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은주 기자] 그리스 최대 해운 재산을 이끄는 마리아 앙겔리쿠시스(44) 앙겔리쿠시스그룹 최고경영자(CEO)가 패밀리오피스 ‘니크론(Nicrone)’을 통해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에 전략적으로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 이후 공급망 교란과 지정학적 긴장으로 불어난 해운 현금을 상장주식으로 옮겨, 해운 경기와 별개로 작동하는 AI 성장 자산을 확보하려는 자산배분 전략으로 해석된다.
블룸버그는 23일(현지시간) 복수의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를 인용해 앙겔리쿠시스 가문의 민간 투자회사 니크론이 최근 수년간 엔비디아 지분을 매입했으며, 이 종목이 니크론의 주요 상장주식 보유 종목 가운데 하나가 됐다고 보도했다. 다만 니크론은 비상장 패밀리오피스여서 엔비디아 보유 주식 수, 매입 단가, 평가액, 실현·미실현 수익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다.
UBS, gcaptain, truehousepartners, protothema에 따르면, 니크론은 약 4년 전 10억달러 이상 자산을 기반으로 설립됐고, 전 헤지펀드 임원인 로라 레이버스가 영국 조직을 이끈 약 3년 전부터 민간시장 중심 운용에서 공개시장 투자 비중을 키운 것으로 전해졌다. 블룸버그는 이 기간 엔비디아 주가가 4배 이상 올랐다고 보도했다. 단순히 주가 흐름만 놓고 보면, 보유 시점과 매도 여부에 따라 편차는 있겠지만 니크론의 엔비디아 투자 성과가 상당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앙겔리쿠시스 가문이 운용하는 해운 사업의 실물 기반은 압도적이다. 그룹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앙겔리쿠시스그룹은 선박 158척, 발주 선박 22척을 보유하고 있으며, 총 선복량은 2354만4723재화중량톤수(DWT)다. 누적 운송 화물은 1억79만7958톤으로 집계된다. 해운·에너지 운송을 통해 축적한 대규모 현금흐름을 AI 반도체와 같은 상장 성장주로 분산하는 것은 특정 업황과 운임 사이클 의존도를 낮추는 재무 전략이 될 수 있다.
‘해운 상속’ 아닌 ‘자산배분’의 계승
이번 투자는 창업주의 해운 사업을 물려받은 2세 경영자가 단순히 선대를 답습하는 장면이라기보다, 가문의 투자 전통을 공개시장 중심으로 재해석한 사례에 가깝다. 앙겔리쿠시스의 부친 존 앙겔리쿠시스는 2021년 별세 전까지 30년 이상 가문 사업을 이끌며 애플 등 미국 상장주식에 투자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팬데믹 기간 중 해당 포트폴리오가 매각됐고, 그 자금이 니크론 설립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블룸버그 보도의 핵심이다.
니크론은 최근 공개주식 부문의 ‘장기적 가치 창출’을 내건 투자 인력 채용에도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2024년에는 런던 기반 장기 주식선별 투자사 제노 에쿼티 파트너스 출신 벤 골드스미스가 공개자본 부문 책임자로 합류했다. 이는 패밀리오피스가 창업주 개인의 자금 운용 기구에 머무르지 않고, 상장주식 분석·리서치·운용 기능을 갖춘 전문 투자조직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엔비디아 매수’ 자체보다 자산군의 이동이다. 해운 재벌의 재산은 선박 가치, 용선료, 운임, 유가, 금리, 선박 발주량, 글로벌 교역량과 지정학적 리스크에 민감하다. 반면 엔비디아 투자 수익은 AI 인프라 투자, 데이터센터 증설, 클라우드 기업의 자본지출, 반도체 공급망과 기술 경쟁력에 좌우된다. 두 자산군의 위험 요인이 완전히 독립적이지는 않지만, 수익 동력이 다르다는 점에서 포트폴리오 분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엔비디아, ‘AI 테마’ 아닌 초대형 실적 자산
앙겔리쿠시스 가문의 선택은 AI 기대감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엔비디아는 실제 실적에서도 데이터센터 중심의 급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2026회계연도 매출은 2159억달러로 전년보다 65% 늘었고, 이 가운데 데이터센터 매출은 1937억달러로 68% 증가했다. 전체 매출의 약 90%가 데이터센터 부문에서 나왔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블랙웰(Blackwell) 컴퓨팅 플랫폼 수요와 네트워킹 매출 확대가 성장의 핵심 동력이었다.
특히 엔비디아의 2026회계연도 4분기 매출은 681억달러, 데이터센터 매출은 623억달러로 각각 전년 동기 대비 73%, 75% 증가했다. 패밀리오피스 입장에서는 엔비디아가 단순한 반도체 종목이 아니라 AI 모델 학습·추론에 필요한 컴퓨팅 인프라 지출 증가에 투자하는 대표적 수단이 된 셈이다.
초부유층도 ‘사모 일변도’에서 선별적 상장주식으로
니크론의 행보는 초고액 자산가들의 패밀리오피스가 사모시장과 실물자산 일변도에서 벗어나 유동성과 성장성을 갖춘 공개시장으로 일부 무게중심을 옮기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 블룸버그가 미국 공시 자료를 분석한 결과, 6월 말 기준 미국 주식 보유 현황을 공개한 12곳 이상의 패밀리오피스가 엔비디아 주식을 보유했다.
스웨덴 라우징 가문, 헤지펀드 창업자 데이비드 테퍼와 조지 소로스 관련 조직 등이 포함됐으며, 이들의 엔비디아 지분 평균 규모는 약 2억달러로 미국 주식 포트폴리오의 약 4% 수준이었다. 다만 이는 공시 의무가 있는 일부 패밀리오피스에 한정된 분석이며, 비공개 운용 비중이 큰 전체 시장을 대표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UBS의 ‘글로벌 패밀리오피스 리포트 2026’도 이 흐름을 수치로 뒷받침한다. UBS가 30개 이상 시장의 패밀리오피스 307곳을 조사한 결과, 참여 가문의 평균 순자산은 27억달러, 각 패밀리오피스의 평균 운용자산은 13억달러였다. 2025년 기준 전략적 자산배분에서 선진국 주식은 27%로 가장 큰 단일 자산군이었고, 선진국 채권 14%를 합한 전통적 선진국 상장자산 비중은 41%였다. 대체투자 비중은 42%로 여전히 컸지만, 상장시장의 유동성과 기회도 포기하지 않는 이원화 전략이 확인된다.
같은 조사에서 향후 12개월 내 전략적 자산배분을 바꾸겠다고 답한 비율은 60%에 달했다. AI는 조사 대상 패밀리오피스가 가장 중시하는 테마형 투자 영역으로 꼽혔으며, AI 투자에 나선 곳의 약 절반은 데이터센터 인프라, AI 소프트웨어·플랫폼, 반도체 제조사에 투자하고 있었다. 앙겔리쿠시스 가문의 엔비디아 투자는 해운 현금을 주식으로 단순 이동시킨 사례가 아니라, 초부유층 자금이 AI 가치사슬의 핵심 병목인 반도체·데이터센터로 향하는 국제적 흐름 안에 놓여 있다.
관전 포인트는 ‘엔비디아’보다 ‘니크론의 다음 종목’
이번 사례가 주목받는 이유는 한 해운 재벌의 단일 종목 투자보다, 해운·에너지 운송으로 축적된 세대 자산이 어떤 방식으로 기관화되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니크론이 공개시장 인력을 확충하고 엔비디아를 주요 상장 보유 종목으로 편입했다는 사실은 향후 AI 인프라, 전력망, 데이터센터, 에너지 전환, 산업 자동화 등 장기 구조 성장 분야로 투자가 넓어질 가능성을 시사한다.
다만 니크론의 공식 포트폴리오와 운용 방침은 공개되지 않았으며, 앙겔리쿠시스 측은 블룸버그의 논평 요청에 답변을 거부했다. 현재 확인 가능한 사실은 니크론이 엔비디아에 전략적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공개시장 투자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조직을 정비하고 있다는 점까지다.
해운업이 세계 교역의 흐름을 실어 나르는 산업이라면, 엔비디아는 AI 시대의 연산 수요를 실어 나르는 반도체 기업이다. 앙겔리쿠시스 가문의 이번 행보는 운임 사이클에서 얻은 부를 기술 사이클에 연결한 투자 실험으로 읽힌다. 그 성패는 엔비디아 주가의 단기 등락보다도, 니크론이 해운에서 번 현금을 얼마나 규율 있게 장기 복리 자산으로 전환하느냐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