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스페이스=김희선 기자] 2018년 대한민국을 뒤흔든 ‘라돈 침대’ 사태가 7년 만에 법적 마침표를 찍었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2025년 7월 3일, 소비자 130여명이 대진침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질병 발생이 없더라도, 독성물질 노출로 인한 정신적 고통은 사회통념상 손해배상 대상”이라며 “매트리스 가격과 위자료 각 100만원을 지급하라”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는 라돈 검출 매트리스 제조사가 소비자 정신적 피해에 대해 배상 책임을 진 첫 대법원 확정 판결이다. 또 생활제품에서의 방사성 물질 관리와 소비자 안전에 대한 사법부의 첫 명확한 기준 제시로 평가된다.

라돈 침대 사태, 어떻게 시작됐나
2018년 5월, 대진침대가 판매한 매트리스에서 방사성 물질인 라돈이 다량 검출됐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대규모 사회적 파장이 일었다.
원자력안전위원회 조사 결과, 일부 제품의 방사선 피폭량이 안전기준의 최대 9.3배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의 핵심은 대진침대가 ‘음이온 효과’를 내세워 매트리스에 모나자이트 분말을 코팅했는데, 이 물질에서 라돈이 방출된다는 사실을 제조·판매 당시 알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1심에서는 “관련 규제 법령이 없었다”며 소비자 패소 판결이 나왔으나, 2심과 대법원은 “안전성 결여·과실 인정, 정신적 손해 배상 필요”로 판단을 뒤집었다. 다만, 매트리스를 함께 사용한 가족의 청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라돈, 왜 국민건강에 치명적인가
라돈은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센터(IARC)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로, 흡연 다음으로 폐암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이다. 무색·무취의 기체인 라돈은 공기보다 무거워 실내에 쉽게 농축되며, 호흡기를 통해 체내로 유입돼 폐 조직을 파괴한다.
WHO는 전 세계 폐암 환자의 3~14%가 라돈에 의해 발병한다고 추정한다. 국내에서도 실내 라돈 노출로 인한 초과 폐암 사망자가 연간 2000명에 육박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성장기 아동·노약자에게는 더욱 치명적이다.
정부는 2019년 공동주택 라돈 권고기준을 148Bq/m³로 강화(세계 최고 수준)했으나, 자연 발생 비중이 높고 자재·환기·시공 등 관리 사각지대가 많아 갈등의 불씨가 여전하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백도명 교수 연구팀의 ‘라돈 침대 건강영향조사’ 발표에 따르면, 라돈 침대 피해자들의 폐암 비례 유병비는 일반 인구에 비해 남성 5.9배, 여성 3.5배 높았으며 침대를 사용한 기간이 길수록 이 비율은 높아졌다.
백 교수는 “침대를 사용한 기간이 5년 이하인 분들보다 5년 이상 되는 분들에게서 비율이 2배 정도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모두 일반 인구보다 10세 이상 젊은 나이에 폐암 진단을 받았다. 라돈 침대 사용 후 폐암 진단을 받은 남성의 평균 연령은 57.9세, 여성은 58.8세였는데, 일반 인구 남성은 69.7세, 여성은 67.5세였다.

백혈병 비례유병비 역시 남녀 모두에게서 높게 나타났다. 라돈 침대를 이용한 남성의 백혈병 비례유병비는 일반 인구보다 5.3배, 여성은 5.1배 높았다. 또 라돈 침대 이용 남성이 백혈병에 걸린 평균 연령은 35세로 일반 백혈병 유병자의 평균 연령(47.6세)보다 12세 이상 적었다.
백 교수는 “전체적인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대진침대 사용 후 건강 이상이 신고된 피해자들의 건강영향과, 대진침대에서 검출된 라돈의 연관성을 제시하는 근거를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폐암뿐 아니라 백혈병도 발생 위험이 증가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WHO와 질병관리본부는 “흡연하지 않아도 라돈만으로 폐암을 유발할 수 있으며, 실내 라돈 농도 100Bq/m³가 증가할 때마다 폐암 발병률이 16% 증가한다”고 설명했을 정도로 무색무취의 매우 위험한 기체이다.
환경전문가는 “라돈 노출에 있어서 ‘이 농도 이하라면 안전하다’는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피폭량이 낮을수록 암 발생 위험도 줄어든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라돈 검출 침대·가구업체, 어디였나
2018년 라돈사태의 진원지인 대진침대는 21개 모델에서 기준치 초과 라돈이 검출돼 전국적 수거 명령 및 소송전으로 이어졌다. 1만7000여개 라돈 매트리스가 야적장에 쌓이는 등 사회적 파장을 몰고왔다.
씰리침대 역시 2019년 자사 매트리스에서 라돈이 검출돼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이후 공식 라돈 안전인증(KSA) 취득, 현재도 인증을 유지하고 있다.
에이스침대, 템퍼코리아 등도 한때 라돈 관련 논란에 휘말리면서, 소비자들의 거센 요구와 비난에 못이겨 에이스침대는 2019년 KSA(한국표준협회) 라돈안전인증을 획득했다. 하지만 2022년 갱신을 중단한 상태다.
한샘, 현대리바트, 퍼시스그룹, 에이스침대, 신세계까사를 비롯해 국내 침대가구업계 상위기업 중 시몬스침대와 씰리침대만 유일하게 라돈안전인증을 유지하고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 관계자는 "라돈 검출 이후 소비자들의 불안한 심리에 편승해 공포마케팅차원에서 침대업체들이 경쟁적으로 라돈 공식 인증 취득 및 일부 제품 리콜 등 자구책을 마련했었다"면서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소비자들의 관심도가 떨어지자, 라돈인증 갱신을 하지 않는 업체도 있어 경각심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라돈 이슈, 국민 건강과 산업계에 남긴 과제
라돈 침대 사태는 침대·가구업계에 ‘친환경·방사능 안전 인증’이 필수임을 각인시켰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인증 유지에 소홀한 업체가 늘고, 소비자 경각심도 약화되는 등 ‘안전불감증’이 재차 문제로 지적된다.
KSA 라돈안전인증은 현장심사 등 엄격한 절차를 거치나, 비용 부담(매트리스당 150~200만원)과 매년 갱신의 번거로움으로 인증 포기 업체가 증가하고 있다. 심지어 이효리를 모델로 내세워 광고하는 슬로우베드(퍼시스그룹의 침대 매트리스)는 민간 시험성적서를 ‘공식 인증’처럼 오용해 소비자 혼란을 초래했다.
이런 침대업계의 '꼼수'에 대한 법적 강제력은 부재한 상태며, 라돈 기준치 준수는 ‘권고사항’에 그치고 있다. 그래서 더욱 더 소비자들이 감시자가 되어 구매시 더 꼼꼼하게 살펴보는 주의가 필요하다.
라돈은 실내 공기질의 가장 중요한 환경 방사선원으로, 국민건강 보호를 위해 엄격한 관리 기준과 실효성 있는 인증제도, 주기적 모니터링이 필수적이다.
대법원 확정 판결로 대진침대 사태는 법적으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라돈의 잠재적 위험과 관리 소홀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숙제로 남아 있다.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한 정부·업계의 지속적 관심과 실효성 있는 안전관리 체계가 절실하다.
조승연 연세대 라돈안전센터장은 "기업이 라돈 인증정보를 명확히 공개하지 않으면 소비자 신뢰를 잃을 것"이라며 "정부는 인증 우수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고, 비용·절차 간소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