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은주 기자] 노보 노디스크가 스웨덴 약물전달 플랫폼 기업 나넥사와 최대 11억6500만유로(약 13억3000만달러) 규모의 글로벌 독점 라이선스·공동개발 계약을 맺었다. 핵심은 위고비·오젬픽으로 대표되는 주 1회 투여 중심의 GLP-1 치료제를 월 1회, 나아가 분기 1회 투여 가능한 장기지속형 주사제로 전환할 수 있는 약물전달 기술을 선점했다는 데 있다.
최대 5개 프로그램…계약금보다 큰 ‘성공보수’
cnbc, tradingview, fiercebiotech, thepharmaletter에 따르면, 나넥사는 9월 24일(현지시간) 노보 노디스크에 자사의 PharmaShell® 플랫폼을 비만, 제2형 당뇨병 및 기타 심장대사질환용 특정 펩타이드 의약품에 적용할 수 있는 전 세계 독점권을 부여했다고 밝혔다. 계약 범위는 최대 5개 개발 프로그램이며, 양사는 월 1회와 분기 1회 투여를 목표 투약 프로파일로 설정했다. 글로벌 개발과 상업화는 노보 노디스크가 책임진다.
총 계약 규모는 최대 11억6500만유로다. 이 가운데 선급금과 개발·허가 관련 마일스톤은 최대 6억1500만유로로 전체의 약 52.8%이며, 나머지 5억5000만유로는 제품 출시 후 판매 실적에 연동되는 상업화 마일스톤이다. 나넥사는 실제 제품이 시장에 출시되면 글로벌 순매출에 대해 ‘낮은 한 자릿수(low single-digit)’ 로열티도 별도로 받을 수 있다. 즉, 발표된 13억달러는 확정 현금지급액이 아니라 개발·허가·판매라는 복수의 조건이 모두 충족될 경우의 최대치라는 점을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ALD 코팅으로 ‘방출 속도’를 설계
PharmaShell은 원자층 증착(Atomic Layer Deposition·ALD) 기술을 약물 제형에 적용한 플랫폼이다. 개별 약물 입자 표면에 극도로 얇은 무기질 코팅층을 입혀 유효성분이 체내에서 녹아 나오고 방출되는 속도를 통제하는 방식이다. 나넥사는 이 기술이 약물의 지속적·제어된 방출을 가능하게 해 투여 간격을 줄이고, 만성 대사질환 환자의 치료 경험을 개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기술의 상업적 가치는 코팅 자체보다도 실제 GLP-1 또는 다른 인크레틴 계열 펩타이드에 적용했을 때 ▲월·분기 단위의 안정적인 약효 유지 ▲주사량과 주사 부위 반응의 관리 ▲위장관 부작용을 포함한 내약성 ▲대량생산 공정 및 원가 경쟁력을 동시에 입증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약효’ 경쟁에서 ‘투약 간격’ 경쟁으로
이번 거래는 비만 치료제 경쟁의 전장이 단순 체중감량률에서 투여 편의성과 장기 복약 지속성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주 1회 투여는 이미 기존의 매일 투여하는 주사제보다 편의성이 높지만, 비만·당뇨처럼 수년 이상 관리가 필요한 만성질환에서 월 1회 또는 분기 1회 주사는 환자의 치료 이탈을 낮출 수 있는 차별화 요소가 될 수 있다. 반면 약물을 한 번에 장기간 작동하도록 설계하는 만큼 이상반응이 발생했을 때 약효를 즉각 중단·조절하기 어렵다는 점은 장기지속형 제형이 해결해야 할 구조적 과제다.
노보 노디스크는 21일 런던에서 연 자본시장설명회(CMD)에서 2026년 중 4건의 첫 인체투여(FHD)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회사의 비만 파이프라인 자료에는 ‘QM(once-monthly·월 1회)’ 개발 전략도 명시돼 있다. 나넥사 계약은 자체 후보물질 발굴과 병행해 외부 약물전달 기술까지 확보하는 방식으로 월 1회 이상 장기지속형 포트폴리오를 보강한 것으로 해석된다.
시장 규모가 커질수록 투여 방식의 전략적 가치는 더 높아진다. TD Securities는 GLP-1 치료제의 글로벌 매출이 2030년 139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이는 리서치기관의 추정치일 뿐이며, 보험 보장성, 약가 인하, 경구제 확산, 복합작용제 경쟁, 공급 능력 등에 따라 실제 시장 규모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로이터가 인용한 제프리스의 최근 전망도 2030년 글로벌 비만치료제 매출을 1050억달러로 제시해 과거 1300억달러 추정치보다 낮췄다.
릴리·화이자도 같은 방향
장기지속형 인크레틴 시장을 향한 경쟁은 노보 노디스크만의 행보가 아니다. 일라이 릴리는 2025년 6월 스웨덴 카무루스와 장기지속형 인크레틴 개발·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카무루스가 받을 수 있는 최대 금액은 8억7000만달러로, 선급금·개발·허가 마일스톤 2억9000만달러와 판매 마일스톤 5억8000만달러, 글로벌 순매출 기준 단계별 중간 한 자릿수 로열티로 구성됐다. 계약 대상은 최대 4개의 릴리 자체 인크레틴 후보물질이다.
화이자 역시 메트세라 인수를 통해 월 1회 GLP-1 후보 MET-097i를 확보했다. 화이자는 2025년 11월 메트세라 인수를 완료했으며, 거래 조건은 약 70억달러의 기업가치와 임상·허가 마일스톤에 따른 주당 최대 20.65달러의 조건부가치권(CVR)으로 구성됐다. 로이터는 MET-097i가 중기 임상 2건에서 최대 14.1% 체중감량 결과를 냈으며 후기 임상으로 진입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나넥사에는 ‘기술 검증’, 노보에는 ‘시간 매수’
나넥사에는 이번 계약이 기술 플랫폼의 외부 검증과 자금조달 측면에서 분기점이 될 수 있다. 나넥사 최고경영자 데이비드 베스트버그는 이번 계약이 2025년 모더나와의 라이선스·옵션 계약에 이어 PharmaShell의 범용성을 입증하는 계기라고 평가했다. 예란 안도 이사회 의장도 이번 계약을 계기로 다른 치료영역으로의 기술 확장과 내부 파이프라인의 임상개발 추진 여력이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노보 노디스크에는 즉시 매출을 올리는 인수합병보다, 여러 GLP-1·펩타이드 후보에 접목할 수 있는 제형 기술 옵션을 확보했다는 의미가 크다. 최대 5개 프로그램이라는 설계는 하나의 후보물질 성공에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작용기전·용량·투약주기를 시험하려는 포트폴리오 접근으로 읽힌다.
결국 이번 13억달러 계약의 성패는 ‘주 1회에서 월 1회로’라는 편의성 개선이 체중감량 효과와 내약성, 생산성, 약가 경쟁력을 훼손하지 않고 구현되는지에 달려 있다. 비만 치료제 시장이 약효 중심의 1차 경쟁을 지나 복약 지속성과 환자경험을 겨루는 2차 경쟁으로 이동하는 가운데, 노보 노디스크는 약물 자체가 아닌 ‘약물이 몸속에서 작동하는 시간’을 사들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