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은주 기자] 소득이 중간이라고 해서, 순자산이 4억원을 넘는다고 해서 곧바로 중산층이라 부르기 어려운 시대다.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의 새 기준은 한국 중산층을 ‘현재의 적정 생활을 누리면서도 노후까지 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가구’로 재정의했고, 그 결과 조건을 통과한 가구는 전체의 24.6%에 그쳤다.
소득 중산층 53%, ‘진짜’는 25%
한국에서 중산층의 외연은 넓지만 내구성은 좁다.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가 2025년 가계금융·복지조사 마이크로데이터를 토대로 분석한 ‘대한민국 진짜 중산층 25%’ 보고서에 따르면,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기준만 적용했을 때 중산층은 전체 가구의 52.9%, 인구 기준으로는 58.6%였다.
하지만 소득 외에 소비·저축 능력, 자산·부채 구조, 노후준비 수준을 더하자 중산층의 규모는 급격히 줄었다. 적정 소비 조건을 더하면 43.2%, 소비 후에도 일정 수준의 저축을 남길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까지 적용하면 39.9%였다. 마지막으로 자산·부채·노후준비 가운데 최소 두 항목에서 안정성을 확보한 가구만 남기자 비율은 24.6%로 축소됐다. 여섯 조건을 모두 충족한 가구는 8%에 불과했다.
이는 “소득 중간층”과 “안정적 중산층”이 더는 같은 개념이 아니라는 뜻이다. 월급이 중간 수준이어도 주거비와 교육비, 대출 원리금, 노후자금 부족이 겹치면 현재의 생활수준을 장기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진짜 중산층’ 가르는 6가지 기준
연구소의 분류는 현재의 생활수준을 보여주는 세 가지 조건과 미래 지속가능성을 점검하는 세 가지 조건으로 나뉜다. 다만 여섯 가지를 기계적으로 모두 충족해야 하는 구조는 아니다.
소득·소비·저축의 현재생활 조건은 모두 통과해야 하고, 자산·부채·노후준비의 미래 조건 중에서는 최소 두 가지를 충족해야 한다. 즉 총 여섯 항목 가운데 최소 다섯 항목을 넘어야 ‘진짜 중산층’으로 판정된다.
세부적으로 조건을 알아보면, ▲소득은 연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2808만~7488만원으로 중위값 3744만원의 75~200% 구간 ▲소비는 연 소비지출 1567만원 이상으로 개인가중 중위소비의 75% 이상 ▲저축은 소비 후 처분가능소득의 10% 이상 잔여상태이며, 현재 소비를 하고도 자산을 축적할 여력 ▲자산은 순자산 2억3860만~6억9432만원 ▲부채는 연 원리금 상환액이 처분가능소득의 30% 이하수준으로 소득을 잠식하지 않는 부채 부담 ▲노후준비 및 생활비 충당 수준이 ‘보통’ 이상으로 은퇴 이후의 생활 유지 가능성이어야 한다.
첫 번째 기준인 소득 범위는 OECD의 중간소득계층 정의와 닿아 있다. OECD는 가구 규모를 보정한 처분가능소득이 각국 중위소득의 75~200%에 속하는 계층을 중간소득계층으로 본다. 다만 OECD도 이를 중산층의 대리 지표로 사용할 뿐, 소득만으로 삶의 안정성과 경제적 계층을 완전히 판정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NH투자증권 보고서의 핵심은 바로 이 빈틈을 메우려는 데 있다. 소득이 기준선 안에 들어오더라도 최소 소비를 못 하거나, 소비를 한 뒤 저축이 불가능하거나, 부채와 노후 위험에 취약하면 ‘지속 가능한 중산층’으로 보지 않은 것이다.
4억1705만원의 오해
보고서상 ‘진짜 중산층’ 가구의 순자산 중앙값은 4억1705만원, 금융자산 중앙값은 1억1230만원이다. 가처분소득 중앙값은 연 7572만원, 월 약 631만원이고, 소비지출 중앙값은 연 3822만원, 월 약 319만원으로 집계됐다. 자가 거주 비율은 72.5%였다.
그러나 이 수치를 “4억1705만원만 있으면 중산층”이라는 절대 기준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이 숫자는 조건을 이미 통과한 집단의 중앙값일 뿐, 진입선이 아니다. 보고서의 자산 조건도 순자산이 2억3860만원에서 6억9432만원 사이라는 범위로 설정돼 있다.
순자산 4억원이 있어도 ▲처분가능소득이 중간소득 범위를 벗어난 경우 ▲연간 소비지출이 1567만원 미만으로 충분한 생활소비를 하지 못하는 경우▲소비 후 가처분소득의 10% 이상을 남기지 못하는 경우 ▲연간 대출 원리금 상환액이 처분가능소득의 30%를 넘는 경우 ▲노후 생활비를 충당할 준비가 부족한 경우에는 ‘진짜 중산층’에서 제외될 수 있다.
특히 자산의 성격이 중요하다. 주택 가격 상승으로 장부상 순자산이 커졌더라도 실제 생활비·교육비·의료비·은퇴자금에 동원할 금융자산이 부족하고, 대출 상환 압력이 크다면 체감 안정성은 낮아질 수 있다. 김진웅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연구위원이 “진짜 중산층은 단순히 비싼 집 한 채를 보유한 가구가 아니라 주거 기반과 함께 실제 사용할 수 있는 금융자산을 충분히 축적한 가구”라고 설명했다.
평균 자산은 올랐지만, 중간 가구의 불안은 남는다
국가데이터처의 2025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2025년 3월 말 기준 한국 가구의 평균 자산은 5억6678만원, 평균 부채는 9534만원, 평균 순자산은 4억7144만원이었다. 2024년 평균 소득은 7427만원, 처분가능소득은 6032만원으로 조사됐다.
다만 평균은 상위 자산가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따라서 ‘평균 순자산 4억7144만원’과 NH 보고서의 ‘진짜 중산층 순자산 중앙값 4억1705만원’을 직접 비교해 한국 가구 다수가 중산층에 가까워졌다고 해석하는 것은 통계적으로 부정확하다. 평균은 전체 자산 총액을 가구 수로 나눈 값이고, 중앙값은 자산 순으로 줄 세웠을 때 정확히 가운데 가구의 값이다.
분배 지표도 중산층의 체감 불안을 뒷받침한다. 국가데이터처는 2024년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기준 지니계수가 0.325로 전년보다 0.002 상승했고, 소득 5분위 배율은 5.78배로 0.06배포인트, 상대적 빈곤율은 15.3%로 0.4%포인트 각각 올랐다고 밝혔다. 자산과 소득의 평균치 상승이 곧 생활 안정의 확대로 이어졌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핵심은 ‘소득’ 아닌 ‘버티는 힘’
국제 비교의 관점에서도 이번 분석은 특별한 방식이라기보다 중산층 논의를 현실화한 접근에 가깝다. OECD는 중산층이 주거·식료품·의류·보건·교육 같은 필수 지출에 예산의 절반 이상을 쓴다고 분석했다. 또 많은 OECD 국가에서 주거 등 중산층 생활에 필수적인 비용이 임금과 전체 물가보다 빠르게 상승하면서, 중산층의 저축 능력이 약화되고 일부는 부채 부담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한국에서 ‘노후준비’를 중산층 기준 안에 넣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OECD의 2025년 연금 보고서 기준으로 한국의 65세 이상 상대적 소득빈곤율은 40%로 나타났다. 이는 노년기에 접어든 뒤 소득과 자산의 지속가능성이 무너지면 중산층 지위도 유지되기 어렵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결국 새 기준은 중산층을 ‘자산 보유 여부’가 아니라 ‘현금흐름과 위험 대응력’의 결합으로 본다. 충분한 소득이 있고, 그 소득으로 인간다운 소비를 하며, 소비 후에도 저축할 수 있고, 주택·금융자산·부채·노후소득 구조까지 버틸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즉 중산층의 본질은 자산 총액이 아니라, 소비를 하면서도 저축하고 부채와 노후 위험을 감당할 수 있는 지속가능성이라는 것이 이번 보고서의 결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