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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

[The Numbers] "세계 첫 ‘생태계 총생산’ 국가" 부탄, ‘보이지 않는 경제’를 국가통계에 올리다…GDP 밖의 62억달러

GDP 밖의 62억달러…부탄, ‘자연의 국부’를 국가 장부에 올렸다

숲·강·토양까지 경제로 계산한 부탄…‘탈(脫)GDP’ 국가경쟁력 실험
행복지수 다음은 생태계 장부…부탄, GEP 62억달러 공식 채택
“측정해야 지킨다”…부탄이 국가 부(富)의 정의를 다시 쓴 날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부탄이 숲과 강, 토양, 습지, 산악 경관이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경제’를 국가 통계에 올렸다. 세계 최초로 국가 차원에서 생태계 총생산(Gross Ecosystem Product·GEP)을 공식 채택하고, 2024년 기준 자국 생태계 서비스의 경제적 가치를 약 62억달러로 산정했다.

 

이는 세계은행이 집계한 2025년 부탄 명목 국내총생산(GDP) 35억8000만달러의 약 1.73배에 해당한다. GDP가 시장에서 거래된 재화와 서비스의 흐름을 보여준다면, GEP는 그 경제활동을 지탱하지만 가격표가 붙지 않았던 자연의 기여를 화폐 단위로 가시화한 것이다.

 

dailybhutan, einnews, worldbank, Stanford Woods, hindi.ratopati에 따르면, 체링 토브게 부탄 총리는 9월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기후주간 행사에서 “부탄은 수십 년 동안 발전을 경제성장만으로 측정할 수 없다고 믿어 왔다”며 “GDP와 국민총행복(GNH), GEP를 함께 측정함으로써 자연이 경제와 국민 행복의 토대임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는 유엔 주재 부탄 대표부와 스탠퍼드대 자연자본동맹(Natural Capital Alliance)이 공동 개최했다.

 

이번 결정의 핵심은 단순한 환경 캠페인이 아니라 국가 회계와 재정·투자 의사결정의 기준을 확장하는 제도 실험이라는 데 있다. 부탄은 기존 GDP를 폐기하지 않는다. GDP·GNH·GEP를 병렬로 활용해 경제성장, 삶의 질, 자연자본의 상태를 동시에 점검하겠다는 구상이다. 자연 훼손을 대가로 한 성장률 상승이 실제로 국가의 지속가능한 부를 늘리는지 따져보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공짜 자연’에 가격을 붙이다


GEP는 생태계가 인간에게 제공하는 최종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를 일정 기간 단위로 합산한 지표다. 숲과 습지, 강, 토양, 초지, 해안 등 자연자본이 제공하는 혜택의 물량을 산정한 뒤, 이를 금전 가치로 환산하는 방식이다. 학계에서는 GEP를 특정 지역과 회계기간에 생태계가 제공한 최종 생태계 재화·서비스의 총 화폐가치로 정의한다. 중국과 미국 연구진이 2020년 국제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에 발표한 논문은 기존 GDP가 자연의 기여를 누락하는 구조적 한계를 지적하면서 GEP를 정책 의사결정에 연결할 수 있는 회계 틀로 제시했다.

 

부탄의 GEP에는 ▲산림과 토양, 습지가 흡수·저장하는 탄소의 기후조절 가치 ▲산림 유역과 빙하·강수 기반 하천이 제공하는 수자원 조절 및 수력발전 기반 가치 ▲산사태·토양침식·홍수 피해를 줄이는 경사면 안정화와 재해완충 기능 ▲농업 생산을 뒷받침하는 토양 건강, 수분 공급, 수분매개, 병해충 조절 기능 ▲관광산업의 기반이 되는 숲·산악·경관·문화경관의 가치 ▲생물다양성 보전과 생태계의 장기 회복력 같은 서비스가 포함된다.

 

스탠퍼드 자연자본동맹은 부탄에서 수력발전이 빙하와 강우로 공급되는 하천, 산림 유역에 의존하며, 농업 역시 건강한 토양·안정적 물 공급·벌 등 수분매개 곤충·자연적 병해충 통제에 기반한다고 설명했다. 관광 또한 숲과 산, 문화경관이라는 자연자본 없이는 성립하기 어렵다. 즉 GEP는 자연을 “환경 분야의 부속 변수”가 아니라 에너지·농업·관광·재난안전의 생산 인프라로 재분류하는 작업이다.

 

62억달러의 의미, GDP 2배라는 표현은 신중해야


부탄 정부와 스탠퍼드 측은 62억달러 GEP가 “GDP의 약 두 배”라고 설명했다. 다만 정책 해석에서는 GEP와 GDP를 단순히 더해 ‘총경제 규모’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두 지표는 산출 범위와 회계 원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세계은행 데이터에 따르면 부탄의 2025년 명목 GDP는 35억8000만달러, 1인당 GDP는 4492.8달러다. 이 수치와 비교하면 GEP 62억달러는 GDP의 약 173%이며, GDP보다 약 26억2000만달러 크다. 다만 GEP는 시장 거래액이 아니라 자연이 사람과 경제에 제공한 편익을 평가한 값이므로, GDP에 산술적으로 합산할 경우 중복계산 가능성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부탄 경제가 62억달러 더 커졌다”가 아니라 “기존 국민계정에서 충분히 드러나지 않던 자연의 경제적 기여가 연간 62억달러로 계량됐다”고 해석하는 것이 정확하다.

 

부탄의 GEP가 특히 큰 비중으로 나타난 배경에는 높은 산림 비율과 산악·수계 생태계의 특성이 있다. 세계은행은 부탄의 2023년 산림면적 비율을 국토의 71.6%로 집계했다. 부탄 외교부 역시 산림 피복률을 약 72%로 제시하며, 헌법이 국토의 최소 60%를 영구적으로 산림으로 유지하도록 규정한다고 설명한다. 숲이 국가 자연자산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GEP는 단순한 녹색 이미지가 아니라 부탄의 실제 산업 기반과 연결된다.

 

수력발전 의존 경제의 ‘자연 인프라’ 장부


부탄이 GEP를 도입한 경제적 이유는 분명하다. 부탄 경제는 수력발전과 관광, 농업, 자연경관이라는 생태계 기반 산업에 크게 의존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부탄 경제가 수력발전 생산과 인도와의 교역·개발 협력에 높은 의존도를 보인다고 평가했다. IMF는 푸나창추Ⅱ 수력발전소의 본격 가동과 자본지출 확대에 힘입어 부탄의 실질 GDP 성장률이 2024·2025회계연도 6.8%, 2025·2026회계연도 7.4%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수력발전소·송전망·호텔처럼 장부에 즉시 잡히는 자산과 달리, 이를 가능하게 하는 산림 유역과 안정적인 강수·수문 체계, 침식 방지 기능은 전통적 GDP에서 대체로 비용 없는 배경으로 처리된다. 기후변화로 빙하호 범람, 홍수, 산사태 위험이 커질 경우 이 ‘배경’은 곧바로 발전량, 농업 생산, 도로·시설 인프라, 관광 수입의 변동성으로 되돌아온다.

 

IMF는 부탄이 기후 관련 충격, 특히 빙하호 붕괴성 홍수와 같은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지적했다. 동시에 부탄은 산림 면적 60% 이상을 유지하고 탄소중립을 약속한 환경 리더로 평가받고 있다. GEP 도입은 자연보전과 경제성장을 양자택일로 놓기보다, 자연 훼손이 미래 성장·재정·재난 비용에 미칠 영향을 국가 회계 안에서 드러내려는 시도로 읽힌다.

 

부탄은 스스로를 세계 최초의 ‘탄소 네거티브’ 국가로 소개해 왔다. 부탄 외교부는 산림이 연간 약 630만t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반면, 2010년 기준 온실가스 배출량은 약 260만tCO2e였다고 설명한다. 

 

‘행복국가’에서 ‘자연자본 회계국가’로


부탄은 이미 국민총행복(GNH)을 통해 경제성장 일변도의 발전관에 문제를 제기해 온 나라다. GNH가 사회·문화·심리적 행복과 공동체, 환경을 함께 보려는 발전철학이었다면, GEP는 자연의 기능을 정책 예산과 금융 의사결정에 투입할 수 있도록 수량화하는 실행 도구에 가깝다.

 

토브게 총리의 “측정하는 것을 소중히 여기고, 소중히 여기는 것을 보호한다”는 발언은 GEP의 정책적 논리를 압축한다. 산림 복원, 유역 보전, 습지 보호, 산사태 예방 투자에 예산을 투입할 때 비용만이 아니라 회피되는 손실과 창출되는 생태계 편익을 함께 계산하겠다는 것이다. 스탠퍼드 자연자본동맹은 부탄 국가통계국이 GEP를 정책·금융 의사결정에 활용할 수 있도록 계속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접근은 국제사회의 ‘Beyond GDP’ 논의와도 맞물린다. 유엔은 2025년 회원국 요청에 따라 GDP를 보완하는 지속가능발전 지표를 설계할 독립 고위급 전문가그룹을 출범시켰다. 유엔의 보고서는 경제적 안녕, 형평성과 포용, 지속가능성·회복력을 함께 측정해야 하며, 특히 자연자본을 미래 웰빙을 좌우하는 핵심 자본 중 하나로 다뤄야 한다고 제안했다. 유엔은 GDP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GDP의 한계를 보완하는 것이 목표라는 점도 명확히 했다.

 

부탄 모델의 확산 가능성과 과제


GEP 자체는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중국은 여러 지역에서 생태계 생산 가치 회계를 활용해왔고, 스탠퍼드 자연자본동맹에 따르면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 지역은 극한 홍수 이후 생태계 복구 투자 방향을 설정하는 데 GEP를 활용하고 있다. 콜롬비아 모로스키요만(Gulf of Morrosquillo) 지역에서는 관광 발전을 지원하는 산림 복원 재원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쓰였으며, 중국에서는 토지·수자원의 지속가능한 관리 금융과 행정 성과 평가에도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부탄의 이번 조치는 지방정부나 특정 생태계 사업 수준이 아니라 국가 단위 공식 채택이라는 점에서 구분된다. GEP가 국가 예산 편성, 대규모 개발사업의 비용편익 분석, 산림·수자원 보전 보상, 녹색금융·자연기반해법(NbS) 투자 기준으로 실제 작동할지는 향후 제도 설계에 달려 있다.

 

부탄의 실험이 성공하려면 62억달러라는 상징성보다, 이 숫자가 개발사업의 승인 기준과 공공투자의 우선순위, 재난예방 예산, 지역사회 보상과 녹색금융의 흐름을 실제로 바꾸는지가 더 중요하다. 자연을 계산하기 시작한 부탄이 이제 풀어야 할 다음 문제는, 계산한 자연의 가치를 누가 어떻게 지키고 보상받을 것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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