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간격으로 두 도시를 다녀왔다. 중국 칭다오에서는 노점 만두 한 봉지를 사는 데도 QR코드만 있으면 가능했다. "거지도 QR코드로 적선을 받는다"는 말이 과장이 아님을 현장에서 체감했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방문한 일본의 소도시 마쓰야마는 여전히 현금이 주인공이었다. 카드를 꺼내면 점원이 난감해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비행기로 불과 몇 시간 거리인 두 도시가 보여준 시차는 묘하게 기억에 남았다. '일본은 선진국, 중국은 아직 멀었다'는 익숙한 프레임은 현장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다. 무엇이 한쪽을 멈춰 서게 하고, 다른 한쪽을 그토록 빠르게 움직이게 했을까. ◆ 국가가 설계하고, 시장이 검증한다. 최근 읽은 『테크노스테이트 차이나』라는 책은 이 질문에 단서를 준다. 저자들은 중국의 부상을 "국가가 전략을 설계하고, 시장이 그것을 검증한다"는 한 문장으로 압축한다. 위에서는 거시적 방향이 그려지고, 아래에서는 수많은 기업이 자율 경쟁을 벌이며 그 방향을 검증한다는 의미다. 통제와 자율이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구조 안에서 동시에 작동하는 메커니즘이다. 이 문장을 읽으며 회사라는 조직, 그리고 그 안에서 일하는 개인을 떠올렸다. 결국 조직도
화면 너머로 중계되는 월드컵 경기를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탄식이 터져 나온다. 사방이 꽉 막힌 공간에서 굳이 무리한 드리블을 이어가다 공을 빼앗기는 선수를 볼 때 그렇다. “아니, 저기 비어 있는 동료에게 패스하면 되는데, 왜 혼자 다 하려고 하지?” 물론 안다. 막상 내가 유니폼을 입고 거친 숨을 내쉬며 그라운드 위에 서 있다면, 엄청난 압박감에 옆에 달리는 동료는커녕 공 하나 간수하기도 벅찰 것이다. 그럼에도 TV 화면에서 바라보는 그라운드는 명확한 진실을 말해준다. 현대 축구에서는 혼자 힘으로 골문 앞까지 가겠다는 고집은 팀을 패배로 이끄는 지름길이다. 자연스럽게 조직과 커리어라는 또 다른 그라운드를 적용해 본다. 월드컵 시즌마다 "조직은 축구다"라는 비유가 어김없이 쏟아진다. 그런데도 다시 이 낡은 비유에 숟가락을 얹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매일 출근이라는 킥오프를 하며 각자의 포지션에서 뛰고 있고, 화면 속 선수처럼 나 역시 종종 '패스할 타이밍'을 놓치고 혼자 공을 쥔 채 고군분투하기 때문이다. 비유는 낡았어도, 그 안에서 매번 새롭게 발견하는 내 모습은 낯설지 않다. ◆ 정서적 끈끈함에서 '시스템과 역량'의 연대로 1990년대 초 내가 기억하
요즘 주변에서 위고비, 마운자로 등 GLP-1 계열의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는 말을 부쩍 자주 듣는다. 눈에 띄게 달라진 동료들을 보면 솔직히 마음이 흔들린다. 저렇게 빠르게 다이어트가 가능하다면 나도 한번 해볼까 싶다가도 금세 머뭇거리게 된다. 요요가 두렵기도 하고, 장기 부작용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약물이라는 점도 마음에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련은 남지만 선뜻 시도가 어렵다. 이 신약이 불러온 변화는 단순한 다이어트 혁명만이 아니다. 경제학을 공부했던 나에게 이 약물이 흥미로운 이유는 따로 있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인간이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이유를 '현재 편향'으로 설명한다. 지금 당장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욕망이 건강한 미래보다 항상 더 강하게 작동한다는 것이다. 수천 년간 인류는 수많은 욕망들과 대립하며 의지로, 습관으로, 환경 변화로 힘겹게 싸워왔다. 그런데 이 약물은 그 싸움의 판 자체를 바꿔버렸다. 욕망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욕망이 작동하는 메커니즘 자체를 재설계한 것이다. 더이상 더 먹고 싶은 나와 힘겹게 싸우지 않아도 되게 만들어준다. 자본주의의 가장 강력한 연료였던 욕망이라는 본능을 약물이 조용히 덮어쓴 셈이다. 최근 내가 다
나는 주린이다. 얼마전 돈이 생겨서 소소하게 투자를 시작했다. 요즘 같은 불장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주식을 투기나 위험한 것으로만 치부했던 적도 있었으나, 공부를 해보니 세상이 달라져 있었다. ETF 같은 안정적인 지수 투자 상품이 늘어났고, 연금저축이나 IRP, ISA 등 제도를 활용해 현명하게 절세하며 장기 자산을 모아갈 방법도 많다는 것을 새롭게 깨달았다. 주식은 일희일비하는 단기 도박이 아니라, 적어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의 미래 가치에 동행하는 여정이라는 본질도 조금씩 알아가던 참이었다. ◆ 주린이의 평온은 오래가지 않았다 하지만 시장은 초보 투자자의 얄팍한 평온을 가만두지 않았다. 거침없이 급등하던 증시는 지난주 금요일 미국 고용지표 우려와 기술주 폭락의 직격탄을 맞더니, 월요일까지 무서운 기세로 하락했다. 화면을 보는 내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지금 팔아야 하나?' ◆ 두려움은 언제나 먼저 도착한다 두려움이 엄습했다. 주식은 예측이 아니라 대응이라고 했다. 하지만 초보에게 가장 힘든 건 '내 판단이 옳은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 불확실성이 공포를 키웠다. 실제로 오늘 시장에서는
얼마 전, 한 대학교의 학생들이 우리 회사를 방문했다. 나는 그들을 대상으로 회사의 가치체계와 ESG 경영에 대한 강의를 진행했다. 강의 후 기후변화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질문이 오갈 것이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끝난 후 쏟아진 질문은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지금부터 어떤 준비를 해야 기업에 입사할 수 있을까요?" "학점이나 자격증 외에 면접관의 눈을 사로잡는 진짜 팁이 무엇인가요?" 빛나는 눈으로 '어떻게 해야 취업할 수 있는지' 묻는 청춘들을 보며, 문득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졌다. ESG 경영이라는 거시적 담론보다 그들에게 당장 시급한 것은 '생존'과 '안정'이 걸린 취업 방법이자 합격 팁이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채용은 점점 더 힘들어질 테고 청춘들의 불안은 깊어만 가는데, 그 절박한 눈빛들 앞에서 인사담당자로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마음이 무거웠다. ◆ 평생직장의 소멸과 상시화된 커리어 불안 이러한 풍경은 비단 대학교 강의실만의 일이 아니다. 최근 고용 시장의 흐름을 보면, 글로벌 기업들을 시작으로 대규모 인력 감축이 상시화되고 있으며 꼭 필요한 영역이 아니라면 더 이상 신규 채용을 하지 않는 기조로 시대가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 회사 역시 개
[뉴스스페이스=이은주 기자] 리플(Ripple)이 발행한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 RLUSD가 시가총액 17억5000만 달러를 돌파하며 단기간 내 폭발적인 성장세를 입증했다. 이 수치로 XRP 레저는 기관 디지털 자산 분야에서 가장 활발한 플랫폼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다. 5월 31일(현지시간) LaraOnTheBlock 및 Ripple 투명성 보고서에 따르면 RLUSD 준비금은 약 18억3300만 달러로, 유통량 17억3100만 달러를 상회하는 초과 담보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2026년 2월 딜로이트(Deloitte)의 준비금 검증 이후 동일한 기조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특히 이번 성장의 핵심은 ‘공급 쇼크’ 수준의 발행 확대다. 블록체인 데이터 플랫폼 토큰터미널(Token Terminal)에 따르면 RLUSD 공급량은 단 한 분기 만에 약 두 배 증가했다. 5월 중순 XRP 레저(XRPL)에서 단일 기준 최대 규모인 2억 RLUSD가 발행됐고, 5월 마지막 주에는 불과 일주일 만에 2억7500만 달러의 순유입이 발생했다. 시장에서는 이를 기관 수요 기반의 유동성 확대로 해석하고 있다. RLUSD는 2024년 12월 출시 이후 1년
얼마 전 TV에서 서커스 공연을 봤다. 한 저글러가 가느다란 막대 위에 수십 개의 접시를 올려두고 동시에 돌리고 있었다. 하나라도 멈추면 금세 떨어질 텐데, 이상하리만큼 표정은 평온했다. 비결을 찾아보니 의외로 단순했다. 그는 모든 접시를 붙잡고 있지 않았다. 속도가 느려지는 접시에만 다가가 짧고 강하게 회전력을 더해줄 뿐이었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문득 내 모습이 겹쳐졌다. 임원이 된 뒤 내 이메일 함에 매일 수십 개의 ‘업무 접시’가 올라온다. 하고 싶은 일은 산더미고 열정은 그야말로 '만렙'인데, 왜 나는 저 저글러처럼 평온하지 못할까. 왜 늘 숨이 차 있고, 무언가를 놓칠까 불안한 채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을까. ◆ “담당님, 저희가 속도를 못 따라가겠어요” 임원이 되고 가장 먼저 부딪힌 벽은 ‘속도의 불일치’였다. 성과를 위해 더 빨리, 더 멀리 내달리고 싶은 나의 의욕과 달리, 현장의 보폭은 그만큼 빠를 수 없다. 사실 리더의 과도한 열정은 때로 구성원들에게 영감이 아닌 '질식'으로 다가간다. 숨이 턱 끝까지 찬 팀원들의 눈빛을 보며 생각했다. 리더의 열정에는 '속도 조절'이라는 브레이크가 필요하다는 것을. 리더가 모든 접시를 직접 손에 쥐고 뛰면
오늘 아침 출근길, 4년 차 팀장을 마주쳤다. 짧은 인사 끝에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담당님, 왜 갈수록 리더라는 자리가 더 어렵고 조심스러울까요? 처음엔 열정으로 다 될 줄 알았는데, 이젠 제가 정말 좋은 리더인지 잘 모르겠어요." 낯설지 않은 질문이다. 나 역시 3~4년 차 팀장 시절, 스스로의 자질을 의심하며 내 상사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임원의 자리에 올라와 보니 비로소 알게 됐다. 이러한 혼란이야말로 리더십 교육이 필요한 이유라는 것을 말이다. ◆ "리더십 교육 내용은 너무 뻔하지 않나요?" 가장 많이 듣는 질문 리더십 교육을 기획하거나 진행하다 보면 반드시 마주하게 되는 시선이 있다. "어차피 다 아는 말 아닌가요? 뻔한 이야기네요." 틀린 말은 아니다. '경청하라, 신뢰를 쌓아라, 구성원의 강점을 발견하라' 등 리더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이야기들을 배운다. 그렇다면 왜 이 뻔하고 다 아는 말을 우리는 반복해서 들어야 하는 걸까. 여기서 질문 하나를 던져보자. '아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은 과연 같다고 할 수 있을까. ◆ 앎과 행동 사이의 간극, 교육이 반복되어야 하는 이유 현장에서 다양한 계층의
◆ "그럼 저는요?" 요즘 AX 관련 다큐나 뉴스 인터뷰가 부쩍 늘었다. 얼마 전 본 프로그램에서 공장 자동화를 도입한 기업의 직원이 카메라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계가 내 일을 더 잘하는 건 알아요. 근데… 그럼 저는요?" 짧은 한 마디였다. 하지만 기업 현장에서 이런 변화를 체감하는 나는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 사실 저 질문은 AI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이미 나온 말이다. ◆ '더 빠르게, 더 정확하게.' 최근 기업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내뱉는 주문이다. AX(AI Transformation)가 시대의 화두가 되면서 업무 프로세스의 효율화와 시스템 최적화는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비단 AI만의 문제가 아니다. ERP가 도입될 때도, 새로운 성과관리 체계가 세워질 때도 조직은 늘 비슷한 진통을 겪어왔다. 그리고 그 진통의 진원지는 언제나 사람을 향해있었다. ◆ 효율성이라는 이름의 '불편한 진실' 회사가 새로운 제도와 시스템을 설계할 때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따지는 것은 당연하다. 투입 대비 산출을 극대화하여 기업의 기초 체력을 기르는 것은 경영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직시해야 할 불편한 진실이 있
학습혁신담당으로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팀원에게 질문을 받았다. "담당님은 이 업무를 안 해보셨잖아요. 근데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적응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내세요?" 칭찬보다는 순수한 궁금증으로 보였다. 본인이 수년간 다뤄온 교육 실무 영역이 나에게는 처음 맡는 영역이라 생소할 텐데, 어떻게 맥락을 금방 파악하고 속도감 있게 움직이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잠깐 생각해보다가 꽤 명확하게 대답했다. "기획의 본질은 콘텐츠, 그러니까 내용물이 아니라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방법'에 있어요. 콘텐츠는 매번 달라지지만, 구조를 세우고 맥락을 읽고 사람들을 움직이는 흐름을 설계하는 건 어떤 아젠다든 동일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는 주니어 때부터 '무엇의 전문가'가 아닌, 콘텐츠에서 자유로운 기획 전문가가 되는 게 목표였어요." 팀원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마 그 말이 바로 와닿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나도 처음부터 이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으니까. ◈ 첫 번째 블렌딩: Content Free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교육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 교재에서 본 한 문장을 잊을 수 없다. '비즈니스 민감성에 기초한 Content Free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