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현주 기자] 국회가 안전·보건 의무 위반으로 1년간 노동자 3명 이상이 사망한 사업주에게 영업이익의 최대 5%를 과징금으로 부과할 수 있도록 산업안전보건법을 고쳤다. 중대재해처벌법의 형사책임 틀에 더해 기업의 손익계산서에 직접 타격을 주는 행정제재를 도입한 것으로, 반복 사망사고에 대한 한국 산업안전 규제의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국회가 10월 1일 본회의에서 산업안전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재석 219명 가운데 찬성 161명, 반대 52명, 기권 6명으로 통과시켰다. 핵심은 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해 최근 1년 동안 노동자 3명 이상이 산업재해로 사망한 경우, 고용노동부 장관이 해당 사업주에게 영업이익의 5% 이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한 대목이다. 법은 공포 후 6개월이 지난 날부터 시행된다.
이번 개정안은 단순히 ‘사망자가 3명 이상이면 자동 처벌’하는 제도가 아니다. 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법 제38조·제39조·제63조에 규정된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했고, 그 위반과 사망 사고의 인과관계가 인정돼야 한다. 즉, 사망자 수만으로 과징금이 기계적으로 산정되는 방식이 아니라, 법 위반 여부와 사고 경위를 행정적으로 판단하는 절차가 전제된다. 구체적인 위반 정도, 기업 규모, 사고의 경위와 재발성 등을 어떻게 반영할지는 향후 대통령령과 고용노동부의 부과기준 마련이 좌우한다.
과징금 산정 방식은 이익이 큰 대기업뿐 아니라 적자를 내거나 영업이익 산정이 어려운 기업도 제도권 안에 넣었다. 영업이익이 없거나 산정이 곤란한 경우, 또는 영업이익 기준으로 계산한 금액이 30억원보다 적을 경우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최대 30억원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예컨대 연간 영업이익이 4000억원인 기업에 상한인 5%가 적용되면 과징금은 200억원이다. 영업이익 4000억원 기업의 5%는 매출액이 아니라 실제 영업활동에서 발생한 이익을 기준으로 산출된다는 점에서, ‘매출의 5%’와는 부담의 성격과 규모가 다르다.
‘형사처벌’만으로는 부족했다는 판단
법 개정의 배경에는 산업재해 사망이 줄지 않는 현실이 있다. 고용노동부의 2025년 누적 통계에 따르면 재해조사 대상 사고사망자는 605명으로, 2024년 589명보다 16명, 2.7% 늘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553건에서 573건으로 3.6% 증가했다.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22년 이후 감소세를 보이던 사고사망자가 다시 증가로 돌아선 것이다.
업종별로는 건설업 사망자가 286명으로 전년보다 10명, 3.6% 증가했고, 제조업은 158명으로 17명 감소했다. 기타 업종은 161명으로 23명, 16.7% 늘었다. 사고 유형별로 보면 추락사가 249명으로 전체의 41.2%를 차지해 가장 많았고, 물체에 맞음 72명, 붕괴 38명 순이었다. 안전모·난간·개구부 덮개·작업절차·장비 분리 같은 기본 안전조치가 작동했다면 줄일 수 있었을 전통적 사고가 여전히 압도적이라는 의미다.
사망 위험은 소규모 사업장과 외주·하청 구조에 더 집중돼 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발표한 ‘노동안전 종합대책’에 따르면 2024년 사고사망자 589명 가운데 50인 미만 사업장 사망자는 339명으로 집계됐다. 또 하청노동자 사망자는 281명으로 전체의 48%에 이르렀다. 정부는 추락·끼임·부딪힘 등 기본 안전수칙 준수로 예방 가능한 재래형 사고가 전체 사망사고의 약 60%를 차지한다고 진단했다.
이런 통계는 2022년 시행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만으로는 반복 사망사고에 대한 예방 유인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정치권과 정부의 판단으로 이어졌다. 중대재해처벌법이 경영책임자 등의 형사처벌 가능성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개정은 ‘안전을 소홀히 해도 이익이 남는’ 구조 자체를 흔들겠다는 접근이다. 형사절차는 수사와 재판에 긴 시간이 걸리고 최종 책임 인정의 문턱도 높다. 반면 과징금은 법 위반과 사망사고의 관계가 인정될 경우 기업의 재무적 부담을 통해 즉시적 억지효과를 노릴 수 있다.
현장에서는 작업중지권도 넓어진다
개정안은 금전 제재만 강화한 법이 아니다. 노동자, 근로자대표,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은 기존의 ‘급박한 위험’뿐 아니라 산업재해 발생이 우려되는 경우에도 사업주에게 작업중지를 요구할 수 있게 된다. 위험이 현실화돼야만 멈출 수 있었던 기준을 사고 우려 단계로 앞당긴 것이다.
특히 수급인 노동자, 즉 하청노동자는 도급인인 원청에 작업중지를 요청할 수 있고, 필요한 경우 대피할 권리가 명문화된다. 산업현장에서 위험한 공정의 작업중지 여부를 원청의 생산 일정이나 하청업체의 계약상 지위에만 맡기지 않겠다는 취지다. 작업중지 요구권이 실제로 작동하려면, 작업을 멈춘 노동자나 하청업체에 대한 계약해지·인사상 불이익·물량 축소 등 보복을 막는 감독 장치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는 과제도 남는다.
반복적인 대형 사고 사업장에는 등록취소 요청의 길도 열렸다.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으로 동시에 2명 이상이 사망한 산업재해가 발생해 3년 동안 영업정지 처분을 두 차례 받은 사업장이 다시 영업정지 대상이 되면, 고용노동부 장관은 관계 행정기관에 사업 등록 취소를 요청할 수 있다. 이는 건설·제조·플랜트 현장의 반복 사고 기업에 ‘사업 지속 가능성’ 자체를 묻는 장치다.
폭염과 한파도 건설공사 기간 연장 요청 사유에 포함됐다. 폭염 속 무리한 공정 강행, 한파 속 콘크리트·고소작업 등 기상위험과 공기 단축 압박의 충돌을 제도적으로 조정하겠다는 의미다. 법 위반 신고 포상제도와 노·사·정이 참여하는 ‘안전한 일터 위원회’ 설치도 개정안에 담겼다.
“예방 투자”와 “중복 규제”의 충돌
여당은 대상 기업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은 본회의 토론에서 과징금은 매출이 아닌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하고, 5%도 상한일 뿐이라며 ‘수조원대 처분’이라는 주장에 선을 그었다. 정부 역시 과징금 수입을 전액 산업재해보상보험기금에 귀속시켜 산재 예방에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국민의힘과 경제계는 형사처벌, 영업정지, 입찰 제한 등 기존 제재에 더해 고액 과징금까지 부과하는 것은 중복·과잉 규제라고 비판한다. 국민의힘은 과징금 상한을 50억원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영계는 영업이익 5%가 기업의 존립과 투자 여력을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수주산업인 건설업과 협력사 의존도가 높은 제조업에서는 원청의 통제 범위, 하청 노동자 사고의 귀속, 일시적 손익 변동 등을 정교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과도한 규제’ 논쟁은 과징금 상한만으로 결론 내리기 어렵다. 개정안은 연간 3명 이상 사망이라는 높은 적용 문턱을 두었고, 안전·보건 의무 위반도 별도로 입증돼야 한다. 법이 겨냥한 대상은 모든 산재 기업이 아니라, 기본 안전 의무 위반이 인정된 가운데 다수 사망사고가 반복된 사업주다. 관건은 과징금을 얼마나 많이 부과하느냐보다, 시행령이 예방 투자를 촉진하면서도 사고책임·지배력·원하청 관계를 합리적으로 가릴 수 있도록 설계되느냐에 있다.
국회가 기업 이익의 일부를 안전의 가격으로 묻기 시작했다면, 이제 그 비용이 실제로 사망을 줄이는 예방 시스템으로 전환되는지를 증명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