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스페이스=최동현 기자] 정부가 산업재해 사망사고 감축을 목표로 역대 최강의 경제적 제재안을 내놓았다. 연간 3명 이상의 산재 사망자가 발생한 기업에 대해 영업이익 최대 5% 상당의 과징금과 최소 30억원의 하한액 부과가 새롭게 도입된다. 이는 기존 처벌 방식이 주로 소액 벌금과 집행유예에 머물렀던 관행을 근본적으로 뒤바꾸는 조치다.
영업이익 5% 과징금과 30억원 하한
노동부는 영업이익 5% 이내에서 산재 사망자 수와 사고 발생 횟수에 따라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공식화했다. 영업이익을 산정하기 어려운 공공기관, 적자기업 등에도 최소 30억원의 하한액을 적용해 기업 규모와 무관하게 실질적 경제적 부담을 가하게 된다. 해당 과징금은 '산업재해예방보상보험기금'에 편입되어 산재 예방과 보상에 활용된다.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와 같은 대기업 영업이익이 10조원에 달할 경우 과징금 한도는 5000억원까지 산정 가능하며, 이는 이전 '매출 3% 과징금'보다 훨씬 강화된 수준이다. 글로벌 기준과 비교할 때 유럽연합(EU)은 산업안전 위반 시 최대 1000만 유로(약 145억원) 수준의 과징금이지만, 한국은 대형사고 발생 시 현저하게 높은 처벌 강도를 도입하는 셈이다.
건설사 등록 말소·영업정지 요건 완화
반복적으로 사망 사고가 발생하는 건설업에 대해서는 등록 말소라는 극약 처방이 신설된다. 최근 3년간 영업정지 처분을 2회 받은 건설사가 다시 영업정지 사유를 만들면 등록 자체를 정부가 말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등록 말소 후에는 수주, 하도급, 신규사업 등 모든 건설 영업활동이 중단된다.
영업정지 요청 요건도 완화된다. 현행은 동시에 2명 이상 사망시에만 허용되었지만, 앞으로는 연간 다수 사망이 발생해도 영업정지 처분이 가능하다. 사망자 수에 따라 영업정지 기간도 기존 2~5개월에서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공공입찰 참가 제한 기간도 3년으로 늘어나고, 중대재해 반복 발생 시 제한을 확대 적용할 수 있도록 한다.
적정 공사비·금융 투자 제재 확대
정부는 저가 수주로 인한 안전관리 소홀을 줄이기 위해 공공·민간 발주자에게 적정 공사비 산정 의무를 부여하고, 산업안전관리비 계상 주체를 원청으로 확대한다. 무리한 공기 단축 방지 목적으로, 폭염 등 기상재해도 공사기간 연장 사유에 추가한다는 방침이다.
중대재해 발생 이력 기업에는 금융·투자 제재도 새로 도입된다. 상장사는 중대재해 판결 시 지체 없이 공시해야 하며,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 스튜어드십 코드에도 직접 반영된다. 반복 기업에는 정책자금, 산재보험기금 등 공적금융 투자도 제한된다. 은행 대출 심사와 자본시장 평가에도 산재 이력이 적용될 예정으로, 기업의 경영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외 제도와 비교, 현장 반응
지난해(2024년) 기준 산업재해로 인한 국내 사망자 수는 약 644명, 산업재해 전체 재해자는 13만348명에 달한다. 새로운 제도 도입으로 OECD 평균(0.29명/1만명) 수준으로 사망률을 낮춘다는 목표가 제시됐지만, 경영계에서는 실효성에 의문을 표명하며 처벌 중심 대책이 재해 예방 전반에 효과적일지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경쟁력 강화를 위한 산업안전 책임이 기업 경영 전반에 내재화되는 구조로 개편되면서, 한국의 산재 예방 정책은 글로벌 기준을 넘어선 강도 높은 제재 체계를 도입했다. 이번 대책이 기업 현장의 안전문화와 제도 집행 실효성을 동시에 끌어올릴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