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 공쿠르상이 AI 집필 의혹과 과거 표절 문제에 직면한 아이티계 캐나다 작가 텔리송 오렐리앙(38)의 데뷔소설을 후보군에서 전격 제외했다. 단순히 한 작가의 진위 논란을 넘어, 생성형 AI 시대에 문학상·출판사·심사기관이 무엇을 근거로 ‘인간이 쓴 작품’을 판별하고 책임질 것인가라는 구조적 질문을 던진 사건이다.
france24, theglobeandmail, lemonde, arabnews에 따르면, 공쿠르 아카데미는 9월 25일(현지시간) 그라세(Grasset) 출간작인 오렐리앙의 소설 《C’était ça ou mourir》를 공쿠르상 1차 후보 명단에서 삭제한다고 발표했다. 아카데미는 이 소설이 “개연성상 매우 상당한 부분이 인공지능의 산물이라는 여러 연구자와 신뢰할 만한 언론인의 분석 결과가 수렴했다"고 설명했다.
또 작가가 과거에 저지른 것으로 드러난 표절 문제도 함께 판단 근거로 제시했다. 아카데미는 이번 조치가 “공쿠르상과 아카데미의 완전성(integrity)을 보전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공쿠르상은 11월 4일 최종 수상작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다만 공쿠르 아카데미의 발표는 AI 사용을 법원 판결이나 디지털 포렌식으로 확정했다기보다, 여러 분석의 ‘수렴’과 과거 표절 정황을 합산한 기관 차원의 배제 결정이라는 점에서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SNS 폭로에서 문학상 퇴출까지
사건의 출발점은 9월 21일 X의 익명 계정 ‘Balance ton Claude’였다. ‘클로드를 폭로하라’는 뜻의 이 계정은 AI 텍스트 탐지 서비스 팽그램(Pangram)으로 서로 다른 대목을 분석한 결과, 소설이 “거의 전부 AI로 작성됐다”고 주장했다. 계정 운영 측은 여러 발췌문에서 “100% AI”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공개했다. 당시 이 계정의 팔로워 수는 92명에 불과했지만, 프랑스 문단의 화제작을 겨냥한 의혹 제기는 불과 며칠 만에 국제적 논쟁으로 비화했다.
논란 당시 이 작품은 이미 프랑스 가을 출판시장의 대표적 신인 소설로 부상해 있었다. 오렐리앙은 데뷔작으로 2026년 프낙 소설상(Prix du Roman Fnac)을 받았고, 작품은 20개국 이상에서 출간될 예정이었다. 공쿠르 후보작뿐 아니라 르노도, 페미나, 메디시스 등 다른 문학상 후보 명단에도 남아 있던 것으로 보도됐다. 공쿠르 후보 제외로 작품은 공쿠르 데 리세앙과 공쿠르 데 데트뉘 수상 경쟁에서도 자동으로 제외되는 효과가 발생했다.
사뮈엘 피투시는 자신이 ‘Balance ton Claude’ 집단에 관여했다고 밝히며, AI가 읽기와 쓰기를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가 행동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오렐리앙은 AI 사용을 일관되게 부인했다. 그는 “항상 창작과 글쓰기를 좋아해 왔는데 왜 기계를 쓰겠느냐”고 말했으며, 자신의 창작 이력을 입증할 자료를 출판사와 정리 중이라고 밝혔다. 프랑스 출판사 그라세도 작가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표명했다.
‘AI 탐지 결과’만으로 유죄 판정 가능한가
이 사건에서 가장 민감한 대목은 AI 탐지 도구의 증거력이다. 의혹 제기 측이 활용한 팽그램은 자체 기술보고서에서 10개 글쓰기 유형과 8개 주요 언어모델을 대상으로 정확도 99.85%, 오탐률 0.19%를 기록했다고 주장한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습자들의 TOEFL 글쓰기 벤치마크에서는 오탐이 0%였다는 자체 연구 결과도 내놓았다.
그러나 이 수치는 팽그램의 자체 평가 또는 자체가 소개한 제3자 평가 결과라는 한계를 지닌다. 개별 문학작품, 특히 문체·반복·리듬·이미지 사용이 강한 소설을 대상으로 동일한 정확도가 보장되는지는 별도의 문제다. AI 탐지기는 ‘AI가 생성했음을 직접 입증하는 감식 도구’라기보다 문장 통계적 패턴을 기반으로 한 확률적 분류 도구에 가깝다.
따라서 탐지 결과 자체가 저작 과정의 단독 결정 증거가 되기는 어렵고, 초고 파일의 생성 시점, 수정 이력, 원고 버전, 출판 편집 기록, 작가의 집필 노트 및 메타데이터 등 제작 과정 전반의 교차 검증이 필요하다.
실제로 오렐리앙 측은 소설을 2017년에 쓰기 시작해 2019년 초고를 완성했다고 주장한다. 이는 챗GPT 출시 이전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반론 근거지만, 초고의 원본 파일·버전 이력·작성 환경 등이 독립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이상 이 주장도 언론 보도 단계에서는 당사자 측 주장이다.
이 사건은 역설적으로 AI 탐지 시스템이 만드는 새로운 불평등도 보여준다. 언어권 특유의 문체, 반복과 운율 중심의 글쓰기, 비표준적 문장 구조, 번역투 또는 다언어 창작 방식이 탐지 알고리즘의 의심 대상이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오렐리앙은 자신이 시·이미지·반복·리듬을 중시하는 아이티·카리브해 문학 전통에서 왔다며, 자신을 향한 공격에 인종차별적 메시지도 있었다고 호소했다. AI 규제와 문학적 다양성 보호가 충돌할 수 있는 지점이다.
표절 의혹은 별개의 중대 변수
AI 의혹과 별개로, 과거 저작물 표절 정황은 공쿠르 아카데미가 작품을 후보에서 제외한 핵심 변수다. 캐나다 퀘벡 일간지 라 프레스는 오렐리앙이 2013년 게재한 칼럼 한 편이 필리핀 일간지 필리핀 스타(The Philippine Star)에 며칠 전 실린 기사 내용을 거의 전부 약간 손질해 번역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해당 의혹은 소설 자체가 아닌 2012~2014년 무렵의 칼럼·기고문을 겨냥한다.
프랑스 공영매체 프랑스앵포도 또 다른 글에서 2014년 콜롬비아 전직 장관 로드리고 보테로 몬토야의 기고문 문단이 그대로 옮겨진 정황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이 때문에 논쟁의 초점은 ‘AI 탐지 정확도’ 하나에만 머물지 않는다. 기존 저작물의 출처와 문장을 대조할 수 있는 표절 의혹은 원칙적으로 AI 생성 여부와 다른 차원의 검증 문제이며, 출판사와 문학상 기관이 보다 명확한 저작권·윤리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 대목이다.
퀘벡 출판사 레 제디시옹 뒤 보레알은 홍보 투어를 중단했다. 다만 출판사는 원고를 받은 뒤에는 AI가 사용되지 않았다고 밝히면서도, 현재 단계에서는 작가가 직면한 의혹을 확인하거나 반박할 수 없으며 성급한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퀘벡의 에스트리 도서전도 작가를 프로그램에서 제외했다.
출판계의 진짜 과제는 ‘탐지’ 아닌 ‘입증 체계’
이번 사태가 남긴 핵심은 AI 탐지기의 도입 여부보다 출판 과정의 증명 가능성이다. 원고가 인간 창작물임을 단지 작가의 선언이나 출판사의 신뢰에 맡길 것인지, 아니면 창작 과정의 투명성을 일정 수준까지 제도화할 것인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캐나다 주요 문학상들은 이미 AI 작성 작품을 금지하는 방향의 원칙을 두고 있지만, 실제 집행은 출판사가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캐나다 작가 트러스트와 길러 재단도 인간 저작 여부의 실질적 확인을 출판사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고 밝혔다. 캐나다 총독문학상을 운영하는 캐나다예술위원회는 문학상 심사 대상 작품의 AI 활용에 대해 “명확한 기대 기준”을 제시할 정책을 마련 중이다.
공쿠르 아카데미의 결정은 문학상이 ‘좋은 작품’을 고르는 기관을 넘어, 창작의 주체와 출처를 보증해야 하는 시대에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AI 사용을 둘러싼 판단이 불완전한 탐지 도구, 온라인 폭로, 여론 압박에 과도하게 의존한다면 작가의 권리와 문학적 다양성 역시 위축될 수 있다. AI 시대 문학상의 신뢰는 탐지율 경쟁이 아니라, 재현 가능하고 공정한 검증 절차를 갖추는 데서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