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은주 기자] 서울대 경영동아리와 글로벌 컨설팅회사에서 이어진 인맥이 상장사 인수·합병(M&A) 관련 미공개 중요정보를 돌려보는 사적 거래망으로 변질됐다는 의혹이 금융당국의 강제조사로 드러났다. 핵심은 ‘명문대 출신’ 자체가 아니라, 공개매수·지배구조 개편처럼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보를 다루는 전문인력들이 비밀유지 의무를 지닌 채 장기간 상호 정보를 공유하고 가족·지인 거래까지 연결했다는 혐의다.
5년·5개 종목·200억원…단발 아닌 반복형 의혹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한국거래소로 구성된 주가조작 근절 합동대응단은 9월 29일 사모펀드 운용사 및 상장사 관계자 등이 공개매수, 지배구조 개편, M&A 관련 호재성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200억원 이상의 부당이득을 얻은 혐의를 포착해 자택과 사무실 등 20여 곳을 압수수색했다고 밝혔다. 증권선물위원회는 부당이득 은닉·처분을 막기 위해 관련 증권계좌에 지급정지 조치도 취했다. 이는 확정판결이 아닌 수사·조사 단계의 혐의라는 점은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당국이 파악한 구조는 전형적인 ‘정보 선행매매’다. 혐의자들은 시장 공시 또는 공개 발표 전에 대상 주식을 사들인 뒤, 공개매수·M&A 추진 사실 등이 알려져 주가가 오르면 매도해 차익을 실현한 것으로 조사됐다. 핵심 혐의자는 30~40대 약 5명, 가족·지인 등을 포함한 연루자는 10여 명으로 알려졌고, 약 5년간 5개 종목에서 5~6차례 이상 미공개정보 이용 거래가 이뤄진 정황이 포착됐다.
이번 사건의 무게는 이익 규모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단일 종목의 우연한 사전매매가 아니라, 같은 인적 네트워크가 여러 종목의 거래에서 반복적으로 포착됐다는 데 있다. 한국거래소의 시장감시가 이상 계좌를 먼저 찾아냈고, 이후 금융당국이 거래 패턴·자금 흐름·인적 관계를 결합해 추적하면서 동일 인물군의 반복적 개입 혐의를 확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인맥’이 아니라 ‘직무상 정보’가 쟁점
이 사건을 단순히 ‘서울대 동아리 인맥 사건’으로 읽으면 본질을 놓치기 쉽다. 자본시장법상 문제 되는 것은 출신학교나 친분이 아니라, 상장법인의 업무와 관련해 알게 된 미공개 중요정보를 본인 또는 제3자의 거래에 이용했는지, 또는 타인이 이용하도록 전달했는지다.
당국 설명에 따르면 혐의자들은 동아리와 글로벌 컨설팅회사에서 관계를 형성한 뒤 사모펀드 운용사와 상장사 등으로 이동했고, 각자의 M&A 관련 업무 과정에서 접한 정보를 교차 공유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현재 재직 중인 회사가 사건에 직접 연루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공개매수·M&A 자문·지배구조 재편 업무는 통상 극도의 정보 차단과 비밀유지가 요구되는 분야다. 특히 M&A 정보는 인수 가격, 거래 성사 가능성, 지분 구조 변화, 경영권 향방에 대한 시장 기대를 바꿀 수 있어 주가 민감도가 매우 높다.
가족·지인 계좌가 동원됐다는 혐의도 중요하다. 직접 거래자만이 아니라 정보를 받은 1차·2차 수령자까지 거래에 가담했다면, 정보의 최초 취득 경위와 전달 경로, 각자의 인식 여부, 자금 출처와 매매 타이밍이 핵심 증거가 된다. ‘종목 추천을 듣고 투자했을 뿐’이라는 항변이 나오더라도, 정보 공개 직전의 집중 매수, 반복되는 수익 실현, 특정인 사이의 자금·통신·만남 기록 등이 결합될 경우 단순 추천과 미공개정보 이용을 가르는 근거가 될 수 있다.
200억원 부당이득이면 제재는 어디까지
금융당국은 압수수색 자료 분석 뒤 고발과 과징금 부과 절차를 추진할 방침이다. 2024년 1월 19일부터 시행된 개정 자본시장법에 따라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 시세조종, 부정거래 등 이른바 자본시장 3대 불공정거래에는 형사처벌과 별도로 부당이득의 최대 2배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이를 이번 사건의 당국 추산치인 ‘200억원 이상’에 단순 대입하면, 과징금 법정 상한은 400억원 이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부당이득 산정, 개별 행위자의 관여 정도, 형사절차와의 조정, 증거관계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금융위는 2025년 9월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 금지 위반에 대해 처음으로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내부자가 자기주식 취득 결정 정보를 공시 전에 배우자 계좌로 거래해 얻은 약 2430만원의 부당이득에 대해 법정 최고수준인 2배, 즉 4860만원의 과징금을 의결한 바 있다. 금융당국이 초범·조사협조 여부와 별개로 시장 신뢰 훼손을 중대하게 본 선례다.
또한 2025년 4월 23일부터는 불공정거래 혐의자에 대해 지급정지, 금융투자상품 거래 제한, 상장사 임원선임 제한 같은 비금전 제재도 가능해졌다. 이번 사건에서 계좌 지급정지가 신속히 병행된 배경 역시 사후 처벌을 넘어 범죄수익의 이전·은닉을 선제적으로 차단하려는 데 있다.
해외 시장의 공통 경고
미공개정보 이용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내부자거래와 시장조작이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기 때문에 금지하고 실효적으로 집행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이는 자본조달의 공정한 가격 형성이라는 시장의 기본 전제가 ‘정보 접근의 공정성’에 놓여 있다는 뜻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도 2025회계연도에 내부자거래를 포함한 시장질서 훼손 행위를 주요 집행 대상으로 들었으며, 같은 기간 총 456건의 집행 조치와 179억달러의 금전 구제 명령을 발표했다. 이 수치는 내부자거래만을 뜻하는 수치는 아니지만, 미국 역시 내부자거래를 시장조작·공시위반 등과 함께 투자자 신뢰를 해치는 핵심 위법행위로 다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은 미공개정보 이용에 대해 형사처벌뿐 아니라 부당이득 연동형 과징금과 계좌 지급정지를 결합하는 방향으로 제재 수단을 넓혔다. 문제는 제도 신설보다 탐지 역량이다. 거래소의 이상매매 탐지, 금융당국의 계좌·자금 분석, 통신·디지털 증거 확보, 검찰 수사의 유기적 연결이 실제 억지력을 좌우한다. 이번 사건은 기관 간 합동대응단이 단일 계좌가 아닌 인맥·자금·거래의 연결망을 추적한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번 조사는 ‘금융 엘리트의 일탈’이라는 서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핵심은 M&A라는 고밀도 정보를 다루는 금융시장 전문직의 신뢰가 무너졌다는 의혹, 그리고 이를 신속히 포착·동결·환수할 수 있는 시장감시 체계가 실제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시험대라는 데 있다. 혐의자들의 위법 여부와 최종 부당이득 규모는 향후 수사 및 사법절차를 통해 확정될 사안이다. 다만 5년간 다종목에서 반복된 것으로 의심되는 거래망이라는 당국의 판단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이는 개인 몇 명의 투기 문제가 아니라 한국 자본시장의 정보보안·내부통제 설계를 다시 묻게 하는 사건이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