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삼성전기가 AI 서버용 고성능 반도체 기판을 겨냥해 세종과 베트남 생산거점에 총 6조7800억원을 투입한다. 단순한 설비 증설이 아니라 글로벌 고객사의 자금 지원과 중장기 물량 보장을 전제로 한 투자라는 점에서, 이번 결정은 대규모 CAPEX 부담을 감수한 선제 베팅이면서도 수요 리스크를 상당 부분 구조적으로 낮춘 ‘호재’라는 분석이다.
AI 기판에 쏟아붓는 6조7800억원
삼성전기는 28일 세종사업장 패키지기판 생산시설 증설에 4조2700억원, 베트남 생산법인의 패키지기판 공장 증설에 2조5100억원을 각각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두 투자를 합친 금액은 6조7800억원이다. 세종 투자액은 2025년 말 연결기준 자기자본 9조7973억원의 43.6%에 해당하며, 삼성전기 단일 제품 투자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세종 투자 대상은 AI 가속기, GPU, CPU 등 고성능 칩과 메인보드를 연결하는 FC-BGA(Flip Chip-Ball Grid Array)다. 이 부품은 반도체와 기판을 와이어가 아니라 미세한 범프를 통해 직접 접합해 전기 신호와 전력을 전달한다. AI 반도체의 연산량과 데이터 처리량이 높아질수록 기판은 더 넓고, 더 많은 층을 쌓은 대면적·고다층 구조로 진화한다. 반도체 자체의 성능뿐 아니라 전력 공급, 신호 무결성, 발열 관리, 시스템 안정성까지 좌우하는 핵심 소재·부품으로 꼽히는 이유다.
세종 신규 라인은 2028년 9월 양산을 목표로 한다. 투자는 2028년 5월 31일까지 집행된다. 베트남 법인의 패키지기판 증설 설비는 2028년 4월 30일 취득이 예정돼 있다. 베트남 투자액 2조5100억원은 해당 법인의 2025년 말 자산총액 2조4278억원의 103.4%에 달한다. 현지 법인 단위에서 보면 자산 규모를 웃도는 공격적 확장이다.
핵심은 ‘설비’보다 고객 확약
이번 투자의 핵심은 금액이 아니라 계약 구조다. 삼성전기는 세종 FC-BGA 증설이 글로벌 빅테크 고객사와의 중장기 협력을 토대로 추진되며, 고객사가 신규 설비투자 자금 일부를 지원하고 중장기 공급 물량도 보장하는 방식이라고 밝혔다. 대규모 설비투자에서 가장 큰 위험인 초기 가동률과 투자금 회수 불확실성을 고객 수요로 일정 부분 상쇄한 셈이다.
통상 FC-BGA는 고객사별 칩 설계, 기판 규격, 층수, 소재, 열 특성 및 신호 특성에 맞춰 장기간 공동 개발과 품질 인증이 이뤄지는 제품이다. 한번 채택되면 공급 관계가 길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반대로 수요 예측에 실패하면 고정비 부담이 급격히 커질 수 있다. 이번처럼 고객이 CAPEX 일부와 장기 물량을 함께 약속했다면 삼성전기로서는 단순한 ‘수요 기대’가 아니라 일정 수준의 매출 가시성을 확보하고 설비투자 위험을 분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지난 5월 보고서에서 삼성전기의 FC-BGA CAPEX 확대 배경으로 고객사의 선급금과 물량·가격 보장을 지목했다. 해당 보고서는 회사의 CAPEX가 2026년 약 3조원 수준에 근접하고, AI 서버·네트워크용 고부가 FC-BGA의 믹스 개선과 가격 상승이 중장기 성장 동력이 될 것으로 분석했다. 이는 이번 대규모 증설이 일회성 투자라기보다 고객 수요를 기반으로 한 장기 생산능력 확충 사이클의 연장선에 있음을 시사한다.
세종은 초고부가, 베트남은 공급망 이원화
삼성전기의 생산전략은 국내 세종을 고난도·고부가 FC-BGA 중심 거점으로 강화하고, 베트남에는 패키지기판 생산능력을 더하는 이원화 전략으로 읽힌다. 세종은 AI 서버와 HPC용 FC-BGA 중심의 기술 집약형 라인을, 베트남은 현지 기존 부지를 활용한 패키지기판 증설을 맡는다.
이원 생산체계는 고객사 입장에서 납기·비용·지정학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AI 서버용 반도체 패키지기판은 수율과 신뢰성이 공급망 경쟁력에 직결되는 부품인 만큼, 생산거점 다변화는 단순한 인건비 절감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세종에서 최상위 사양 제품의 기술력을 고도화하고, 베트남에서 생산기반을 넓혀 공급 유연성을 확보하는 구조다.
삼성전기는 향후 2~3년간 AI 인프라 투자 지속에 따라 고성능 반도체 기판 수요도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회사가 투자 대상으로 제시한 시장은 AI 서버 외에 HPC와 전장까지 걸쳐 있다. 삼성전기의 6조7800억원은 단순한 공장 증설비가 아니다. AI 시대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칩 다음의 병목’인 기판을 선점하기 위한 대형 승부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