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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Life

[내궁내정] 중동이 석유·모래·낙타를 수입한다고?…석유왕국·사막의나라 '자원의 역설'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편집자주> 유튜브, 인스타 등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들이 '협찬을 받지 않았다', '광고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보이기 위해 "내 돈 주고 내가 샀다"라는 뜻의 '내돈내산'이라는 말이 생겼다. 비슷한 말로 "내가 궁금해서 결국 내가 정리했다"는 의미의 '내궁내정'이라고 이 기획코너를 명명한다. 우리 일상속에서 자주 접하는 소소한 얘기거리, 궁금증, 호기심, 용어 등에 대해 정리해보는 코너를 기획했다. 석유와 사막 그리고 낙타로 상징되는 중동이 정작 석유·모래·낙타를 ‘수입’한다고? 이런 거짓말같은 현실은, 자원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게 만드는 역설 그 자체다. 이 역설을 따라가다 보면, 자원 부국의 진짜 힘은 땅속이 아니라 ‘분류하고 선택하는 능력’에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1. 석유왕국이 정제유를 사들이는 구조 세계 최대 산유국 중 하나인 사우디가 정제유(휘발유·경유·항공유 등)를 수입한다는 사실은 직관을 정면으로 배반한다. 사우디 통계총국이 발간한 2024년 석유·가스 통계에 따르면, 사우디는 2024년 기준 정제 연료 제품 가운데 특히 연료유(fuel oil)를 중심으로 수입을 기록했다. 해당 보고서는 연료유 수입이 약 7,980만 배럴에 달해 정제제품 수입 중 최대 비중을 차지했다고 밝힌다. 세계은행 WITS 데이터에서도 사우디가 아랍에미리트, 이집트, 그리스, 러시아, 오만 등으로부터 연료 관련 품목(HS 27류)을 꾸준히 수입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한편 사우디는 동시에 정제석유 수출국이기도 하다. 국제무역 데이터 플랫폼 OEC에 따르면 2023년 사우디의 주요 수출 품목 중 하나가 약 296억 달러 규모의 정제석유(Refined Petroleum)였다. 이 모순적인 흐름은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정제 설비의 구성 문제: 사우디의 정유공장은 역사적으로 수출용(디젤·연료유 중심) 포트폴리오에 맞춰 설계돼 왔다. 내수에서 특정 규격의 휘발유·항공유가 급증할 경우, 일부 품목은 해외에서 들여오는 편이 단기적으로 효율적일 수 있다. ▲내수 수요 폭증: 2021년 기준 사우디의 자동차·항공유 수요는 전년 대비 증가세를 보였고, 모터·항공 휘발유 수요는 일 평균 47만 배럴로 직전 연도 43만2000 배럴에서 뛰었다는 시장조사 자료가 있다. 이 같은 구조적 수요 증가는 정제 제품의 ‘수입+수출’ 동시 확대를 낳는다. ▲가격·수급 전략: 국제 시장에서 특정 정제제품의 스프레드(정제마진)가 좋을 때는 원유를 수출하고, 필요한 특정 정제유는 다른 정유 허브(예: UAE, 그리스)에서 사오는 것이 경제적으로 합리적일 수 있다. 결국 ‘석유 부국’ 사우디가 석유제품을 수입하는 이유는, 땅속이 아니라 정유 설비 구성과 가격 구조, 수급 전략에 따라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있다. 산유 여부보다 ‘어떤 포트폴리오로 정제·수출·수입을 조합하느냐’가 국가 에너지 전략의 핵심이 되고 있는 것이다. 2. 사막이 모래를 수입하는 시대…네옴과 글로벌 모래 위기 국토의 90% 이상이 사막이라는 사우디가 건설용 모래를 수입한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차례 국내외에서 화제가 됐다. 사막 모래는 오랜 기간 바람에 마찰·침식되면서 입자가 너무 곱고 둥글어, 시멘트와 충분히 ‘걸려붙지’ 못한다. 콘크리트 강도를 확보하려면 강바닥·하천·채석장에서 나오는 각진 모래와 자갈, 즉 골재가 필요하다. 환경 사이트 earthwow.org는 중동·사하라 이남 국가들이 호주 등에서 건설용 모래를 연간 수억 달러 규모로 수입하고 있다고 전한다. 예컨대 호주는 연간 약 4억5000만 달러 규모의 건설용 모래를 중동 등으로 수출하는데, 사우디 역시 영국·호주 등으로부터 건설용 모래를 들여온다는 사례가 소개된다. 타임스오브인디아는 "2023년 기준 호주가 2억7,300만 달러 규모 모래를 수출하는 세계 2위 모래 수출국이며, 이 가운데 일부가 사우디 등 걸프 지역으로 향한다"고 보도했다. 사우디는 2023년 호주로부터 약 14만 달러 규모의 자연 건설용 모래를 수입한 것으로 집계된다. 금액 자체는 전체 프로젝트 규모에 비해 미미하지만, 상징성이 크다. ‘모래 부자’가 특정 규격의 모래만큼은 외국에 의존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사우디의 초대형 미래도시 프로젝트 ‘네옴(NEOM)’과 직선형 도시 ‘더 라인(The Line)’은 이 모래 수입의 정치경제적 의미를 극적으로 드러낸다. 다수 자료에 따르면 네옴은 총 5,000억 달러 규모 투자 계획을 앞세운 초대형 개발로, 초고층·장거리 인프라 건설에 막대한 콘크리트와 특수 골재를 필요로 한다. 이 수요를 자국 사막 모래로만 충당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에 가깝고, 결국 수입·국제 조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 현상은 중동만의 특수성이 아니다. UAE는 팜 주메이라·부르즈 칼리파 등 초대형 건설을 위해 2000년대 이후 수천만 톤의 모래를 해외에서 들여오며 세계 최대 모래 수입국 중 하나가 됐다. 타임스오브인디아 및 여러 기사들은 이러한 수요가 ‘글로벌 모래 위기’를 촉발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철학적으로 보면, ‘모래의 나라가 모래를 사오는’ 현실은 자원이라는 개념을 정면으로 바꿔 놓는다. 풍부한 양이 아니라, 특정 산업·기술이 요구하는 ‘질과 규격에 맞는 자원’만이 자원으로 인정받는 시대다. 이는 곧 “세계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자원의 의미도 바뀐다”는 문명사적 메시지이기도 하다. 3. ‘낙타 왕국’이 낙타를 사오는 까닭 사우디아라비아는 전통적으로 낙타의 나라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호주·아프리카 등에서 낙타를 꾸준히 수입하고 있다. 호주에는 19세기 후반 사막 운송용으로 들여온 낙타가 야생화돼, 2013년 기준 16만 마리 이상이 관리 프로젝트에서 제거될 정도로 ‘과잉 개체’가 된 상태다. 이 호주의 야생 낙타 일부가 다시 중동으로, 특히 사우디를 향해 ‘역수출’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낙타 수입에는 크게 세 가지 층위가 있다. ▲경주·쇼용 고급 혈통: 걸프 지역에서 낙타 경주와 ‘낙타 미인대회’는 연 수천만 달러 규모 시장을 형성하며, 혈통 좋은 개체는 한 마리에 수십만 달러를 호가하기도 한다. ▲식용·가죽용 단가 절감: 사우디 현지 낙타는 의식·경주용 비중이 높아, 도축용으로 키우기엔 비용·물 부족 부담이 크다. 이에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아프리카·호주의 낙타를 고기·가죽용으로 수입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유리하다는 분석이 많다. ▲질병 리스크 관리: 호주의 야생 낙타는 상대적으로 질병이 적고 ‘건강한 개체군’으로 평가되면서, 일부는 중동의 식용·경주 시장에서 선호된다는 설명도 나온다. 문화적으로 보면, 사우디에서 낙타는 한국의 ‘소’와 비슷한 위치를 차지한다. 단순 가축이 아니라, 부족 정체성과 남성성, 전통적 생존 능력을 상징하는 존재다. 그 상징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사우디는 더 빠르고, 더 예쁘고, 더 건강한 낙타를 외부에서 ‘골라 사오는’ 길을 택했다. 자급이 아니라 ‘선택적 수입’을 통해 전통 자산의 품질을 업그레이드하는 방식이다. 4. 중동이 수입하는 또 다른 ‘의외의 물건들’ 사우디와 걸프 국가들이 수입하는 품목을 들여다보면, 석유·모래·낙타 외에도 ‘역설적인’ 수입품들이 적지 않다. ▲식량·농산물: 넓은 사막과 수자원 부족 탓에, 사우디는 밀·곡물·설탕·쌀 등 기본 식량을 대규모로 수입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글로벌 조달 가이드북에 따르면 쌀·설탕 등 기본 식품과 의약품, 대형 프로젝트 기자재 등은 대체로 무관세 또는 낮은 관세로 수입을 장려하고 있다. ▲담수화 설비·물 기술: 걸프 국가들이 막대한 예산을 담수화 플랜트, 해수 취수·정수 설비, 관련 기술 수입에 쏟고 있다는 점은 에너지·환경 보고서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된다. 에너지는 넘치지만 물이 부족한 전형적인 ‘에너지-워터 넥서스’ 구조다. ▲철강·시멘트·건설 기자재: 사우디 관세·무역 자료에 따르면, 국내 제조 산업 보호를 위해 철강관·시멘트·철망 등 일부 건설 자재에 20% 관세를 부과하면서도, 대형 프로젝트에 필요한 특정 기자재는 무관세로 들여오고 있다. 이는 “언제든 수입으로 대체 가능해야 한다”는 인프라 리스크 관리의 시각이 깔린 정책이다. ▲소비재·전자제품: OEC 무역 데이터 기준, 사우디의 수입 상위 품목에는 자동차·기계류·전기·전자기기, 통신장비, 의료기기 등이 포함돼 있다. 사우디는 원유·석유화학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첨단 제조국의 공산품·기술을 ‘대량 구매’하는 전형적인 자원국 모델을 보인다. 이 ‘의외의 수입품 리스트’는 하나의 공통 질문으로 수렴한다. “사우디는 왜 스스로 다 만들지 않는가?” 경제학적으로 보면, 이는 자원의 절대량이 아니라 ‘기회비용’을 기준으로 한 선택이다. 석유와 가스, 석유화학 투자가 압도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보이는 상황에서, 굳이 모든 산업을 자급하려 하기보다 일부 영역은 수입에 의존하고 석유 수익으로 메우는 편이 합리적일 수 있다. 결국 석유·모래·낙타까지 사들이는 중동의 역설은, 우리가 ‘풍요’와 ‘자립’을 어떻게 정의해 왔는지 되묻는 거울이 아닐까? 자원이 ‘있는가/없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분류하고, 어떤 이야기를 붙이고, 어디에 쓸 것인가’의 문제라면, 진짜 부는 매장량이 아니라 ‘해석과 설계의 능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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