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스페이스=조일섭 기자]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이 50대50으로 지분을 나눠 가진 국내 3위 에틸렌 생산업체 여천NCC가 창사 이래 최악의 부도 위기에 몰렸다.
“조속한 회생 추진”을 외치는 한화와, “상황 진단 우선”이라는 DL 사이에서 책임 떠넘기기만 난무하는 가운데, 필요한 3100억원의 운영자금은 결국 어느 곳에서도 조달되지 못하고 있다.
3100억 자금마저 못 구해…8월 21일 디폴트 초읽기
여천NCC의 위기는 수치가 말해준다. 2022년(당기순손실 3,477억원), 2023년(2,402억원), 2024년(2,360억원, 잠정치)까지 3년 연속 대규모 적자라는 기록적 수익성 악화가 뼈아프다.
매출 역시 ▲2022년 6,857억원 ▲2023년 5,435억원 ▲2024년 6,449억원으로 변동을 보였으나, 영업이익은 2022년 -3,867억원, 2023년 -2,389억원, 2024년 -1,503억원(2024년 상반기 기준) 등 바닥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올해 2분기도 1,100억원 적자를 내며 당초 예상된 200억원 손실을 훨씬 웃돌았다.
이처럼 실적 악화가 구조화되는 동안, 회사는 3100억원의 단기 차입금 결제와 원재료 결제대금 등 긴급 운영자금이 절실한 상황에 놓였다. 이미 회사채 발행도, 추가 대출도 길이 막힌 가운데 오는 8월21일까지 이 금액을 조달하지 못하면 디폴트(채무불이행)는 피할 수 없다.
한화 “살려야” vs DL “워크아웃 불가피”…합작 구조가 ‘발목’
위기의 본질은 재무수치뿐 아니라 합작사 구조와 두 대주주의 무책임에 있다. 한화는 지난달 말 이사회에서 1,500억원 대여안을 의결하며 “각 주주사가 1,500억원씩 책임경영에 나서면 정상화가 가능하다”며 시급히 지원을 독려하지만, DL 측은 “3개월 전 1,000억원씩 유상증자를 했는데 또 돈을 요구한다”며 경영 실태 진단부터 먼저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화가 승인한 자금조차 DL 측 이사회 반대로 집행되지 못해, 50대50 구조의 합작사의 한계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DL은 ‘워크아웃’ 카드까지 꺼내 들었고, 각종 태스크포스를 꾸려 상황만 관망하는 모양새다. DL 측은 책임 경영보다 리스크 회피에 골몰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반복된 ‘주주 배당-책임 회피’…누적된 경영 무능
여천NCC의 재무지표 악화엔 한화와 DL 모두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몇 년 전부터 수천억 원대의 배당을 지속하며 현금흐름에 지속적으로 부담을 안겼던 것이 뒷날 터진 것이다.
실제로 한쪽이 책임지지 않을 경우 어떠한 자금 수혈도 불가능한 합작 지배구조 특성에, “내가 지원하면 상대도 지원해야 한다”는 계산만 반복됐다. 이런 구조가 위기 대응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에틸렌 등 핵심제품 거래에서도 “합작사 물량을 저가로 받아 회사 손실을 야기했다”는 상호 불신이 깊다.
합작사 대주주들의 책임 불이행, 지역사회·공급망 리스크로 번져
여천NCC는 여수국가산단에 소재한 핵심 벤처로, 지역 산업생태계와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 실제로 8월 8일부터는 3공장까지 가동을 중단하며 연간 900억원 비용절감, 원료 다변화 등 각종 자구책을 동원하고 있지만,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다.
만약 디폴트가 현실화될 경우 해당 지역사회에 미칠 파장은 물론, 국내 석유화학업계에도 연쇄적 충격이 불가피하다.
‘주인 없는 기업’ 맹점…대주주 책임경영 실종이 부른 구조적 위기
이번 사태는 단순한 업황 침체가 아니라, 합작사의 책무를 방기한 한화와 DL 주주 경영진의 ‘집단 무책임’이 핵심 원인임을 시사한다.
“대주주가 경영을 외면한 결과 회사와 지역사회까지 공멸 위기로 내몰았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 현재로선 8월 21일 전까지도 양측 합의 가능성이 희박해, 결국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워크아웃 등 강제적 옵션만 남을 가능성이 높다.
적자 누적, 경영 실패, 합작 구조의 비효율과 대주주 무책임이 결합한 '반면교사' 교과서적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