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마음 속 어떤 공간을 갖고 계신지 궁금해집니다. 풍요롭나요? 아님 빈약한가요? 실질적 물질적 공간도 아닌데 측정할 수 있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고 나름의 주관적 잣대로 상대적 계량을 충분히 하실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음… 저는 시시각각 유동적인 것 같은데 그래도 여전히 광활해지고 싶은 그 공간이 한동안은 풍성하진 않아도 윤택했으나 지금은 좀 줄어들어 허한 느낌입니다. 다시 차곡차곡 또 저만의 노하우와 마음가짐으로 여길 채워야겠죠. <쇼펜하우어 인생수업>(쇼펜하우어 저 / 김지민 엮음, 주식회사 하이스트그로우) 그 38번째 주제는 ‘더 많은 부를 얻으려 너무 노력할 필요는 없다’ 입니다. 전광석화의 속도는 아니나 쓱 눈을 흘겨본 첫 느낌은 ‘오늘은 사서삼경 맹자공자인가~ 이게 뭐야’였습니다. 하지만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정독의 속도로 시선을 집중해보니 ‘너무’라는 두 글자가 확 와닿긴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책은 말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인간의 자산은 세 등급인데 첫째는 건강, 도덕, 인경 등 둘째는 재산과 소유물 그리고 셋째는 명예, 명성같은 타인에게 주는 인상‘으로 정의했습니다. 이 세가지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상호 조
이제는 다시 올 수 없는 대학교 학창 시절, 유행했던 노래 중 유독 좋아했던 가요 제목은 바로 ‘소유하지 않은 사랑’ 이었습니다. 김성면의 애절한 목소리에 더 애절한 음정은 정말 취하지 않아도 취하게 만들 정도로 제 심금을 울렸었죠. 보통 사랑을 한다고 하면 당연한 말이지만 그 상대가 있을테고 그 둘이 알콩달콩 이러쿵저러쿵 옥신각신하며 애정을 키워가기 마련이죠. 그렇기에 내가 좋아하는 상대를 더 원하고 더 소유하고 싶을텐데 이 노래의 제목은 이와 반대인 소유하지 않은 사랑이니 어찌보면 정말 위대하다 볼 수도 있고 또 너무 슬픈 나머지 반어적으로 썼다고 해석도 되긴 합니다. 신이 인간에게 무조건 주는 절대적 사랑인 아가페, 그리고 남녀의 육체적 사랑인 에로스, 또한 상호 교감하며 정신적 애정을 나누는 플라토닉까지 ‘사랑(love)’을 ’소유‘ 관점에서 놓고 본다면 여러 상황이 나옵니다. <쇼펜하우어 인생수업>(쇼펜하우어 저 / 김지민 엮음, 주식회사 하이스트그로우) 그 37 번째 주제는 ‘소유에 대한 만족은 모두에게 상대적이다’ 입니다. 최근의 풍토는 ’급‘을 나누길 즐기고, 사람이건 사물이건 ’계급‘을 부여하며 이를 당연시 한다고 책은 우선 꼬집습
물질과 정신 중 둘 중에서 당신의 선택은? 사실 이 둘은 상반되는 것으로 매우 해묵은 명제 입니다. 논쟁거리도 아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가 고도화되고 풍요로워진다해도 등장하는 단골손님이지요. <쇼펜하우어 인생수업>(쇼펜하우어 저 / 김지민 엮음, 주식회사 하이스트그로우)을 탐독하며 나름의 생각을 펼치고 있는데 그 36 번째 주제는 ‘물질이 주는 행복에는 한계가 있다’ 입니다. 후반 챕터는 소제목처럼 정말 ‘물질’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제는 읽자마자 다소 반감이 들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고, 지극히 동의할 수 밖에 없는 가르침이기 때문이었죠. 다만 반대쪽의 생각 기술 없이 거의 모든 책들은 ‘정신’을 강조하는데 진짜 ‘물질’ 때문에 삶을 포기하는 이들이 나왔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반대가 아닐까란 자문도 해봤습니다. 책은 말합니다. ‘삶의 최우선 가치에 물질을 두고 살아간다면 불행할 것이라고…만약 물질만이 행복의 최우선 조건이라면 세계적인 부자들은 아무런 고통도 겪지 않아야 정상일 것’이라고 적시합니다. 저는 반대파란 측면이라 가정하고 한번 말해봤습니다. ”삶의 최우선 가치에 정신을 두고 살아간다면 행복할 것이냐고…만약 정신만이 행
아주 가까운 지인의 권유로 시작한 [마음공간]이란 테마로 쓰고 있는 칼럼이 어느덧 60번째라 개인적으론 그래도 뭔가 꾸준히 써내려가고 있음에 작지만 커다란 뿌듯함이 있네요. 미천한 졸문이나 읽어주신 분들 이 자리를 빌려 감사 올립니다. 이번 챕터를 읽자마자 그냥 떠오른 여화 제목 하나가 있었습니다. 바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입니다. 그게 여기 해당하는지 잘 부합하는지는 중요치 않습니다. 그저 첫 느낌으로 다가온 문장인데 읽어보면 순간 저 문장이 주는 첫 의미 자체는 어느정도 맞아 떨어지는 것 같네요. <쇼펜하우어 인생수업>(쇼펜하우어 저 / 김지민 엮음, 주식회사 하이스트그로우) 그 35 번째 주제는 ‘과연 소외층을 위한 복지는 잘 이루어지고 있는가’ 입니다. 평온하고 소소한 전반부와 달리 우리 하우어 형님의 일침이 작은 물결에서 성난 파도로 옮겨가고 있음이 절로 느껴져 읽는 맛(?)이 더욱 생겼습니다. 해묵은 논쟁일 수 있는데 우리 사회 소외계층보다 어찌보면 우리가 낸 혈세로 대접받고 있는 재소자를 위한 교도행정이 맞는 지에 대한 도전적 질문을 책은 던집니다. 지난 2023년 기준 재소자 1인당 연간 수용비가 평균 3100만원
영화 <김씨표류기>를 기억하시나요? 밤섬이었죠? 지하철도 머리 위로 지나고 한강변에…암튼 낄낄대며 때론 박장대소하며 그 작품이 안겨준 페이소스에 참으로 즐거워하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셀프 고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물론 영화 속이라 망정이지 정말 실제 현실이었다면 웃음 대신 눈물만 가득했을 듯 합니다. 여러분, 혹시 무인도에 가셔야 하고 뭐 하나를 갖고 갈 수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요? 본래 뭐 하나 갖고 싶냐는 질문이라면 대뜸 열에 아홉은 ‘돈’이라고 하겠으나 이 질문 막상 받아보면 쉽사리 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무인도라는 환경과 복수가 아닌 단수로 딱 하나를 챙겨야 하니 묘안이 딱 떠오르진 않더라구요 (물론 통신이 터진다면 단연 휴대폰일 듯 합니다) <쇼펜하우어 인생수업>(쇼펜하우어 저 / 김지민 엮음, 주식회사 하이스트그로우) 그 34 번째 주제는 ‘가장 강력한 즐거움의 원천은 건강’ 입니다. 우리가 행복을 느끼고 즐거움을 추구하는 정도는 주관적인 것이 객관적인 것보다 비교 불가할 정도로 중요하다고 책은 말합니다. 그리고 그 즐거움의 원천 중 가장 강력하고 거대한 것이 바로 ‘건강’이라고 일깨워줍니다. 사실 건강해야 뭘 하
마음공간을 써 내려간 지 제법 된 듯 한데 덩달아 이 주제를 제공하는 쇼펜하우어 형님의 챕터도 후반부를 향해 갑니다. 앞서 칼럼에서도 말씀 드린 바, 전반부는 정말 명심보감같은 명제가 많아 그의 진면목을 엿보기 쉽지 않아 조금 아쉬웠는데 후반부는 정말 제대롭니다. 우리가 습득하는 지식, 최근엔 각종 포털을 비롯 소셜미디어는 물론 유튜브를 통해 많이들 익히고 퍼뜨리곤 합니다. 그러고보니 하루 중 대다수 소통은 카톡인데 여기서도 많은 것들이 오가고 있지요. 과거처럼 책을 심독한다든지 매일 아침 신문을 양손에 쥐고 대자로 펼쳐 읽는 건 정말 역사의 한 장면으로 전락한 듯 합니다. <쇼펜하우어 인생수업>(쇼펜하우어 저 / 김지민 엮음, 주식회사 하이스트그로우) 그 33 번째 주제는 ‘모든 지식을 적당히 의심해보아야 한다’ 입니다. 어디서 무엇을 듣고 그걸 배운다고 가정해 볼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우선은 조금이나마 의문을 가져보라고 하네요. 이는 단지 옳고 그름의 척도를 살피란 일차원적 이야기는 아닙니다. 많은 이들이 왜곡된 사실을 바탕으로 마치 사실인양 떠들면서 그들의 돈벌이로 이용하기도 하니 이를 조심하란 뜻입니다. 그나저나 그 형님이 사셨던
저는 홍보맨 입니다. 그래서 늘 ‘팩트’란 단어를 기자처럼 입에 물고 살고 있습니다. “그거 팩트래? 팩트야? 팩트 아니지?…” 팩트는 곧 사실이니 실제라 여겼고, 실제는 실존하는 사실이니 거짓이 아니라 여겨집니다. 그래서 진실과 통용되기도 하지요. 하지만 좀 더 들여다 보면 아주 미묘해 보여도 차이가 있고 그 차이가 정말 큰 또 뭔가를 만들어 낸다는 걸 나이가 들어가며 깨우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저 사람이 잘못한 게 팩트인데 그렇다고 그 사람이 나쁜건 팩트가 아니더라구요. 진실은 그 작자가 잘못할 수 밖에 없던 형국이고 그는 거기 맞서 싸우다 진 것일 뿐 진실의 관점에선 그가 옳았던 적을 우리는 수없이 봐왔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챕터를 만났는데 전반부의 쇼펜하우어 형님이 좀 지루하거나 너무 명제적 명제를 남발했다면 후반부엔 정말 꼬집어 주고 일깨워 주시네요. <쇼펜하우어 인생수업>(쇼펜하우어 저 / 김지민 엮음, 주식회사 하이스트그로우) 그 32 번째 주제는 ‘진실과 거짓을 판별할 줄 알아야 한다’ 입니다. 힘들고 힘든 현대의 도심생활에서 소위 말하는 승자가 될 수록 점점 더 외톨이가 되었다고 말씀하시는 부분에선 무릎을 탁 쳤습니다. 최근
사실 전 철학도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색가도 아니지만 그냥 아무 이유없이 주저 않고 ‘쇼펜하우어’를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저서를 탐독한 적도 없었고, 관련 자료도 수집하지 않았으며 그 흔한 유튜브나 포털사이트 검색도 안했더라구요. 그러면서도 좋아했던 이유는 딱 하나, 제가 잘못 알고 있을 수도 있었지만 비관주의가 아닌 ’허무‘ 그리고 ‘염세’에 천착했던 사상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대학 시절로 돌아가 전공을 선택할 수 있다면 당근 약대를 가고 싶지만 (그러고보니 전 고등학교 때 문과였네요~ 이 마저 불가죠?) 순수학문 중 고르라면 단연코 철학과에 가고 싶습니다. <쇼펜하우어 인생수업>(쇼펜하우어 저 / 김지민 엮음, 주식회사 하이스트그로우) 그 31 번째 주제는 ‘많은 것을 가질수록 많은 의무가 생긴다’ 입니다. 이제 중반을 넘어가는 이 시점에 다시 곱씹어보니 소주제를 묶는 중주제가 바로 자아 > 일 > 물질….순이었더라구요. 잠시 멈추니 보였습니다. ‘그렇지 자아에 대해 언급했고, 일을 다뤘는데 왜 기본 중 기본인 물질에 대한 말은 없을까~’여겼는데 이제 그 챕터가 시작됐습니다. 이번 챕터의 풀이는 망망대해 등대와 나침반처럼 정
어렸을 적 부터 배웠던 국민의 4대 의무. 바로 교육, 국방, 근로, 납세 입니다. 왈가불가를 떠나 이 중 바로 ‘근로’에 대해 쇼펜하우어 형님의 생각을 엿볼 수 있어 다시 고찰해 봤습니다. 그 전에 잠깐, 일하는 것은 즐거운 걸까요 괴로운 걸까요? 또 일을 해야만 할까요 안할 수 있다면 하지 않아도 좋을까요? 그리고 일 자체가 보람이 될 수 있을지 아님 뭔가 동반해야 알찬 걸까요? 아마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까진 아니어도 이 질문들에 대해선 다양한 견해와 주장이 엇갈릴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분명한 한 가지는 정말 진짜 아무일을 안하고 사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와이프 왈 “밥먹는 것도 일이래~ 그래서 식사(食事)‘라고 하는거래”라고 하더라구요. 별 것 아니게 느낄 수 있었지만 당시 전 ’진짜네 모든게 다 일이네‘라고 깨달았습니다. <쇼펜하우어 인생수업>(쇼펜하우어 저 / 김지민 엮음, 주식회사 하이스트그로우) 그 30번째 주제는 ‘일하는 보람은 오직 개인의 내면에서만 찾을 수 있다’ 입니다. 외면도 아니고 조직도 아니고 내 안에서 그리고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역설일 것입니다. 참으로 맞는 말이긴 합니다. 회사나 속한 단체가 흥하
여러분, 열정의 유효기한은 언제까지일까요? 평생 지속될까요? 이번 챕터는 이런 우매한 질문을 저도 모르게 던지도록 시작합니다. 뭔가를 막연하게 해볼까란 마음을 넘어 이건 반드시 일구고 싶다고 안달난 상태를 저는 ‘열정’이라 칭하고 싶습니다. 그러다 보니 40대 중반이 되면 이 녀석이 나도 모르게 줄어들고 소위 조직생활을 마무리하는 나이가 되면 자의든 타의든 그때서야 이 녀석이 거의 소멸될꺼라고 봅니다. 물론 아주 개인적이며 주관적인 느낌 상태에 대한 정의고, 조직이 아닌 오로지 나에게 적용해 평생 지속가능하다고 외치는 사람들도 많을 듯 합니다. <쇼펜하우어 인생수업>(쇼펜하우어 저 / 김지민 엮음, 주식회사 하이스트그로우) 그 29 번째 주제는 ‘열정이 떠나갔다고 한탄할 필요는 없다’ 입니다. 쇼팬하우어 형님께선 열정이 떠난 자리를 명상이 채우게 되고, 노년기가 되면 열정은 떠난다고 하셨습니다. 더불어 노년기의 평정심이야말로 오히려 열정 보다 더욱 행복의 필수요건이라 꼬집어 주셨습니다. 동의합니다. 그리고 서로 상치할 수 있는 포인트를 지적해 주심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다만 여긴 전제조건이 있는데 평정심을 갖춰야 가능한 것이겠죠. “나이 들어 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