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회복 연구실] 명절, 관계가 자라는 시간…‘적절한 거리감’과 ‘존중’은 관계의 필수

  • 등록 2025.10.15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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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비(LABi)의 마음 회복 연구실 ⑯

 

◆ 명절에서 알게된 관계의 맥락

 

퇴근길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보면 영락없는 명절 연휴다. 시장에 고소한 기름 냄새가 퍼지고, 오랜만에 만난 식구들의 미소 가득한 모습은 생각만 해도 정겹다.

 

그런데 이 정겨운 풍경 속에서, 나는 문득 코칭의 핵심 원리를 떠올린다. 바로 '다회기' 코칭의 필요성이다.

 

코칭을 공부할 때 동기들과 단 한 번의 만남으로 고객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코칭의 궁극적인 목적은 단순한 '문제 해결'이 아닌, 코치와 고객 간의 '신뢰'를 기반으로 고객이 스스로 '지속 가능한 변화'를 설계하도록 돕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는 물리적인 '시간'과 '반복적인 만남'이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새로운 가족 구성원으로서 명절을 거듭하며 다회기 코칭의 힘을 몸소 느꼈다.

 

◆ 첫 회기: 낯선 긴장감, ‘정답 매뉴얼’을 찾다

 

나의 첫 명절은 코칭의 1회차와 닮아 있었다.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 앞에서 나는 완벽한 ‘며느리 매뉴얼’을 찾고 있었다.

 

“이때는 어떤 말을 해야 할까?",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모든 행동을 채점받는 듯 조심스러웠다.

 

코칭에서도 첫 회기에는 고객이 아직 마음을 열지 않는다. 준비된 이야기, 피상적인 고민만을 내놓는다. 코치 또한 고객의 맥락을 모르기에, 표면을 맴도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는, 설령 코치가 명쾌한 '조언'을 던지더라도 고객은 그것을 자신의 삶에 뿌리내리기 어렵다. 단발성 코칭이 주는 효과가 미미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첫해 명절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나는 육체적인 피로보다 관계에서 오는 극도의 긴장감에 지쳐 있었다. 관계의 표면만을 오갔기에, 진정한 '연결감'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 시간이 쌓는 '신뢰의 자본', 코칭의 깊이가 되다

 

다행히 명절은 매년 돌아온다.
그 덕분에 가족은 정기적으로 만나며 관계의 자본을 쌓는다. 그래서 해가 거듭될수록 명절은 나에게 코칭의 3회차, 5회차가 되어갔다.

 

시어머니께서 겉으로는 무뚝뚝하지만 사실은 섬세한 분이시라는 것, 시아버님이 좋아하시는 음식이 무엇인지, 시누이가 어떤 타이밍에 농담을 건네는지 알게 되면서 우리만의 ‘맥락’이 쌓여갔다.

 

코칭도 같다.
2회차, 3회차를 지나며 코치는 고객의 언어 습관, 가치관, 민감한 지점, 삶의 패턴을 알아간다.
고객도 코치의 질문 방식에 익숙해지며, 준비된 답이 아닌 ‘진짜 이야기’를 꺼낸다.

 

그때부터 대화는 표면에서 깊이로 이동한다. 관계도 그렇게 변했다. 시간과 반복된 만남 속에서 긴장보다 공감의 지대가 넓어졌다.

 

이제는 ‘나’라는 개인이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 안전하게 머무르고 있음을 느낀다.

 

◆ 중요한 것은 ‘거리감’과 ‘존중’

 

그러나 가까워진다는 것은 곧 경계가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코칭에서 코치는 고객과 수평적 파트너십을 유지해야 한다. 감정적으로 너무 밀착하거나, 자신의 에고를 투영하면 그것은 더 이상 코칭이 아니다. 


전문성과 신뢰는 ‘적절한 거리감’에서 비롯된다.

 

새로운 가족 관계도 비슷하다. 가까워졌다고 해서 상대방의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 가족이 되었다는 신뢰는 '친밀함'을 의미하지만, 그 친밀함은 반드시 '존중'이라는 거리감 위에서 피어나야 한다.

 

이 존중이라는 울타리가 무너질 때, 관계는 코칭이 아닌 간섭이 되고, 공감이 아닌 침범이 된다.

 

신뢰는 한 번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기적인 만남과 일관된 태도를 통해 시간이 쌓아 올리는 관계의 자산인셈이다.

 

그래서 우리 주변의 모든 관계는 팀 동료와의 협업이든, 리더와 구성원 간의 소통이든, 혹은 사랑하는 가족 간의 유대이든, 모두 첫 만남의 낯선 긴장을 넘어서기 위해 시간이라는 여러 번의 만남을 필요로 한다.

 

★ 칼럼니스트 ‘래비(LABi)’는 어릴 적 아이디 ‘빨래비누’에서 출발해, 사람과 조직, 관계를 조용히 탐구하는 코치이자 조직문화 전문가입니다. 20년의 실무 경험과 워킹맘으로서의 삶을 바탕으로, 상처받은 마음의 회복을 돕는 작은 연구실을 열었습니다.

김문균 기자 newsspac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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