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름이 가진 마법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 「꽃」 中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이름이 가진 힘을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는 건, 잠시 그 사람에게 시선을 옮기는 일이다. 그 순간 상대는 ‘꽃’이 된다.
그런데 나는 다른 사람 이름은 잘 부르면서, 정작 내 이름을 마지막으로 불러본 게 언제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릴 때는 나를 가리키며 “래비는요~” 하곤 했다. 세상에서 내가 중심이고 소중한 존재라는 걸 당연하게 알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나를 부르는 말은 점점 사회적 역할로 바뀌었다.
나는 여전히 ‘와이프’, ‘엄마’, ‘팀장’, ‘며느리’, ‘자식’이라는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운다. 그 이름들은 때로는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때로는 진짜 내 모습을 가렸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불리우고 싶은 내 진짜 이름은 무엇일까.
◆ 코칭이 시작한 이름 찾기의 여정
그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길에서 코칭을 만났다.
코칭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이 있다.
“오늘 호칭은 뭐라고 불러드릴까요?”
이건 단순한 호칭을 정하는 프로세스가 아니다. 그 사람이 누가 되어, 어떤 시선과 정체성으로 이 문제를 바라볼 것인가를 정의하는 중요한 첫걸음이다.
여러번 세션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매번 '고객님'으로 불리던 분이 있었다.
“오늘은 저를 ‘수진씨’라고 불러주세요.” 그날의 주제는 ‘엄마’로서의 고민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직감적으로 그 문제를 ‘엄마’라는 역할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바라보고 싶었던 것 같다.
자신의 본명을 선택한 건은 그 순간만큼은 역할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가장 나답게 이 문제를 바라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요청을 들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 이게 바로 이름이 가진 힘이구나’
◆ 가면 뒤에 숨은 나를 찾아서
코칭을 경험할수록 코칭이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는 대화의 기술이 아님을 깨닫는다. 다양한 역할의 가면 뒤에 숨어 있던 나를 다시 만나고, 그 존재에 새로운 이름을 붙이는 과정 같다.
그때부터 나는 내 이름을 다시 불러주기 시작했다.
이 칼럼에 쓰는 ‘래비(LABi)’라는 이름도 그중 하나다. 어릴 적부터 가져온 아이디였던 ‘빨래비누’에서 시작됐지만, 지금은 코치로서의 나를 지탱하는 새로운 이름이다. 누가 준 호칭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이름이다.
◆ 이름을 내려놓고 새로 피어난 사람들
코칭을 배우는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 중에는 이미 사회적으로 성공적인 경력을 쌓은 임원 출신 동기들이 있었다.
그들은 높은 자리에서 수많은 성과를 이끌었지만, 한 목소리로 말했다. “현역 시절에 경청과 존중을 먼저 알았다면, 더 많은 사람들의 가능성을 끌어낼 수 있었을 텐데요.”
특히 한 동기의 말이 오래 남았다. “늘 해답을 주던 리더였는데, 이제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되려니 참 어렵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제야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것 같아 행복합니다.”
이미 많은 것을 이룬 리더였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제는 ‘코치’라는 이름으로 다시 걸음을 내딛는 그의 용기와 겸손이 깊이 전해졌다.
우리는 서로의 시도를 지켜보고, 실수를 감싸주고, 성장을 응원한다. 지금 이 글도 코치로서 새롭게 불리게 될 동기들에게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위로이자, 잘 가고 있다는 확신이 되었으면 한다.
◆ 나는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싶은가.
앞으로도 나는 여러 이름으로 불릴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이름이 붙더라도 그 중심에는 ‘코치’라는 철학이 있을 것이다.
존재를 인정하고, 경청하고, 성장을 돕는 힘을 삶의 방식으로 삼고 싶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겠다는 선언이다.
내 이름 앞에 ‘사람을 깨우는 코치’, ‘가능성을 여는 코치’라는 수식어가 붙기를 바란다.
※ 칼럼니스트 ‘래비(LABi)’는 어릴 적 아이디 ‘빨래비누’에서 출발해, 사람과 조직, 관계를 조용히 탐구하는 코치이자 조직문화 전문가다. 20년의 실무 경험과 워킹맘으로서의 삶을 바탕으로, 상처받은 마음의 회복을 돕는 작은 연구실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