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승원 기자]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관측된 벼락은 약 10만6750회, 이 가운데 4633번이 충남 서산 상공에서 쏟아지며 전국 ‘낙뢰 1위 도시’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낙뢰 2위는 당진(3451회), 3위 보령(2892회), 4위 서천(2498회), 5위 김제(2131회)까지, 상위권은 죄다 서해안을 끼고 있는 도시들이 휩쓸었다.
서산 4633회, 네 번 중 한 번은 충남 하늘
기상청이 4월 27일 발간한 ‘2025년 낙뢰연보’에 따르면, 2025년 한 해 국내에서 관측된 낙뢰는 10만6750회로 최근 10년(2016~2025년) 평균 10만5385회보다 1.3% 늘었지만, 2024년 14만5784회에 비해서는 27% 줄었다. 그럼에도 지역별 분포를 보면 충남 하늘만큼은 예외적으로 ‘벼락 특구’에 가까웠다.
광역 단위로 보면 충청남도에서만 2만8165회의 낙뢰가 관측돼 전국 전체의 26%를 차지했다. 통계상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벼락 네 번 가운데 한 번꼴로 충남 하늘을 강타한 셈이다. 같은 자료에서 전북특별자치도는 1만5714회(15%), 전라남도는 1만3318회(12%)로 집계돼, 호남까지 포함한 서쪽 지도가 ‘낙뢰 벨트’로 뚜렷하게 드러난다.
시·군·구 순위에서는 서산이 4633회로 1위, 당진 3451회, 보령 2892회, 서천 2498회, 김제 2131회 순으로, 상위 5곳이 모두 서해에 접해 있거나 서해와 직선 거리로 가까운 해안·평야 지대라는 공통점을 보였다. 이어 태안(2029회), 전남 영광(2007회), 전북 군산(1984회) 등도 낙뢰 다발 지역으로 꼽혔다.
반면 부산은 382회로 전국에서 가장 적은 낙뢰를 기록해 같은 해 다른 쪽 하늘이 얼마나 극단적으로 ‘조용했는지’를 방증했다.
‘여름 57%’ 정석 패턴…하지만 5·9월이 이상했다
시간적으로 보면 지난해 벼락은 여름철에 집중됐다. 기상청에 따르면 2025년 낙뢰의 57%가 6~8월에 발생해, 10년 평균 패턴과 비슷한 ‘여름 집중형’ 양상을 유지했다. 대기 불안정, 강한 상승기류, 높은 습도라는 세 가지 조건이 동시에 가장 잘 갖춰지는 시기가 우리나라에서는 여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절 분포를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기후변화 시대 특유의 ‘비정형 신호’도 드러난다. 2025년 5월과 9월에만 4만2500회 안팎의 낙뢰가 집중되면서, 전통적인 장마·한여름 피크 외에 ‘봄·초가을 낙뢰 피크’가 추가로 형성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5월 낙뢰는 1만2288회로 최근 10년 평균 대비 30% 이상 많았고, 9월 낙뢰는 1만2810회 수준으로 10년 평균(9530회)보다 34%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상청은 “2025년 5월부터 평년보다 이르게 확장한 북태평양고기압이 9월 늦게까지 영향을 주면서 대기 불안정이 커진 결과”라고 설명한다. 이는 여름철에만 국한됐던 ‘벼락 시즌’이 늦봄과 초가을로 넓어지고 있음을 시사하며, 에너지·통신·항공·해상 운항 등 각 산업의 리스크 관리 달력도 다시 그려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던진다.
서해안에 벼락이 몰린 기상학적 배후
이번 ‘서해안 집중 벼락’의 배경에는 고온다습한 북태평양고기압의 비정상적인 세력 확장이 자리 잡고 있다. 기상청 레이더분석과 정혜훈 과장은 “지난해 따뜻한 수온으로 힘이 강해진 북태평양고기압이 한반도 서쪽으로 세력을 더 크게 확장한 해였다”며 “시계방향으로 순환하는 고기압 가장자리를 따라 한반도 남서쪽으로 온난하고 습한 공기가 집중적으로 유입됐고, 이 때문에 서해안 인접 지역에 낙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바다에서 공급된 수증기는 서해상과 서해안 저층 대기의 습도를 끌어올린 뒤, 상층의 상대적으로 찬 공기와 만나 강한 대기 불안정을 유발했다. 구름 속 얼음·물방울 입자들이 격렬하게 마찰하면서 양전하와 음전하가 분리되고, 임계점을 넘어서면 지표와 구름 사이, 또는 구름 내부에서 방전이 일어나 번개·낙뢰로 이어진다. 서해는 바로 이 수증기 수송의 ‘통로이자 연료 탱크’였고, 서산·당진·보령·서천·김제 등은 그 최전선에 놓인 '벼락의 관문 도시'였던 셈이다.
국내 연구에서도 북태평양고기압 확장과 낙뢰 증가 사이의 상관관계는 여러 차례 지적됐다. 제주 지역 자료를 분석한 논문은 6~8월 낙뢰가 전체의 75.7%를 차지하고, 이는 장마전선과 북태평양고기압 확장이 맞물리며 전선·기단 낙뢰가 동시에 증가한 결과라고 정리했다. 대한기상학회 학술지에 실린 또 다른 논문 역시, 6월 한반도 남서쪽으로 형성되는 기압 경도(북태평양고기압과 만주 저기압 사이)가 강할수록 낙뢰 발생 요소가 강화된다고 분석했다.
해상까지 합치면 ‘서해 낙뢰 공화국’
육지뿐 아니라 바다까지 포함하면 서해의 ‘벼락 집중’ 현상은 더욱 뚜렷해진다. 2025년 해상 낙뢰 통계를 보면, 서해상에서만 27만7693회의 낙뢰가 관측돼 남해와 동해 낙뢰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았다. 같은 기간 전국 육상 낙뢰(10만6750회)보다도 서해 해상 낙뢰가 훨씬 많은 규모라는 점에서, 서해는 문자 그대로 동북아의 ‘낙뢰 공장’에 가깝다.
서해는 수심이 얕고 수온 변화가 빠르며, 중국·한반도에서 유입되는 대기오염물질과 에어로졸이 풍부해 불안정 대기 형성에 유리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러한 입자들은 구름 응결핵 역할을 하며 강수·뇌우 구조를 바꾸고, 강한 대류 구름의 발달을 돕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 기상학계의 설명이다.
기후위기 시대, ‘벼락 리스크’ 관리도 업그레이드 필요
낙뢰는 단순한 자연현상을 넘어, 에너지·통신 인프라, 반도체·데이터센터, 항공·해운, 야외 산업현장, 레저·야외행사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는 ‘고위험·저빈도 재난’에 가깝다. 2025년 우리나라 전체 낙뢰 횟수는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충남·전북·전남 등 서쪽 지역과 서해상의 공간적 편중, 5·9월로 확장된 시간적 편중은 기후위기 시대 리스크 구조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지표다.
기상청은 ‘2025년 낙뢰연보’에 시·군·구별 낙뢰 횟수, 단위 면적당 낙뢰 빈도(㎢당 횟수), 주요 5대 사례를 상세히 제시하며, 지자체와 기업이 방재 설계와 설비 투자, 피뢰 시스템 점검에 참고해 달라고 당부했다. 특히 충남 서산·당진·보령·서천, 전북 김제·군산, 전남 영광 등 서해안 도시들은 건축물 피뢰 설비 강화, 송·변전 설비 및 통신시설 서지 보호, 농업·어업 현장의 안전 매뉴얼 재점검이 시급한 ‘우선 관리 대상’으로 꼽힌다.
올해와 내년 북태평양고기압의 거동과 서해 수온, 뇌우일수 추세를 주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만약 ‘서해안 낙뢰 집중’ 패턴이 일시적 기복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라면, 서산의 4633회는 단지 한 해의 이례치가 아니라, 앞으로 서해안이 감당해야 할 새로운 일상의 시작을 알리는 경고음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