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궁내정] 죽음을 칭하는 단어 25개 이상 "존칭·종교·시대의식까지"…죽음의 단어 속뜻과 죽음을 높이는 이유

  • 등록 2025.06.30 06: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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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편집자주> 유튜브, 인스타 등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들이 '협찬을 받지 않았다', '광고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보이기 위해 "내 돈 주고 내가 샀다"라는 뜻의 '내돈내산'이라는 말이 생겼다. 비슷한 말로 "내가 궁금해서 결국 내가 정리했다"는 의미의 '내궁내정'이라고 이 기획코너를 명명한다. 우리 일상속에서 자주 접하고 소소한 얘기거리, 궁금증, 호기심, 용어 등에 대해 정리해보는 코너를 기획했다.
 


우리말에는 ‘죽음’을 뜻하는 단어가 유난히 많다. 일상적으로 쓰이는 ‘죽음’, ‘사망’ 외에도, 높임말로 ‘별세’, ‘작고’, ‘영면’, ‘서거’, ‘타계’ 등이 존재한다. 게다가 이 가운데 ‘사망’을 빼면 대부분 죽음을 높인다.

 

각 단어 역시 쓰임새와 뉘앙스가 미묘하게 다르다. 죽음을 뜻하는 단어의 속뜻과 이렇게 죽음을 높이는 이유를 알아봤다.

 

 

죽음을 이르는 단어, 25개 이상

 

별세(別世)는 윗사람이 세상을 떠남, 작고(作故)는 고인이 되었다, 영면(永眠)은 영원히 잠들다, 서거(逝去)는 죽어서 세상을 떠남(특히 지위가 높은 이에게 사용), 타계(他界)는 인간계를 떠나 다른 세계로 갔음, 특히 귀인(貴人)의 죽음의 표현이 있다. 심지어 죽음을 뜻하는 단어에도 서열이 있다. 죽음, 사망, 작고, 타계, 서거 순으로 계급이 높아진다.

 

일상에서도 죽음은 높이거나 에둘러진다. ‘숨지다’ ‘돌아가시다’ ‘고인이 되다’ ‘영원히 잠든다’라고 한다. ‘운명(殞命)하다’도 ‘목숨이 끊어지다’의 의미다. 그러니 ‘운명을 달리하다’는 어색하다. ‘달리하다’는 ‘유명(幽明, 이승과 저승)’과 어울린다. 즉 "그는 끝내 유명을 달리했다”라고 쓰야한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020년 1월 21일 자신이 기르던 반려동물의 죽음에 대해 “작고하셨다”고 말했는데, 작고란 말 속에 ‘사람의 죽음’이란 의미가 있기 때문에 반려동물에 사용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종교계에서는 죽음을 달리 표현한다.

 

불교에서는 ‘입적(入寂, 고요한 상태로 들어간다)’ 또는 ‘열반(涅槃, 번뇌나 고뇌가 없어진 상태)’, 개신교는 ‘소천(召天, 하늘의 부름을 받아 돌아간다)’, 가톨릭은 ‘선종(善終, 큰 죄가 없는 상태에서 죽는 일)’, 천도교는 ‘환원(還元, 근본으로 돌아간다)’을 쓴다.

 

나라의 가장 큰 어른, 임금의 죽음에는 더욱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붕어(崩御), 붕서(崩逝), 상빈(上賓), 안가(晏駕), 천붕(天崩), 승하(昇遐) 등으로 백성들의 죽음과 구분해 말했다.

 

국가를 위한 죽음에는 ‘전사’, ‘순국’, ‘순교’ 등이, 사고사에는 ‘횡사’, ‘객사’, '골로 가다' 등도 있다.

 

 

왜 이렇게 죽음 관련 단어가 많을까?

 

우리말에서 죽음을 표현하는 단어가 25가지가 넘는다는 사실은, 죽음에 대한 한국인의 미묘한 감정과 사회적 맥락, 그리고 관계의 깊이를 반영한다.

 

우선 유교적 전통과 가족 중심 사회에서, 윗사람이나 귀인을 높여 부르는 평소의 언어습관이 죽음의 표현에도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임금, 양반, 상민이 있던 근대 신분제도 시대, 계급사회 타파전까지 언어로 사회적 질서를 드러냈다. 그때부터 내려온 유물로 신분, 계급에 따라 죽음도 달리 표현한 것이라 설명이다.

 

둘째 이유는 에둘러 말하기식 완곡의 화법이다. 죽음이라는 직접적이고 무거운 현실을 완곡하게, 혹은 간접적으로 표현하려는 심리가 다양한 단어를 만들어냈다고 분석한다. 죽음을 직접적으로 말하기보다, 돌려 말하거나, 높여 부름으로써 슬픔을 덜고 예를 갖추려는 문화가 자리잡았다.

 

셋째 다양한 종교적·사회적 맥락때문이다. 종교별로 죽음의 의미와 사후세계에 대한 관점이 다르다보니, 결국 종교의 세계관에 따라 각각의 용어가 따로 발전했다.

 

 

죽음에 대한 한국과 동양의 의식


한국, 더 나아가 동양의 죽음 의식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죽음의 존엄성이다. 죽음을 단순한 끝이 아니라, 삶의 또 다른 단계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영면’, ‘환원’, ‘입적’처럼 ‘돌아감’, ‘잠듦’, ‘고요함’ 등으로 표현한다.

 

둘째는 관계의 연속성이다. 죽음 이후에도 조상과의 관계, 명예와 기억이 이어진다는 믿음이 언어에 반영됐다는 주장이다.

 

 

이처럼 죽음에 관한 다양한 표현은 단순한 언어적 다양성을 넘어, 한국 사회의 관계 중심 문화와 예의, 그리고 죽음에 대한 경외심을 보여준다.

 

언론에서는 ‘사망’ 대신 ‘별세’, ‘서거’ 등으로 고인을 높이고, 종교와 신분에 따라 적절한 용어를 선택해 사용한다.

 

동물의 죽음에도 사람에게 사용하는 ‘작고’ 같은 표현을 사용해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이왕이면 죽음에 대한 단어의 의미와 속뜻을 알고, 적합한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고인과 유족에 대한 예의임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죽음을 둘러싼 우리말의 풍성함은, 그만큼 한국인이 죽음이라는 사건을 엄숙하고 다층적으로 받아들여 왔음을 방증한다. 언어는 곧 문화다.

 

죽음을 둘러싼 다양한 표현 속에는,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사이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한국인의 깊은 정서와 예의가 녹아 있다.

 

죽음의 언어를 들여다보면, 삶을 대하는 한 사회의 태도가 보인다. 우리말의 다양한 죽음 표현은, 결국 남은 이들의 슬픔을 덜고, 떠난 이를 예로써 보내려는 마음의 산물일 것이다.

 

라틴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역시 인간의 유한성과 겸손을 상기시키는 철학적·문화적 개념이다. 고대 로마에서는 개선장군이 승리 후 시가행진시 노예가 "메멘토 모리"를 외치며 오만함을 경계하도록 했다.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의미다. 이 또한  우리 인간들에게 삶의 유한성을 인식하고 현재를 소중히 여기는 겸손한 태도를 가지라는 가르침을 안겨준다.

이종화 기자 macgufin@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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