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이 많이 빠졌네? 요새 운동 열심히 하나 봐?” 오랜만에 모임에 나온 후배가 슬림 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마운자로’와 함께한 최근 3개월이 의미가 있었다며 복용을 권하는 그의 얼굴에 자신감이 넘쳤다. 근력운동과 병행해 지금의 몸을 만들었다는 그의 말은 ‘약을 통한 다이어트’에 가졌던 필자의 선입견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 마운자로의 효능 마운자로는 티르제파타이드(tirzepatide)라는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몸속에서 ‘먹었다’는 사실을 감지하도록 해주는 ‘GIP, GLP-1’ 이라는 인크레틴 호르몬 수용체를 모방한다. 그래서 마운자로를 투여하면, 포만감이 높아지고 위 배출 속도가 늦어지며 혈당량이 조절되어 궁극적으로 음식 섭취량이 줄어든다. 결국 마운자로는 더 먹고자 하는 ‘욕망’을 억제시키는 약이라 할 수 있는데, 사실 욕망의 억제는 언제나 어려웠을 텐데 최근 들어 약의 도움이 필요해진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 등장의 배경 지금의 사회를 세심히 들여다보니, 어쩌면 마운자로의 등장은 필연적이었을 지 모르겠다. 유투브나 인스타그램에서 시도때도 없이 올라오는 맛집 정보와 음식 영상들은 현대인의 식욕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있으며, 굳이 밖으로 나
“여보세요?” 장난감 전화기를 들고 외치는 아이의 모양새가 제법 그럴싸하다. 근데 동시에 묘한 어색함이 들었다. 버튼 식 다이얼 패드, 아령 같은 수화기, 그리고 이 둘을 이어주는 구불구불한 선. 지극히 낯설다. 언제부터 인가 집과 사무실에서 아날로그식 전화기가 실종되었다. 집 전화, 사무실 전화, 등 소속 집단을 대표하는 전화의 개념도 함께 사라졌다. 어릴 적 전화벨이 울리면 혹시 날 찾는 전화일까 맘 설레곤 했는데, ‘여보세요’ 뒤에 들려오는 ‘엄마 집에 계시니’라는 답변은 늘 실망감을 안겨주곤 했다. 하지만 덕분에 가족들의 지인과도 심심치 않게 근황을 나눴다는 점은, 오늘날 스마트폰 시대에는 가질 수 없는 사람의 미덕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내 방에서 개인 연락을 받는 새로운 전화 환경은 가족의 지인은 고사하고 가족들 간의 대화마저 단절시켰다. 오늘날의 스마트폰에는 늘 발신자의 정보가 표시된다. 덕분에 ‘연락에 감사하며 그대가 궁금하다’는 의미의 ‘여보세요’ 가 실종되었다. 저장된 번호로 전화가 온다면, ‘여보세요’ 대신 ‘어. 왜?’ 로 대화가 시작되었고, 지인 알고리즘에 포함되지 못한 번호들은 광고 내지 스팸으로 차단되어 말할 기회 조차 박탈
2026년 8월 19일, 바이오테크기업 ‘모더나’와 글로벌 제약회사 ‘머크’가 합작한 ‘개인 맞춤형 mRNA 암 백신’이 3상 임상시험에서 성공했다는 발표가 있었다. 후기 임상시험에서 성공한 최초의 mRNA 기반 암 치료 백신이라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크게 주목을 받았는데, 분석 과정에서 AI가 사용되었다는 점과 더불어 그 치료 원리가 꽤 흥미롭다. 이 백신은 예방차원의 백신이 아닌 재발을 막기 위해 투여하는 치료용 백신이며, 철저히 개인에게 맞춤형으로 제공되는 개별 백신이다. 우선 해당 환자의 종양 조직을 채취해서 DNA를 분석한 뒤, 그 사람의 암세포에만 존재하는 돌연변이인 ‘네오안티젠(neoantigen)’을 골라낸다. 여기서 AI가 투입되는데, 수많은 네오안티젠 중 어떤 것을 백신의 표적으로 삼을지 분류하는 과정에서 그 지능적 역할을 수행한다. AI가 뽑아낸 최대 34개의 암 특이 항원 정보는 ‘mRNA’에 담겨 환자의 몸속에 주입되고, 이 맞춤형 백신은 몸 속에서 ‘면역계의 T세포’에게 항원정보를 학습시킨다. 그리고 학습을 마친 T세포는 남아 있는 암세포를 찾아내어 표적 공격을 하는데, 여기에서 함께 투여되는 ‘키트루다’는 암세포가 T세포에게 거는 ‘
여기저기서 칭찬일색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The Odyssey) 말이다. 대학 시절 교양 수업 중 그리스 신화에 대해 고찰하는 수업이 있었다. 당시 지독하리 만큼 복잡한 원문 독해를 버틸 수 있게 해준 것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가 지닌 웅장함과 창의적 스토리라인 덕분이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새롭게 마주한 오디세우스는 과거의 신화 속 영웅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필자의 눈에는 치열한 생을 사는 대한민국의 직장인 오부장이 보였다. ◆ 오부장, 장기 프로젝트를 거머쥐다 오디세이 이전의 트로이 전쟁 세계관을 다룬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단연 백미는 트로이의 목마다. 2004년 개봉한 영화 ‘트로이’에서는 ‘아킬레우스’를 열연한 ‘브래드 피트’의 거친 매력과 ‘파리스’를 열연한 영원한 ‘레골라스’ (올랜도 블룸)의 수려함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하지만 정작 이 서사에서 집중해야 할 것은 오부장의 기지이다. 진전이 없는 장기 프로젝트의 늘어짐에도 굴하지 않은 채 끊임없이 시도한 오부장의 전략은 트로이를 무너뜨렸다.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직장인은 늘 에너지가 넘친다. 다양한 아이디어가 있고, 며칠 간의 야근을 지탱해 줄 강인한 의지력이 있다. 하지만
얼마 전 대형마트의 수족관 코너를 지날 때였다. 화려한 색을 자랑하며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들의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를 편안함이 느껴졌다. 최근 조직 개편으로 인사 업무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필자에게 힐링의 시간이 되려는 찰나, 기회를 놓칠 세라 딸아이가 황급히 선언했다. “아빠. 물고기 키우게 해 줄게. 사자.” ◆ 물잡이의 중요성 즉흥적으로 어항 용품과 물고기 대여섯 마리를 손에 들고 오니 막막하다. 생전 처음 해보는 물생활이기에 직원의 설명을 신경 써서 들었음에도 걱정이 앞선다. 우선 기억나는 건 물고기보다 중요한 ‘물’이다. 아무리 생존 력이 강한 종이라 하더라도 물이 제대로 잡히지 않으면 폐사할 수 있다. 마치 우수한 직원들로 배치했지만 새로운 조직의 틀이 제대로 잡혀 있지 않아 성과는 물론 줄 퇴사가 이어지는 조직 개편처럼 말이다. 제일 처음 필요한 것은 ‘물맞댐’이다. 기존에 살던 수족관을 벗어난 물고기에게 새로 마련한 어항 속 물은 ‘깨끗함’ 이 아니라 ‘낯설음’ 이다. 따라서 천천히 새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어야 한다. 우선 물고기가 든 투명 봉지 째로 새로운 어항 속 물에 담궈 준다. 이는 물의 온도를 먼저 맞대어 주는 과정이다
“엇? 선생님. 지금까지는 과정 중에 실패하면 늘 좌절하고 포기했는데, 생각해보니 시도를 멈추지 않으면 결과는 성공할 수 있겠네요.” 한 고등학생 친구와 코칭 세션을 진행하던 중 튀어나온 깨달음으로 화자의 등줄기에 전율이 스쳤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임에도 ‘아차’ 싶은 마음과 함께 떠오른 것은 바로 며칠 전의 ‘나’였다. 부서내 업무 자동화를 위한 웹 페이지 생성을 위해 며칠 동안 Claude AI와 씨름하다가 결국 ‘불가’ 판정을 스스로 내려버렸던 못난 필자의 모습 말이다. ◆ 독이 되어 버린 끈기 AI 전문가로서의 자존심을 걸고 부서의 자동화를 책임지겠노라 시작했던 야심찬 프로젝트의 첫 단추는 얼마 못 가 뱀의 꼬리가 되었다. 필요했던 것은 부서의 유연근로제 근무 및 휴가 스케줄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고 공유할 수 있는 user friendly 한 프로그램이었다. 어느 정도의 시도 끝에 디자인과 기능 면에서 목표에 부합하는 웹페이지 형식을 달성하였으나, 문제는 해당 페이지 내 개인 변경 데이터의 저장 방식이었다. 여러 유저가 동시에 업데이트 할 시 일부 데이터의 소실 문제, 그리고 개인의 저장 데이터 반영의 시스템 구조 등의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그
한 무리의 남자들이 운동을 끝내고 건물 밖으로 나서자 동남아의 열대야가 끈적이게 달려들었다. 사계절의 대한민국은 실종되었느니, 이젠 베트남 사람들조차 한국에선 더워서 못살겠다고 했다느니 저마다의 푸념들을 늘어놓으며 불쾌지수를 높여가던 찰나 한 남자가 웃으며 읊조렸다. “그래도 덕분에 대한민국 전차가 잘나간덴다. 요즘 우리나라 사계절을 경험한 덕분에 사막에서도 잘 달리고 심지어 러시아에서도 고장이 안 난다더라.” ◆ 위기가 찾아왔다 현대 로템에서 만든 대한민국 주력전차 K2 블랙팬서의 이야기다. 혹한의 설원에서나 50도 사막에서도 고장 없이 잘 달리는 이 전차의 우월한 스펙은 한국의 기형적인 사계절 아래에서 탄생했다. 필자의 어린시절에만 해도 12개월이 4분의 1로 알맞게 나눠진 봄/여름/가을/겨울의 평등한 사계절을 즐길 수 있었지만, 요즘은 누군가의 우스갯소리처럼 봄/여어어어어어름/갈/겨어어어어어울 의 극단적인 사계절로 매년 리즈 갱신하는 중이다. 특히나 이번 여름은 습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어 흰셔츠라도 입었다간 위기에 빠지기 일쑤인데, 이렇게 모두가 위기에 빠져 고통을 겪고 있는 순간에도 이를 성장의 발판으로 삼은 것이 바로 블랙팬서이다. 극단적 사계절의
“부장님, 요즘 일이 잘 안되요. 집중이 안되니 효율은 떨어지고, 그러다 보니 일이 자꾸 쌓여만 가네요. 어제는 집에서 라도 해볼까 하고 노트북을 들고 퇴근했는데 열어두고 시간만 흘러서 오히려 스트레스가 늘었네요.” 열정이 가득해야 할 어린 친구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을 보니, 이야기를 더 듣지 않아도 문제가 있음이 느껴졌다. ‘연산 처리에 과부하가 걸렸구나’ 라는 T스러운 생각과 동시에 ‘발열이슈를 잡기위한 냉각시스템이 필요하겠구나’라는 공대생스런 조언이 입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러자 어린 친구가 읊조렸다. “제 데이터센터는 멈춘 걸까요?” ◆ 나의 데이터센터 관리 데이터센터란 서버, 저장장치, 네트워크 장비 등 정보기술 설비를 한곳에 모아 데이터를 저장, 처리 및 전송하고, 각종 디지털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시설이다. 최근 들어 이 데이터센터가 급부상한 이유는 생성형 AI가 엄청난 연산능력 요구했기 때문인데, 사실 복잡한 연산능력을 요하는 건 비단 AI뿐만이 아니다. 이제는 우리의 삶 또한 복잡한 연산을 요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삶은 꾸준함에 기반한 안정적 성장을 미덕으로 삼아왔다. 나에게 맞는 하나의 직업을 선택해서 꾸준히 경험을 쌓고 끊임없이
지난 주 Generative AI강의에서 할루시네이션 (Hallucination)에 대해 설명하던 순간이었다. ‘할루시네이션’이란 인공지능이 사실과 다르거나 근거 없는 내용을 그럴듯하고 확신 있게 생성하는 현상을 뜻하는데, ‘AI의 할루시네이션을 없애는 방법에는 뭐가 있을까요?’ 란 필자의 질문에 재치 만점의 답변이 날아들었다. “제 아들 녀석 할루시네이션도 못 잡는데 제가 알 턱이 있나요.” 강의실엔 실소가 터졌고 비슷한 연령대의 참석자들은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필자 역시 웃픈 마음으로 할루시네이션을 막기 위한 세가지 대비책을 설명하기 시작했는데, 문득 머리 한 켠에 생각이 스쳤다. ’이 할루시네이션 대비책을 육아에 쓴다면?’ ◆ 모르면 모른다고 해줘 할루시네이션을 흔히들 ‘AI의 거짓말’이라고 하는데 이는 조금 어긋난 표현이다. AI는 의도를 가지고 거짓말을 한다기 보다, 오히려 모르는 부분을 그럴듯한 문장으로 채우려다 오류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어떻게 든 채우려는 최선이 거짓말로 불렸으니 AI 입장에서는 속이 탈 노릇이다. 그런데 왜 AI는 이런 인정받지도 못할 노력을 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모른다 말하면 혼나기 때문이다. 모른다
“성장판 닫히기 전에 얼른 맞아야 한다니까?” 야밤의 산책 중 핸드폰 케이스에 얼굴을 파묻은 어느 아주머니의 거친 음성이 울려 퍼졌다. 이내 종종걸음으로 사라진 그 빈 자리엔 함께 산책하던 와이프의 걱정이 자리잡았다. ‘우리 애도 언젠간 맞아야 하지 않을까?’ 최근 주변의 초등학생 부모들로부터 심심치 않게 성장판과 성장주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연 1,000만원의 고비용에도 불구하고 성장주사는 부모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으며, 실제 서울 내 약국과 의원에 공급된 성장 호르몬 주사는 최근 4년사이 3배나 늘었다고 한다. 도대체 성장판이 뭐 길래 이렇게 열광하는 것일까? ◆ What is 성장판? 아이 성장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이 성장판은 우리 몸 속 한 곳이 아닌 여러 곳에 존재한다. 어깨부터 팔꿈치, 무릎, 발목, 척추 등 뼈가 이어지는 대부분의 연결 부위에 존재하는데, 의학적으로 ‘골단판’ 이라 불리는 이 연골 조직은 뼈의 양 끝단에 위치해 세포 분열을 통해 새로운 뼈를 만들어 키를 키우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서 성장주사는 당연히도 이 성장판을 활성화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성장판이 닫히는 것은 무슨 현상일까? 뼈의 상태가 성숙해짐에 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