 떨구던 그녀의 말끝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신입으로 입사한 지 8개월. 어느 순간부터 회의실에서 그녀는 투명인간이 되었다고 했다. “아이디어를 내면 ‘그게 아이디어야?’ ‘넌 왜 이렇게 생각이 없어?’ ‘머리는 생각하라고 있는 거야, 달고 다니라고 있는 게 아니고.’ 가끔은 말 대신 큰 한숨으로 절 쳐다보세요. 그럴 땐 숨조차 쉬기 어려워요. 그래서 그냥… 입을 닫게 되었어요...” 상담실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 한켠이 시려온다. 단어는 조금씩 달라도, 그 밑바탕에 깔린 아픔은 닮아 있다. 개인의 경험으로 시작되지만, 알고 보면 팀 전체가 감정적으로 얼어붙은 경우가 많다 그런 팀은 소통이 사라지고, 조심스러운 눈치와 말 없는 불신만 남아있다. 그래서 어쩌면 사무실에서의 침묵은 큰 목소리일지도 모른다. ◆ 최근 조직문화 키워드 중 가장 주목받는 단어 ‘심리적 안전감’ 실수해도, 궁금한 걸 물어봐도, 다른 의견을 말해도 비난받지 않을 거라는 믿음. 심리적 안전감과도 연결된다. 하지만 일터에서 이 확신은 유리컵처럼 너무 자주
◆ 사랑은 같지만, 사랑의 방식은 매일 다르게 연습된다 저녁을 준비하는데, 쌍둥이 중 한 아이가 울면서 말했다. “엄마는 연우만 좋아해.” 그 말이 낯설지 않다. 며칠 전, 다른 아이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표현만 다를 뿐, 둘의 마음의 결은 같다. 이란성 쌍둥이. 성별도 생일도 같지만, 모든 것이 정반대다. 한 명은 한식을 좋아하고, 다른 한 명은 빵을 좋아한다. 한 명은 책상에 앉아 집중하고, 다른 한 명은 바닥에 누워 공부한다. 한 명은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다른 한 명은 침묵 속에 감정을 쌓는다. 나는 때로는 통역사가 되고, 때로는 탐정이 되어 각자의 언어를 읽어내야 한다. 그래서 감정도 두 배, 해석도 두 배. 미안함도 두 배다. 이런 날, 엄마의 감정은 서랍 속 깊숙이 밀어 넣은 편지처럼 구겨져 있다. 꺼내면 더 어지러워질 것 같아 급하게 다시 닫아둔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요즘 가장 자주 드는 감정이 뭐예요?”라고 묻는다면, 아마 나는 ‘미안함’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아이에게, 배우자에게, 그리고 오랫동안 뒤로 미뤄둔 나 자신에게도. ◆ 코칭에서는 ‘개별화’를 중요한 태도로 바라본다 모든 사람은 온전하고, 창의적이며, 스스로 답을 찾을
◆ 말보다 조금 더 느린 방식으로 칼럼 연재 제안을 받았을 때, 잠시 멈칫했다. 말을 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말과 질문으로 사람의 마음을 여는 일을 오래 해왔다. 그런데 글은 조금 다르다. 말은 눈을 마주하고, 마음의 결을 따라 흐르지만 글은 그 결을 조심스럽게 눌러 담아야 한다. 이 칼럼은 내게 말보다 조금 더 느린 방식으로 사람의 마음에 닿아보려는 시도다. 그래서, 나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코칭을 공부하며 마음속에 오래 남아 있던 한 문장이 있었다. “마음은 언제나 말보다 먼저 있다.” 그 마음의 움직임을 먼저 알아채고, 그 조용한 틈에 머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 빨래비누에서 래비(LABi)까지 어릴 적 부터 나는 ‘빨래비누(bbalebinu)’라는 아이디를 썼다. 사람들은 재미있다고 했지만, 내겐 하나의 태도였다. 빨래비누는 화려하지 않다.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하지만 묵묵히 얼룩을 지우고, 본래의 색을 되찾게 해준다. 곁에 있으면 편안한 존재,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처음엔 마케팅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나는 조직문화와 인권을 다루는 일을 하게 되었고 지금은 코칭이라는 새로운 언어로 사람을 만난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