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정영 기자, 이종화 기자]
한 동네 대중목욕탕을 방문한 한 지인은 황당한 경험을 했다. 목욕탕 안에 비치된 모든 수건에 큼지막한 글자로 ‘훔친 수건’이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에게 물어보니 "목욕하러 온 손님들이 수건을 너무 많이 가지고 간다"며 "이렇게 라도 해야 창피해서라도 안가져갈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요즘 새롭게 짓는 아파트에는 사우나, 수영장, 헬스장, 골프장, 독서실, 카페 등을 갖춘 커뮤니티시설은 필수다. 하지만 사우나, 수영장에 수건이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이유는 이용객들이 워낙 많이 가져가거나, 마구 써버려 세탁비용을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최근 강남의 반포동 A아파트에서 재미있는 투표가 진행됐다.
<커뮤니티센터 수건 및 소모품 지급종료 입주민 동의(찬/반) 투표>라는 제목처럼 커뮤니티센터(남, 여 사우나, 헬스장, 골프장)에서 사용하던 수건 및 소모품(거품타올, 로션, 스킨, 치약, 헤어젤등) 지급종료에 대한 입주민 동의(찬/반) 투표를 진행한다는 내용이었다.
입주자대표회의의 투표취지에서 "일부 주민의 수건 및 소모품 남용 관련해 민원이 지속 발생하고 있으며, 지난 2023년 1년 비용이 1억1300만원이 소요됐다"고 설명했다. 그 비용은 고스란히 주민들의 관리비 증가로 이어졌다.
5일간의 투표를 거친 결과 '지급종료 반대세대가 과반수 이상을 득표해 현행 제도가 그대로 유지한다'는 결론이 났다. 좀 더 자세히 알아보면 1603세대가 투표에 참여(투표율 65.6%)했으며, 이중 지급종료 찬성은 720표, 지급종료 반대(현상태 유지) 883표, 투표세대 대비 찬성률은 44.9%로 나타났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일부 몰지각한 이용자들은 무료로 수건을 쓸 수 있으니까 개인적인 이기심으로 수건을 가져가거나, 1~2장이면 충분한데도 3장 이상씩 사용하는 일이 벌어진다. 결국 수건은 점점 바닥나게 되고, 세탁비용등의 증가로 인해 결국 목욕탕은 수건제공을 중단한다. 수건을 휴대하지 않고 목욕탕을 사용했던 수많은 이용자들이 결국 피해를 입게 된다.
수건 뿐만 물도 마음껏 사용한다. 집에서 샤워할때는 딱 씻을 때만 물을 사용하지만, 목욕탕에서는 샤워기를 틀어놓고 다른 볼일도 보러가고, 씻고 또 씻고, 이른바 '물펑펑 재벌'로 변신한다. 왜냐하면 더 사용한다고 당장 나에게 비용지불이나 특별한 불이익이 없어서다.
만약 목욕탕에서 수건을 무료로 나눠주는 대신 집에서 수건을 가지고 오도록 하면 어떤 장점이 있을까. 우선 목욕탕 입장에서는 수건구입비용과 관리세탁비용이 없어진다. 이전에는 수건을 구입하고, 세탁하고 개어 놓아야 했다. 아울러 목욕탕의 세탁하는 물과 전기세도 아낄 수 있다. 또 다른 장점은 잃어버린 수건을 되찾을 수 있다. 집으로 수건을 가지고 간 몰지각한 이용객들이 다시 그 목욕탕 수건을 가지고 올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이렇게 공짜 수건을 가지고 가고, 목욕탕 물을 펑펑 쓰는 이유는 나쁜 손버릇과 이기주의, 몰지각한 시민의식으로도 충분히 설명가능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 경제학적 이유 ‘공유지의 비극(公有地의 悲劇, 영어: The Tragedy of the Commons)’이란 개념이 있다.
공유지의 비극이란, 모든 사람이 함께 사용해야 할 공공자원을 제한없이 마구잡이로 사용해 고갈될 위험에 처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갈치 값이 오른다고 갈치를 마구잡이로 포획한다면, 결국 갈치가 바다에 더 이상 잡히지 않는 현상이 발생한다. 또, 공동으로 쓰는 초원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소를 방목하게 되면, 그 초원은 결국 황무지가 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즉, 개인의 이익을 최대로 얻기 위한 행동으로 인해 결국 다른 모든 사람이 피해를 입게 되는 현상을 공유지의 비극이라고 한다.
이 개념은 1833년 영국의 경제학자 윌리엄 포스터 로이드(William Forster Lloyd)가 쓴 에세이에서 유래됐다. 그는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규제되지 않은 방목의 영향을 가상의 예로 사용했다. 이 개념은 1968년 개릿 하딘(Garrett Hardin)에 의해 쓰여진 기사 이후 1세기 후에 '공유지의 비극'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 용어는 지구 온난화에 대한 논쟁뿐만 아니라 지속 가능한 개발, 경제 성장, 환경 보호와 관련해 자주 인용된다. 경제, 진화 심리학, 인류학, 게임 이론, 정치, 조세, 사회학 분야의 행동 분석에도 사용됐다.
하딘은 또한 집단의 모든 구성원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고 공동의 자원을 사용한다면, 모든 자원이 결국 고갈될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합리적인 사리사욕을 가지고 행동하는 개인의 문제를 지적했다. 전반적으로 하딘은 양심에 의지하는 것을 반대하며, 이것이 더 이타적인 사람들보다 이기적인 사람들(흔히 무임승차자)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암시했다.
자연에서 발생하는 공유지의 비극이론은 지식자원에도 적용할 수 있는데, 인터넷에서 우리가 얻는 지식은 공짜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많은 노력을 들여 좋은 지식을 만들었어도 공짜로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잘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지식에 대해서는 지적 재산권을 허용해야 사회적으로도 양질의 지식콘텐츠가 생겨나게 된다.
반면 '반공유지의 비극'이라는 것도 있다. 마이클 헬러가 1998년에 사용한 이 개념은 "생의학 연구분야에 지나치게 높은 수위의 지적재산권제도와 특허과잉으로 오히려 활용도 못하고 방치"된 상황을 말한다.
이렇게 작은 허점을 방치하면 더 큰 범죄가 이어진다는 '깨진 유리창 이론(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교수 필립 짐바르도 교수가 1969년에 발표한 이론)'에 따라 작고 사소한 것을 방치하고 등한시하면 결국 전체가 무너진다. 공유지의 비극도 마찬가지다.
즉 개인의 이익 추구가 결국 전체의 이익을 해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각자가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며 행동할 때, 그 결과는 종종 전체 집단에게는 불리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또 '내 행동 하나가 어떤 영향을 미칠까?'라는 사회적 책임에 대한 공동체 의식을 항상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공유지의 비극〉 이전에 나온 생태학자 레이철 카슨이 1962년 발간한 《침묵의 봄》(Silent Spring)이란 책이 있다. '사람들의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DDT를 남용하고 있고, 이 결과로 본래 의도했던 잡초나 병충해의 제거 수준을 넘어서 모든 곤충과 나아가 조류와 동물들까지 모두 사라지고 생태계가 파괴되어서 봄이 와도 아무런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상황을 우화로 묘사'한 것이다. 현대의 환경운동과 환경윤리학의 시초가 된 책으로, 하딘의 〈공유지의 비극〉 역시 이 연장선에 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과도 유사한 점이 많다. 다만 그레샴의 법칙은 품질이 동등하지 않은 화폐의 폐해를 논한 것이고, 공유지의 비극은 비사유지의 비애에 대해 논했다는 점이 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