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정영 기자] AI 데이터센터가 HBM과 서버용 메모리 생산능력을 흡수하면서 일반 DRAM·낸드·NOR 플래시까지 공급 경색이 번지고 있다. 보급형 노트북은 사양 하향과 가격 인상이라는 이중 압박을 받고 있고, 스마트폰·자동차·산업기기까지 연쇄적으로 비용 부담이 전가되는 국면이다.
indianexpress, trendforce, fortune, cnbc에 따르면, AI 열풍이 반도체 업계의 수익 지형을 바꿔 놓으면서 그 비용이 소비자 전자기기 가격표로 이동하고 있다. 생성형 AI 서비스 확산에 따라 클라우드 사업자와 빅테크 기업들이 AI 서버를 대규모로 증설하자,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서버용 DDR5에 생산 역량이 집중됐다. 그 결과 노트북·스마트폰·가전 등에 주로 쓰이는 범용 메모리는 구조적 공급 부족에 빠졌고, 업계에서는 이를 ‘RAMageddon(램마겟돈)’으로 부르고 있다.
핵심은 단순한 일시적 재고 조정이 아니라는 점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AI 서버 수요가 DRAM 공급을 잠식하면서 2026년 DRAM 가격이 연간 기준 70% 이상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2026년 3분기에도 DRAM 계약가격은 전분기 대비 13~18%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가격 상승률 자체는 직전 분기보다 둔화할 수 있지만, 이는 가격이 이미 기록적 수준에 오른 뒤의 기저효과와 소비자 수요 위축을 반영한 것이지 공급 여건이 정상화됐다는 뜻은 아니다.
AI 서버가 소비자용 물량을 밀어냈다
메모리 부족의 출발점은 AI 가속기다. 엔비디아·AMD 등의 AI 가속기는 대용량 HBM을 필요로 하고, HBM은 일반 DRAM보다 공정 난도가 높을 뿐 아니라 여러 개의 메모리 다이를 적층·연결해야 한다. 같은 웨이퍼 생산능력을 투입하더라도 범용 DRAM에 비해 생산량을 빠르게 늘리기 어렵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메모리 3사는 높은 수익성이 기대되는 HBM과 서버용 고사양 DRAM을 우선 배정하고 있다. 트렌드포스는 이들 업체가 고급 서버 DRAM 및 HBM에 선단 공정을 집중하면서 소비자용 DRAM 공급이 제한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공급 확대가 제한적인 가운데 AI·서버 수요는 유지돼 2026년 내내 메모리 가격 강세와 공급 경색이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HBM의 수급 구조는 소비자용 메모리 시장의 압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트렌드포스는 2026년 HBM이 전체 DRAM 웨이퍼 투입량의 약 23%를 차지할 것으로 추정했다. 불과 1년 전의 19%보다 4%포인트 높다. HBM 수요는 2026년에만 전년 대비 70%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AI용 HBM 한 단위의 부가가치가 높고 생산 과정도 복잡한 탓에, 제조사 입장에서는 제한된 생산능력을 HBM·서버용 제품에 먼저 배분할 유인이 크다.
모건스탠리는 AI 인프라 확대가 메모리 수요의 중심을 데이터센터로 이동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서버가 전체 DRAM 수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3년 37%에서 2028년 59%로 높아지고, 기업용 SSD는 같은 기간 전체 낸드 수요의 18%에서 65%까지 확대될 것으로 봤다. 모건스탠리는 2027년 PC 메모리 수요가 약 15% 부족해져 약 5800만대의 PC에 해당하는 공급 공백이 발생할 수 있으며, 스마트폰도 약 12%, 약 1억3400만대 수준의 부족 가능성을 제시했다.
보급형 노트북부터 사양 하향
이번 위기의 소비자 체감은 보급형 제품에서 가장 빠르고 크게 나타난다. 프리미엄 PC는 제품 가격에서 메모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고, 제조사가 일부 원가 상승을 흡수할 여지도 있다. 반면 저가 노트북은 부품 원가 몇 달러의 변화도 출고가와 사양에 즉각 반영된다.
퀄컴의 케다르 콘답 컴퓨트·게이밍 부문 수석부사장은 최근 하와이 마우이에서 열린 스냅드래곤 서밋에서 인디안 익스프레스와 만나 “모두가 기기 가격을 낮추고 더 균형 있게 유지할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제조사들이 OLED 대신 LCD를 채택하거나, 메모리 용량을 8GB로 낮추는 방식으로 목표 가격을 맞추려 한다고 설명했다. OEM의 실제 원가 부담은 메모리를 언제, 어떤 계약가격에 확보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는 소비자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강요할 수 있다. 첫째는 같은 가격에 더 낮은 메모리·디스플레이·저장장치 사양을 받는 ‘사양 인플레이션’이다. 둘째는 기존 사양을 유지하되 출고가를 올리는 방식이다. 특히 온디바이스 AI 기능, 고해상도 디스플레이, 멀티태스킹 수요가 커지는 환경에서 8GB RAM은 일반 문서 작업이나 웹 사용에는 가능하지만, 여러 애플리케이션을 동시에 실행하거나 영상·AI 도구를 활용하는 이용자에게는 빠르게 한계가 드러날 수 있다.
인도 시장은 이러한 압박이 먼저 드러나는 사례다. 인디안 익스프레스는 애플·델 등 주요 PC 브랜드가 인도에서 노트북 가격을 인상했으며, 메모리 칩이 PC 업체들의 가장 비싼 부품 가운데 하나가 됐다고 보도했다. 퀄컴은 스냅드래곤 C 기반 노트북을 약 300달러 가격대로 겨냥하고 있지만, 메모리 원가의 급등 속에서 목표 가격 유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범용’까지 번진 가격 쇼크
가격 압박은 DRAM에만 머물지 않는다. NOR 플래시는 자동차 전장, 산업기기, 네트워크 장비, IoT 기기, 일부 소비자 전자제품의 펌웨어 저장 등에 널리 쓰이는 비휘발성 메모리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026년 상반기 NOR 플래시 계약가격은 평균 누적 기준 100~120% 상승했다. 특히 256Mb 이상 고용량 제품은 AI 서버·자동차 수요와 제한된 신규 공급의 영향으로 2026년 하반기에 추가로 90~110% 오를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 수치는 모든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의 소매가격이 곧바로 두 배가 된다는 뜻은 아니다. 메모리는 완제품 원가(BOM)를 구성하는 여러 부품 중 하나이며, 제조사별 장기계약 조건, 재고 수준, 환율, 유통 마진, 제품군별 가격 전략이 소비자가격을 함께 결정한다. 다만 범용 메모리와 NOR 플래시까지 동반 상승하면 저가 스마트폰, 공유기, 차량용 전장품, 가전 등 마진이 낮고 가격 전가 여력이 약한 품목일수록 충격이 커질 수 있다.
트렌드포스는 2026년 2분기 범용 DRAM 계약가격이 전분기 대비 58~63%, 낸드 플래시 계약가격은 70~75%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공급사들이 서버 관련 제품에 생산능력을 재배치하고, 기업용 SSD에도 낸드 물량을 우선 배정하면서 소비자용 애플리케이션은 비용 압박을 받고 있다는 설명이다.
“단기 정상화 기대 어렵다”
시장에서는 2027년에도 소비자 전자기기의 원가 압박이 이어질 가능성을 높게 본다. 트렌드포스는 2027년에도 AI가 메모리 수요의 핵심 동력이 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HBM 생산능력 배정과 AI 서버 수요가 DRAM 공급을 계속 제약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2026년 DRAM 수급 균형 지표는 약 -1%~-2%로 추정했다. 반면 스마트폰·노트북 등 소비자 전자제품은 높은 부품비가 판매가격 인상으로 전가되면서 교체 수요와 출하량이 위축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AI가 수요를 만들고, 그 수요가 다시 범용 메모리 가격을 올리는’ 구조가 고착될 수 있다는 뜻이다. AI 데이터센터 투자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거나 HBM 전환 비중이 더 커질 경우 소비자용 공급난은 장기화할 수 있다. 반대로 글로벌 경기 둔화로 PC·스마트폰 수요가 급격히 약해지거나 메모리 업체의 생산능력 증설·수율 개선이 예상보다 빨라질 경우 가격 상승세는 완화될 수 있다. 다만 현재 공개된 시장 전망만으로는 후자의 가능성을 단정하기 어렵다.
미국 관세는 해법인가
미국의 반도체 관세 논의는 공급 안정과 가격 안정이 반드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미국은 자국 내 메모리 생산을 확대하고 있지만, 단기간에 아시아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을 대체하기는 어렵다.
마이크론은 2026년 5월 버지니아주 매너서스 공장에서 1α(1-알파) DRAM 제조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회사는 20억달러 이상을 투자한 증설·현대화 사업을 통해 현지 DDR4 웨이퍼 공급을 4배로 늘릴 계획이며, 인증을 마친 1α DRAM은 2026년 말부터 생산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 시설은 자동차·방산·항공우주·산업·네트워킹 등 장수명 제품군을 중심으로 한 생산 기반이다.
SK하이닉스의 미국 인디애나 투자도 즉각적인 해법은 아니다. SK하이닉스는 40억달러 이상을 들여 차세대 HBM 패키징 공장을 건설하고 있으며, 클린룸 가동은 2028년 10월, 차세대 HBM 양산은 2029년 하반기를 목표로 하고 있다. 더구나 해당 시설은 전공정 웨이퍼 제조공장보다 첨단 패키징에 무게가 실린 프로젝트다. 즉, 미국의 생산기반 확대는 중장기 공급망 복원력에는 의미가 있지만, 2026~2027년 소비자용 DRAM·낸드의 부족을 즉시 해소할 카드로 보기는 어렵다.
관세가 수입 메모리와 이를 탑재한 완제품의 비용을 높일 경우, 공급 부족 국면에서는 미국 내 PC·스마트폰·서버·자동차 가격을 추가로 자극할 위험이 있다. 반대로 미국 내 제조 투자 유인을 높여 중장기 공급망을 다변화하려는 정책 목적도 분명하다. 결국 정책의 관건은 관세 자체보다 적용 시점, 국내 생산능력의 실제 가동 시기, 투자 기업에 대한 예외·인센티브 설계, 그리고 소비자·산업용 수요처에 대한 비용 충격 완화 장치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