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영화를 딱히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피하지도 않는다.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이나 <13일의 금요일> 같은 슬래셔 무비도 봤고, 잔인하지만 신선했던 <파이널 데스티네이션>도 꽤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다. <파라노말 액티비티>는 과거 홍보까지 했던 작품이니 더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쏘우> 시리즈다. 현실 기반 공포를 바탕으로 스릴러를 깔고, 아무리 비현실적인 설정이라 해도 영화적 개연성을 놓치지 않으며 퍼즐 맞추는 쾌감을 주기 때문이다. 죽어도 다시 되돌아오거나, 하루가 반복되는 ‘루프 구조’ 영화는 이미 부지기수다. 그래도 넷플릭스 신작이 신선한 공포물일 것 같아 주말을 붙잡고 봤는데, 결론적으로는 정말 처참했다. ◆ 반전도 약하고, 설명도 부족한 이야기 예측 가능한 범인, 예측 가능한 행동, 그리고 예측 가능한 결말. 모래시계가 뒤집히면 등장인물들이 죽기 직전으로 돌아가는 설정 역시 ‘그냥 그렇다’고 받아들이라는 식으로 흘러간다. 그래서 이해하는 척 보고는 있지만 불편하다. 원리도, 근거도, 환경도, 동기도 모두 허술하다. 아직도 이런 작품이 만들어지는 걸 보면 가
간만에 제대로 된 명품을 만난 기분이다. 지지고 볶고 울고 웃기며 카타르시스를 주는 볼 만한 드라마는 많았지만, 이 작품은 그 이상의 것을 건드렸다. 등장인물의 독백 한 줄 한 줄이 가슴에 와 닿았고, 문화 사대주의는 아니지만 원작이 해외에 있어 그런지 완성도가 매우 높다고 느꼈다. 배경이 어떻고 연출이 어떻고 볼거리가 풍성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이 드라마의 힘은 훨씬 단단한 곳에 있다. 가족의 ‘해체’가 전성시대인 지금, 가족의 ‘결합’을 담백하면서도 묵직하게 보여준 데 있다. 이게 이 작품을 명품으로 만드는 이유다. 이제는 1인 가구가 하나의 가구 형태로 당당히 인정받는 시대다. 나아가 반려견과 반려묘도 법적 구성원은 아니지만 삶을 함께하는 동반자, 즉 또 하나의 가족으로 받아들여진다. 극 속 인물 구성은 그야말로 현대 가족의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아이를 어느날 갑자기 맞이한 미혼부, 사회적 지위는 의사지만 그 미혼부를 사랑하게 된 외로운 여자, 백수와 취업을 오가는 여자의 답없는 동생, 그 동생을 짝사랑하다 스타작가의 반열에 오르는 여사친, 사랑하는 아내와의 사별 후 다시 영화처럼 사랑을 만났지만 결국 알츠하이머 병에
개봉하면 꼭 봐야지 생각해도 결국 못 보는 영화가 있는 반면, 얻어 걸리든 우연이든 보게 되는 신작도 있다. <신의 악단>이 바로 그랬다. 넷플릭스 전성시대 속 영화 헤비 유저인 나도 극장을 찾아간 지 한참 됐다. 그러다 새해를 맞아 통신사 멤버십 혜택을 살펴보다 CGV 무료 관람(연 3회)을 발견했고, 월요병 치료를 명분 삼아 와이프의 허락을 얻어 혼영에 나섰다. 어둠 속 밝아지는 스크린 앞에서 2시간여 스토리에 몰입하면 그 어떤 스트레스도 날아가는 스타일인데, 오늘도 이 공식은 적중했다. 자칭 ‘돌아온 탕자’인 내게 지나칠 수 없는 작품이었고, 마침 50분 뒤 상영 예정이라 주저 없이 예매했다. 먼저 고백컨대 교인이 아니라면 이 영화는 자칫 삼류 코미디로 비칠 수도 있다. “아직도 종교를 소재로 이런 영화를 만들고 있어?”라는 비아냥을 들을 수도 있다. 캐스팅 역시 호불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결국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극 중 CCM송 <은혜>가 울려 퍼지는 순간, 웃음과 콧물이 동시에 터졌는데 그 ‘콧물’은 사실 눈에서 흐른 것이었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가슴은 아니죠”라는 대사에 아무 말도 못하는
딱히 이유는 없지만 로맨틱 코미디 장르는 즐겨 보지 않는다. 잘생기고 예쁜 남녀가 등장해 알콩달콩 관계가 진전되고, 중간에 시련과 반전이 찾아왔다가 결국 사필귀정으로 귀착되는 기본 구도가 어딘가 성의 없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로맨스’ 자체를 싫어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로맨스 스릴러’나 ‘로맨스 드라마’는 즐겨 봤다. <갯마을 차차차>나 <우리들의 블루스>도 한 회도 빠짐없이 챙겨봤다. 아마 내겐 코미디적 감각보다 감정의 결이 더 중요했던 모양이다. 맞벌이 부부인 우리는 주말이라고 해도 한가롭지 않다. 더구나 큰아이가 고3이 되는 해라 이래저래 눈치도 보고, 각자 밀린 집안일을 처리하다 보면 소파에 앉아 넷플릭스를 함께 보는 시간이야말로 귀한 여유가 된다. 이번 주말, 우리의 선택은 <이 사랑 통역 되나요>(이하 ‘이통되’)였다. 사실 두 번째 회차 시청이었는데 이번에는 이거다 싶은 느낌이 왔다. 한동안 은퇴설까지 나돌았던 김선호 배우의 복귀와 <무빙>에서 호평받았던 히로인의 조합까지 더해 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설정만 보면 어처구니없다. 전직 무명 여배우가 하루아침에 글로벌 셀럽이 되
몇 년도 작품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이 넷플릭스엔 꽤 많고, 신작이 별로이거나 업데이트가 뜸할 때면 리모컨을 들고 이곳저곳을 탐침하듯 둘러본다. 주말 아침 눈에 들어온 작품은 연상호 감독을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린 애니메이션 <사이비>였다. 살다 보면 자주 쓰지만 뜻을 정확히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단어가 있다. ‘사이비’가 그랬다. 사전을 찾아보니 ‘닮았지만 아닌 것’, 즉 겉은 비슷하지만 본질은 전혀 다른 상태를 의미한다. ◆ 넘쳐나는 ‘사이비’의 시대 도처가 사이비의 천국처럼 보인다. 종교 영역에서 많이 들리는 단어이지만, 짝퉁은 물론이고 원조를 자처하며 스스로를 오리지널이라 우기는 존재들이 곳곳에서 활개 친다. 유통 시장에서의 미투 상품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고, 신앙심 깊은 목사라 믿었던 이들 중 일부가 알고 보면 허세와 사기만 앞세운 경우도 적지 않다. 문제는 이를 진짜라고 믿는 데 있다. 그럴듯한 외양과 서사에 속아 넘어가기 쉽다. 본질이 100이라면 98은 실체에 충실하지만, 2만큼의 자의적 해석으로 진짜를 부정하는 방식이다. 더 안타까운 건 종교적 믿음이라는 포장을 통해 헌금과 시간을 바치는 사람
‘반려견’, ‘반려묘’ 언젠가부터 일상에서 익숙하게 들리는 단어다. 예전에는 “강아지 키우세요?”, “집에 고양이 있어요?” 정도의 표현이 전부였다. 이제는 반려동물이라는 이름 아래 ‘함께 살아가는 관계’를 전제하는 언어가 채택되고 있다. ‘반려(伴侶)’의 어원을 다시 찾아보니, 짝 반(伴)과 동무 려(侶). 즉 짝이 되어 함께 지내는 존재, 삶의 파트너라는 뜻이다. 1인 가구가 일반화된 시대에 ‘반려’는 사람에 한정되지 않는다. 나와 함께 일상을 공유하는 모든 존재를 향한 호칭이 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넷플릭스에서 헤매다 오랜만에 쿠팡플레이를 열었다. 여러 작품을 넘기다 눈에 들어온 영화가 <컴패니언(Companion)>. SF와 스릴러가 결합된 장르라는 설명에 호기심이 동했고, 런닝타임도 부담이 없었다. (*제가 좋아하는 120분 미만) ◆ 프로그래밍된 반려는 유익하기만 할까 영화의 설정은 철저히 인위적이다. 자신이 로봇임을 모르는 로봇, 그와 관계를 맺는 인간, 그리고 둘 사이의 정서적 착시. 처음에는 ‘반려봇’으로서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듯 보였으나, 설정값의 오류와 인간의 욕망이 개입되면서 시스템은 빠르게 일탈한다. 완벽해 보였던 동
[뉴스스페이스=김문균 기자] 볼 생각만 하다 놓친 작품이 넷플릭스에 뜨는 순간은 묘하게 짜릿하다. 여가의 대부분을 콘텐츠로 채우는 내게 금요일 저녁 소파는 낚싯대가 걸린 의자가 되고, 새로 올라온 작품은 월척이 된다. 이번 주 월척은 <얼굴>. 저예산이지만 작품성으로 인정받았던 영화로 기억하고 있다. 러닝타임이 두 시간이 채 안 된다는 사실도 반가웠다. (요즘 영화는 너무 길다. 숏폼 시대 때문이 아니라, 중간에 화장실을 가고 싶을 뿐이다.)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재생을 눌렀고, 역시였다. 박정민과 권해효. 두 배우의 밀도 높은 연기에, 얼굴이 낯익은 조연들까지 더해져 작품의 호흡을 끝까지 밀고 간다. 이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관계’에 대해 말한다. 홍보 일을 오래 해온 내게 관계(Relations)는 직업적 숙명이다. 공교롭게도 PR은 Public Relations의 약자다. ◆ 보이지 않는다는 것(blind)의 무서움 작품은 ‘보이지 않음’을 설정으로 삼는다. 자연스럽게 <눈먼 자들의 도시>나 <버드박스> 같은 작품이 떠오른다. 선천이든 후천이든, 자의든 타의든 중요한 건 한 가지다.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주인공에게
새해 첫날이다. 해가 바뀐다는 사실이 예전만큼 새롭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감각만큼은 여전히 축복처럼 다가온다. 가슴 아픈 일도, 잊기 힘든 기억도 잠시 내려두고 출발선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유난히 바쁜 연말을 보낸 뒤, 몇 달 전부터 예약해 둔 짧은 호캉스를 다녀왔다. 하룻밤이었지만 가족과 함께 수영을 하고, 사우나를 즐기고, 룸서비스로 식사를 하며 카운트다운을 함께했다. 어쩌면 우리는 이런 찰나의 달콤함을 위해 또다시 달리고, 견디고, 버티는지도 모르겠다. 체크아웃 후 전시를 하나 보고 집에 돌아와 짐을 정리한 뒤 자연스럽게 넷플릭스를 켰다. <이태원 클라스>에서 인상 깊었던 배우 이주영이 주연을 맡은 <단죄>가 눈에 들어왔다. 짧은 시놉시스를 읽고 1화부터 3화까지 단숨에 봤다. 아직 전편을 보지는 않았지만, 이 작품은 나를 한 질문 앞에 세웠다. ‘용서와 복수는 과연 무엇이 다른가.’ ◆ 진정한 용서란 무엇일까 보이스피싱은 인간의 악의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범죄다. <단죄>는 그 잔혹함을 전면에 내세운다. 부모를 잃은 딸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
“아버지가 물려준 건 초능력이 아니었다. 가난이었다.” 이 대사 한 줄에 저는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범상치 않은 능력, 그것도 초능력을 마치 신탁처럼 성인이 된 뒤 일정 시간이 지나 물려주는 아버지의 설정부터 흥미롭습니다. 얼떨결에 능력을 상속받은 주인공은 좌충우돌 가치관의 혼란 속에서 하나둘 현실을 헤쳐 나갑니다. 우리의 주인공은 이준호입니다. 평소 넷플릭스 신작이라면 관람평은 물론 사전 정보도 최대한 차단한 채 감상을 시작하는 편인데요, 그런 제 기준에서 <캐셔로> 1~2회차는 일단 만족스러웠습니다. 물론 이 시리즈는 시작과 동시에 <무빙>이 떠올랐고, 곧 <하이파이브>, 이어 <경이로운 소문>이 연상됐습니다. 카피한 듯하면서도 그대로 카피하지는 않은 느낌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 제법 후한 별점을 주고 싶어진 이유는 분명합니다. 바로 돈이 있어야 초능력을 쓸 수 있다는 설정, 그리고 현실을 비틀어 꼬집는 맛깔나는 대사들 때문입니다. 아직 남은 회차가 있습니다. 주말 동안 기본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과 가사를 마친 뒤, 다시 한번 이 세계관 속으로 빠져들어 볼 생각입니다. ◆ ‘초(超)’는 무엇일까요?
각종 전과 나물, 불고기, 조기구이에 식혜 후식까지. 옛날 입맛의 ‘꼰대(?)’ 같지만, 이렇게 일품 한상으로 차려 나오는 정통 한식당을 저는 꽤 좋아합니다. 물론 가격은 만만치 않지만 말이죠. 사실 따지고 보면 특별한 개성은 없죠. 정해진 코스에 맞춰, 때가 되면 정확히 등장하는 요리들. 마치 잘 짜인 시나리오대로 조연이 나오고, 주인공이 활약한 뒤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흥행 공식을 충실히 따른 대형 상업영화 같습니다. 그럼에도 그 ‘예상 가능함’이 오히려 만족 포인트가 되더라구요. 괜히 접대를 잘한 것 같은 포만감도 들고, ‘이게 격식이지’라고 스스로에게 주입하는 일종의 강박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그 모든 형식을 내려놓고, 라면 한 그릇이나 단무지 곁들인 짜장면 한 접시가 유독 당길 때가 있습니다. 한 시간 넘게 차곡차곡 이어지는 코스가 아니라, 물 끓여 붓고 10여 분 만에 끝나는 단순한 포만감. 목 넘김보다 속도를 택한 만족이라고나 할까요. 넷플릭스의 매력은 바로 이런 뜻밖의 ‘수작’을 만나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독립영화가 그렇고, 성탄절 휴무일 아침을 맞아 본 단편영화 모음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 지금은 유명 배우가 된, 무명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