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스페이스=김희선 기자]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이 약 534억원 규모의 담배소송 2심 판결을 앞두고 "연간 7만 명이 흡연으로 사망한다"는 통계와 함께, 국가와 기업의 책임을 촉구하는 진술서를 제출했다.
정기석 건보공단 이사장(호흡기내과 전문의)은 최근 서울고법 민사6-1부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담배의 중독성과 건강 피해가 국가적 위협 수준”이라며 “국가가 담배 중독성을 강력하게 경고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1심 패소에도 "흡연 피해는 과학적으로 명백"…2심 판결 앞두고 공세 강화
건보공단은 지난 2014년 담배제조회사 KT&G, 한국필립모리스, BAT코리아 등을 상대로 ‘흡연으로 인한 국민 건강보험료 부담’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흡연 외 가족력, 환경 등 다양한 요인이 있으므로 제조사의 책임을 단정할 수 없다”며 담배회사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건보공단은 “소세포폐암 환자 98.2%가 흡연을 유일원인으로 지목한다는 대한폐암학회 등 국내외 주요 학술근거”(대한폐암학회, 2022년 보고서), 세계보건기구(WHO), 미국 국립보건원(NIH) 등 다수의 관련 연구를 근거로 2심에서 적극적으로 반박에 나섰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최근 발표한 '2024년 담배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매년 약 800만명이 흡연 또는 간접흡연으로 목숨을 잃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약 120만명은 본인이 피우지 않은 간접흡연 피해자인 것으로 나타나, 흡연이 개인 건강을 넘어 심각한 사회적 문제임이 재차 확인됐다.
‘150만 국민 서명’까지…금연 바람과 강화되는 규제 요구
건보공단의 집계에 따르면 이번 담배소송 지지 국민서명은 150만명을 돌파해 당초 목표(100만명)를 크게 상회했다. 시민들은 “폐암, 후두암 등 흡연 질환 피해자가 속출하는데, 담배회사가 끝내 책임을 회피한다”는 여론을 조성하며 소송 관심을 높였다.
담배회사는 흡연이 개인 선택이자 자유라는 논리를 앞세우고 있으나, "현실에서는 니코틴 중독성과 뇌 보상시스템 활성화로 금연이 쉽지 않다"는 점이 다수 국제학술지에서도 반복 입증되고 있다(NIH, Addiction Science & Clinical Practice, 2024).
흡연자 70%는 질환 경험…소수 전문가 의견이 판결 좌우?
공단 측 정기석 이사장은 “흡연자 70%가 인생 중 흡연 관련 질환을 반드시 경험한다”며, 담배회사 측이 제출한 일부 전문가 의견의 제한성을 지적했다. 반면 대한예방의학회 등은 “담배회사가 제시한 자문은 과학적 타당성이 미약하다”며 공단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국내 상황도 심각하다. 질병관리청의 '2023년 국민건강실태조사'에 따르면, 매년 약 7만명의 사망자가 담배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국내 전체 사망자 중 5명 중 1명이 흡연과 관련된다는 분석으로, 한국 사회의 흡연 문제 역시 국가적인 보건 위기임을 보여 준다.
이로 인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하는 흡연 관련 건강보험 재정 지출은 연간 3조8000억원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직접적인 진료비뿐 아니라, 흡연에 기인한 각종 만성질환과 암 치료, 예방 활동 등 사회 전체가 부담하는 간접적 비용까지 포함한 금액이다.
전문가들은 “흡연은 개개인의 건강뿐 아니라 사회 전체 재정에도 막대한 부담을 주는 중대한 위험 요인”이라며 “흡연율 감소와 금연 정책, 간접흡연 방지 등 전방위적 대응이 절실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국가가 건강권 지켜야"…이번 판결, 향후 규제 판도도 변하게 할까
정기석 이사장은 “한 명의 건강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초저출산 시대, 국민 생명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정의”라고 재차 강조했다.
미국 등 주요국가에서는 수십 차례 대형 소송에서 담배회사에게 수조 원 규모의 손해배상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판결은 국내외 담배규제 강화 흐름에 따라 금연 정책뿐 아니라 산업 정책에도 의미 있는 선례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