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중간성과평가 면담 시즌이다. 리더들은 구성원 한 명 한 명과 마주 앉는다. 같은 기간, 같은 조직에서 일했지만 건네지는 말은 제각각이다. 어떤 이에게는 "잘 하고 있어요"가, 어떤 이에게는 "좀 더 분발이 필요해요"가 돌아간다. 그 순간 구성원의 마음속에 어김없이 떠오르는 질문이 하나 있다. '분명 비슷하게 일했는데, 왜 평가는 다를까.' 비슷한 장면은 집에서도 재현된다. 쌍둥이 아이들의 숙제를 함께 들여다보는 날이 있다. 한 아이는 매일 조금씩 꾸준히 채웠고 다른 아이는 며칠을 비워두다 한꺼번에 몰아 썼다. 결과물의 양은 비슷하지만 두 아이에게 같은 말이 돌아가진 않는다. 꾸준한 아이에게는 "잘하고 있어."라고 했고, 몰아서 한 아이에게는 "다음엔 조금 나눠서 해보자"라고 했다. 그러자 부정적 피드백을 받은 아이가 물었다. "왜 나한테만 더 잔소리해요?" 음...이건 차별일까? 공정인가. ◆ 공평과 공정, 한 글자 차이가 만드는 전혀 다른 세계 공평(公平, Equality)이 모두에게 똑같은 크기의 조각을 기계적으로 나누는 것이라면, 공정(公正, Equity)은 저마다의 맥락과 과정을 살피는 정교한 저울질과 같다. 공평은 동일하게 대하는 것이고, 공정
쌍둥이를 키우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이르는 소리를 듣는다. "엄마, 연우가 나 놀렸어." "아니야, 선우가 먼저 그런 거야." 어느 쪽 말을 들어봐도 억울함투성이다. 며칠 전, 선우가 신나게 연우 흉을 보고 있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 연우가 얼마나 얄미웠는지를 한참 늘어놓았다. 실컷 쏟아내고 나니 속이 후련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연우가 선우한테 자기 간식을 슬쩍 나눠주는 걸 봤다. 별일 아닌 장면이었는데, 그 순간 선우의 표정이 시들해졌다. 조금 전까지 흉보던 상대가 아무렇지 않게 잘해주니 마음이 편치 않았던 모양이다. 그날 밤, 잠자리에서 선우가 말했다. "엄마, 나 아까 연우 흉 너무 많이 봤나? 기분이 좀 그래." 나는 되물었다. "흉보고 나니까 속이 시원했어?" 선우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처음엔 시원했는데, 지금은 그냥... 좀 찜찜해." 아이는 흉을 보는 그 순간에는 몰랐지만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 개운하지 않은 뒷맛을 느꼈던 것 같다. ◆ 쿨함이라는 가면 조직도 마찬가지다. 회의가 끝나면 삼삼오오 모여 방금 지나간 상사의 말투나 동료의 태도를 안주 삼는다. 다들 알면서도 모르는 척, 웃으면서 시작해 웃으면서 끝낸
멀미는 예측이 어긋날 때 생긴다. 눈이 보는 것과 몸이 느끼는 것이 일치하지 않을 때 뇌가 혼란을 일으킨다. ‘운전자는 멀미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과학적 사실이다. 다음 움직임을 아는 사람의 몸은 이미 준비되어 있지만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멀미가 온다. 쌍둥이를 태우고 방향 전환이 많은 도로를 달리던 날이 있었다. 한 아이의 얼굴이 서서히 하얗게 변했는데, 아마도 멀미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곧 우회전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아이는 몰랐다. 그래서 멀미가 왔다. 그날 이후 나는 미리 말해준다. “길이 지그재그로 이어져서 방향 전환이 많을 수 있어. 눈을 감고 있으면 좋을 것 같아.” 내 말을 들은 아이는 스스로 베개를 챙기고, 음악을 고른 뒤 눈을 감는다. 그렇게 준비된 몸은 덜 흔들리고 멀미도 줄어든다. ◆ 조직에서 멀미하는 사람들 2024년 전 세계 HR 부문 리더 약 473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약 73%의 리더가 “구성원들이 조직 내 끊임없는 변화로 인해 극심한 변화 피로(Change Fatigue)를 겪고 있다”는 결과를 본 적이 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변화를 받아들이려는 구성원들의 의지가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는 점이다
"얘들아, 숙제 다 해놨니?" 평온한 저녁 거실을 삼엄한 독촉의 공간으로 바꾸는 건 나의 아주 평범한 한마디였다. 한 녀석은 방으로 뛰어 들어갔지만, 문에 <노크하세요>를 붙인 녀석은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알아서 한다고요. 왜 맨날 감시해요?" 당황스러웠다. 숙제했냐고 묻는 게 왜 감시일까. "00님, 그 보고서 어떻게 돼가요?" 리더 입장에서는 당연한 업무 점검이다.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필요하면 지원하고, 일정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은 리더의 책임이다. 그래서 리더들은 이 부분에 대해 대개 억울해한다.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려는 게 아니라, 관심과 책임감으로 확인한 것뿐”이라고 말한다. 맞다. 조직에서 확인은 필요하다. 문제는 그 질문이 상대의 계획과 판단을 묻는 방식이 아니라, 이미 내가 정한 기준과 시간표에 상대가 맞춰가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방식으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 순간 질문은 더 이상 질문이 아닌, 질문의 얼굴을 한 통제가 된다. ◆ 리더의 질문은 때론 '오염된 통제'가 된다 언어학적으로 진짜 질문은 상대의 생각과 정보를 구하는 행위다. 하지만 "숙제했니?", "보고서 어떻게 돼가요?"라는 문장의 진짜 맥락은 전혀 다르다. 질문
퇴근 후 집에 오니, 아이 방문에 종이 한 장이 붙어 있다. 매직으로 또박또박 눌러 쓴 글씨. 그 아래에는 <절대 금지>라고 적힌 그림까지 정성이 가득하다. “노크하세요.” 쌍둥이 중 한 명이 자기 방문에 붙여둔 쪽지였다. 그런데 다른 아이 방에는 아무것도 붙어 있지 않았다. 심지어 방문도 활짝 열려 있다. 같은 집, 같은 엄마, 같은 환경에서 자라는 쌍둥이인데 한 아이는 닫힌 문 앞에 선명한 경계선을 그었고, 다른 아이는 여전히 열려 있는 문으로 아무렇지 않게 나를 맞이한다. 처음에는 솔직히 서운했다. ‘내가 언제 그렇게 함부로 들어갔다고.’ 회사에서는 수백 명의 교육 과정과 조직문화를 설계하며, 리더들에게 심리적 안전감과 자율성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구성원의 감정과 행동을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라고도 말한다. 그런데 정작 집에서는 아이 방문 앞에 붙은 종이 한 장에 때문에 마음이 혼란스럽다. 강의장에서는 자연스럽게 말하던 ‘존중’이 아이 방문 앞에 서는 순간 무기력해진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어쩌면 회사 어딘가에도 저런 쪽지가 붙어 있는 건 아닐까. 말 없는 팀원의 등에, 회의실 문 앞에, 혹은 리더가 아무렇지 않게 열고 들어가는 누군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