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상업부동산 시장은 디지털 코드처럼 명확한 이분법을 보여준다. 선택받는 자산은 '1'이 되어 날개를 달고, 그렇지 못한 것은 '0'이 되어 시장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물류센터 시장의 'Code Red'와 오피스 시장의 '선별적 회복'이라는 두 키워드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상업부동산 전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패러다임 전환의 단면이다. '부동산은 부동산'이라는 뭉뚱그린 접근으로는 생존할 수 없는 시대가 왔다. 물류센터: 'Code Red'가 던진 경고의 메시지 알스퀘어 2025년 상반기 물류센터 마켓리포트 타이틀이 'Code Red'인 이유는 명확하다. 신규 공급량은 전기 대비 74% 급감해 약 16만 평 규모에 그쳤다. 2023년 상반기 대비 10분의 1 수준이다. 관련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시장 침체가 아닌 구조적 전환기의 신호탄이다. 권역별 데이터는 뚜렷하다. 서북권은 전기 대비 90% 이상 공급량이 줄었고, 중앙권은 3개 반기 연속 공급이 전무하다. 이는 수도권 외곽 지역조차 공급 타이밍을 조절하거나 개발을 유보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프로젝트 파이낸싱 조달의 어려움, 공사비 상승, 수요 불확실성 증대가 복합적으로
지구는 끓고, 도시는 불길의 한가운데 서 있다. 우리는 거대한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미궁 속에 갇혀 스스로를 옥죄고 있다. 지구 면적의 2%에 불과한 도시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70%를 뿜어낸다. 그중 건물은 에너지 관련 이산화탄소 배출의 절반을 차지한다. 이쯤 되면 도시는 환경 파괴의 주범이다. 절망적인 그림 속에서 희망의 씨앗을 발견했다. 부동산과 기술의 만남, 프롭테크다. 똑똑한 손길이 오래된 건물을 깨우고, 거대한 도시를 숨결로 채우는 마법 같은 이야기다. 탄소중립 도시는 막연한 꿈이 아니다. 프롭테크라는 지팡이가 있다면 눈앞의 현실이 된다. 숨 쉬지 않던 건물이 깨어나는 순간: 데이터 기반 에너지 혁명 콘크리트 숲을 이루는 건물들. 이들이 온종일 내뿜는 열기는 거대한 용광로 같다. 냉난방과 조명에 막대한 에너지를 낭비하며 탄소를 쏟아내던 과거의 건물들은 '에너지 먹는 하마'다. 하지만 프롭테크는 여기에 기발한 해법을 제시한다. 데이터 기반의 스마트 관리다. 건물 곳곳에 사물인터넷(IoT) 센서와 스마트 계량기가 실핏줄처럼 깔리고, 에너지 사용 데이터를 모아 '뇌' 역할을 하는 인공지능(AI) 시스템에 보낸다. 홍콩의 한 부동산 기업은 AI를
거래량이 반토막 났다. 어떤 건물은 입주율 50%도 채우지 못해 관리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어떤 빌딩은 0.1% 공실률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다. 같은 시장, 같은 시기에 벌어지는 극과 극의 현실이다. 알스퀘어 RA가 최근 발표한 '2025년 상업용 부동산 상반기 10대 키워드'는 이런 복잡한 현실을 'PROPERTIES' 10개 단어로 해부해 담았다. 그 데이터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고금리 충격이 휩쓸고 간 뒤, 우리 상업용 부동산은 전혀 다른 룰의 게임을 시작했다. 승자와 패자가 칼같이 갈리는 선별의 시대다. 과거의 공식은 무효가 됐고, 새로운 법칙을 먼저 간파한 자만이 살아남는다. 그렇다면 그 법칙은 무엇인가. 데이터가 예고하는 2025년 하반기,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인가. 위기 신호등은 여전히 깜박이고 있다 현실을 직시해보자. 일부 부문은 구조적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식산업센터다. 알스퀘어 RA 플랫폼 데이터에 따르면, 2025년 1분기 전국 지식산업센터 매매거래량이 직전 분기 대비 43.2% 급감했다. 거래금액은 44.8% 감소해 사실상 반토막 났다. 2020~2021년 저금리 기조 속에서 대체 투자처로 각광
서울 종로, 광화문. 전통적인 중심 업무지구의 간판이자 건설사들이 위용을 과시하던 공간이었다. 그러나 조용한 탈출이 이어지고 있다. 롯데건설과 SK에코플랜트, HDC현대산업개발, DL이앤씨 등 대형 건설사들은 속속 본사를 옮기고 있다. 도심 임대료가 치솟는 데다 서울 외곽의 교통 인프라는 발달했으며, 기업들은 고정비 절감이 절실해졌다. 결국 익숙한 '상징'을 버리는 대신 '실리'를 택한 것이다. ◆ 도심을 등지는 이유, 외곽을 택하는 계산 롯데건설은 잠원동 본사를 매각하고 마곡의 자체 시공 건물로 이전을 추진 중이다. 한편 SK에코플랜트는 종로 수송동을 떠나 양평동 통합사옥에 SK에코엔지니어링과 함께 둥지를 튼다. HDC현산은 아이파크몰에서 노원 광운대역세권 개발지로, DL이앤씨는 디타워에서 마곡 '원그로브'로 향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바로 자체 보유지나 시공 건물로 이동해 비용을 줄이고, 계열사는 통합하며, 개발지는 선점한다는 전략적 계산이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한 위치 변화가 아니라 공간 전략의 전환을 의미한다. 과거 본사는 기업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효율'이 우선시된다. 분산된 조직을 물리적으로 모으고, 불필요한 임대차 비용을 줄이
그대들이 사는 이 시대를 둘러보니 참 묘하다. 내가 한 평생 바친 '지도 만들기'가 이제는 '데이터 구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던 자리에는 하늘을 나는 철새 같은 것들이 사람을 실어 나른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길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 지도는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완성되어 가는 것 내가 '대동여지도'를 그려나갈 때, 사람들이 자주 비꼬듯 물었다. "죽기 전에 볼 수 있느냐"고. 그때마다 답했다. "지도는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완성되어 가는 것"이라고. 오늘날 그대들이 만드는 '프롭테크'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완벽한 플랫폼, 치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겠다며 출발하지만, 막상 시장에 나가보면 예상과 다른 일들이 벌어진다. 고객들은 상상하지 못했던 기능을 원하고, 경쟁자는 예상 밖의 움직임을 보인다. 그래도 괜찮다. 내 지도도 처음에 틀린 곳 투성이였다. '청구도'를 만들 때는 백두산의 위치도 정확하지 않았고, 섬의 크기도 실제와 달랐다. 하지만 그때마다 다시 걸었다. 다시 물었고, 다시 그렸다. 그렇게 30년을 거쳐 비로소 '대동여지도'가 나왔다. ◆ 기술을 따르되, 두 발을 믿어라 그대들의
8개월 전쯤 한 통의 연락을 받았다. 과거 공유킥보드 서비스 ‘하이킥’을 창업했던 여모 씨였다. 시장이 침체되기 전 회사를 성공적으로 매각한 인물로, 한때는 경쟁자였다. 당시 나는 ‘씽씽’을 운영하던 피유엠피에서 대외협력 업무를 맡으며 현장에서 종종 그를 마주쳤다. 세계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현재 천일에너지의 친환경 브랜드 ‘지구하다’에서 전략을 담당하고 있다고 했다. 낡은 것을 버리는 대신 생명을 불어넣는 사업을 한다며, 폐자재를 에너지로 전환하고 건설·인테리어 산업의 잉여 자원을 순환 가능한 자원으로 바꾸는 실험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의심이 들었다. ‘폐자재의 에너지 전환’, ‘자재 순환’ 같은 말들은 그럴듯해 보였지만, 내 머릿속에는 ‘그린워싱(green-washing)’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다. 당시 우리 회사는 실적, 세일즈, 고객사 관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괜히 친환경 타이틀을 잘못 붙였다가 오히려 손해를 보는 건 아닐까 걱정이 앞섰다. 상업용 부동산과 인테리어 업계에서는 ESG 실천 사례 자체가 드물었고, 우리가 먼저 나설 이유도 명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테스트 시뮬레이션은 그런 의심을 무너뜨렸다. 환경을 위한 선택
부동산 투자에서 수익률은 나침반과도 같다. 모든 투자자는 그 지표를 따라 나아간다. 하지만 동일한 목적지를 향해 출항해도, 어떤 배를 탔느냐에 따라 항로는 달라진다. 최근 알스퀘어 리서치센터가 발표한 '2025 서울 코리빙 리포트 Part 2'는 코리빙과 기업형 임대주택이라는 두 모델이 같은 수익률이라는 항구에 도달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항해 경로를 그려냈다는 점을 보여준다. 분석은 서울 마포구 한 오피스텔을 가정 자산으로 설정해 시작된다. 연면적 약 2000평, 지하 2층~지상 10층 규모의 이 건물을 500억원에 매입한다고 가정하고, 하나는 코리빙으로, 다른 하나는 기업형 임대주택으로 운영하는 시뮬레이션이다. 수익률만 놓고 보면 큰 차이는 없다. 자기자본수익률(ROE)은 3.4%, 소득수익률은 3.9%로 양쪽 모두 유사한 수준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 수치를 만들어내는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코리빙은 '프리미엄 주거' 전략을 택한다. 총 129실, 객실당 월 21만500원의 임대료를 받고, 1층과 각 층 일부에 공용 라운지, 회의실, 코워킹 스페이스, 헬스장 등 커뮤니티 공간을 구성한다. 반면, 기업형 임대주택은 커뮤니티 공간 없이 163실까지 수용 인원을
새 정부는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는가. 이 질문은 오래 뒤로 밀려 있었다.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시작된 이후, 시장의 스포트라이트는 일관되게 ‘주거’에 쏠려 있었다. 초고강도 대출 규제와 다주택자 세금 논쟁, 공급 확대와 전세 사기 대책까지. 대부분의 정책 보도와 논의는 주택 시장 중심이었다. 하지만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주택과는 다른 규칙, 논리로 움직인다. 오피스, 물류센터, 데이터센터, 대형 빌딩 등은 다른 이해관계자들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상업용 시장에 대한 정부 정책의 영향은 주거 못지않게 심대하며, 때로는 여파가 더 구조적이다. 2024년 상업용 부동산 거래량은 4.6만 건으로 2023년 대비 11.6% 감소했다. 연간 거래량이 5만 건 이하로 줄어든 것은 2008년 이후 16년 만이다. 수도권은 0.9% 하락에 그쳤지만, 비수도권은 8.3%나 떨어졌다. 흥미롭게도 전국 평균 가격은 0.4% 상승했는데, 이는 수도권 거래 비중이 48.6%에서 54.9%로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시장이 ‘안전자산 선호’로 급격히 기울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수사와 현실 사이의 간극 이재명 정부는 ‘시장 안정화’라는 기조를 내세우
정부기관 이전만큼 지역 부동산 생태계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오는 사건은 드물다.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 결정은 단순한 행정기관의 위치 변경이 아니다. 이는 침체된 부산지역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조류를 만들어내는 전환점이다. 동시에 서울 중심의 부동산 패러다임에 균열을 가져올 수 있는 신호탄이다. 현재 부산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20%에 가까운 높은 공실률로 대변되는 깊은 침체 속에 있다. 하지만 해양수산부 이전과 함께 예고된 북항 재개발, 그리고 향후 추진될 수 있는 공공기관 추가 이전은 이 지역에 새로운 성장 동력을 줄 것이다. 반면 서울, 수도권 시장은 당장 큰 변화가 없겠지만, 수요 구조의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 부산, 긴 침체의 터널 끝에서 보이는 희미한 빛 부산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현실은 냉혹하다. 한국부동산원 자료에 따르면 2024년 4분기 부산지역 오피스 공실률은 18.1%로 전국 평균 8.9%의 두 배에 달한다. 중대형 상가 공실률 14.2%, 임차권리금이 있는 상가 비중의 감소 등 모든 지표가 시장의 어려움을 드러낸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임대료 하락세다. 부산 오피스 평균 임대료가 ㎡당 7,100원으로 전년 대비 0.9% 하락한
“이게 2025년 맞나요?” 서울 영등포의 한 스타트업 사무실에서 마주한 이덕행 랜드업 대표의 말이 뇌리에 박혔다. 그는 책상 위에 엑셀 파일 수십 개를 펼쳐놓고 덧붙였다. “아직도 부동산 개발은 사람이 손으로 수치를 계산하고, 오류가 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죠.” 그의 옆, 모니터 속 서비스를 보며 다시 한 번 놀란다. 주소 하나만 입력하면 15페이지짜리 사업성 분석 보고서가 몇 분 만에 완성되는 시대. ‘반복’은 기계에게 넘기고, ‘판단’은 사람의 몫으로 남기는 흐름이다. 그 짧은 장면에서 글의 주제를 떠올렸다. 지난 3개월여간, 프롭테크 생태계에서 빠르게 성장 중인 창업자 12명을 만났다. 랜드업, 파이퍼블릭, 디스코, 삼삼엠투(스페이스브이), 아키스케치, 포비콘, 데브올컴퍼니, 클라우드앤, 이제이엠컴퍼니(우리가), 지오그리드, 레디포스트, 컨텍터스. 세부 영역은 달랐지만, 이들이 공통적으로 건드린 지점은 명확하다. 반복을 줄이고, 관계를 정비하며, 구조를 새로 짜는 기술의 등장이다. 주소 하나, 수작업의 끝: 반복을 바꾸는 기술들 “사업성 검토만 일주일, 그 사이 기회는 남의 손에 넘어갑니다.” 이덕행 대표가 내놓은 해법은 복잡하지 않았다. 주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