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은주 기자] 지역 농·축협에서 최근 5년간 1000억원이 넘는 금융사고가 발생했지만, 현재까지 회수된 돈은 5분의 1에도 못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사고의 3분의 1 이상이 민원·제보, 수사기관, 언론보도 등 외부 경로를 통해 처음 드러났다는 점은 지역 단위 상호금융의 감시망이 사고 이후에야 작동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던진다.
23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임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농협중앙회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6년 8월 말까지 지역 농·축협에서 집계된 금융사고는 261건, 사고금액은 1069억9959만원이다. 같은 기간 회수액은 178억3406만원으로, 사고금액 대비 16.7%에 그쳤다. 아직 손실이 확정되지 않은 사건이 포함돼 있어 최종 손실 대비 회수율과는 차이가 날 수 있지만, 사고 발생 뒤의 회복력도 취약하다는 신호로 읽힌다.
사고의 질도 가볍지 않다. 유형별로 횡령이 88건으로 가장 많았고, 사적금전대차 57건, 개인정보 유출·무단조회 38건, 금융실명거래 위반 19건, 사기 17건, 업무상 배임 13건, 유용 11건이 뒤를 이었다. 직원 개인의 일탈로 분류하기 쉬운 횡령·사적금전대차만 합쳐도 145건으로 전체의 55.6%다. 자금 취급권한, 고객정보 접근권한, 사적 이해관계의 차단 장치가 조합 단위에서 충분히 작동했는지를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더 뼈아픈 지점은 적발 경로다. 민원·제보 74건, 수사기관 인지 13건, 언론보도 7건 등 외부 경로로 확인된 사고는 모두 94건으로 전체의 36.0%를 차지했다. 자체 적발은 104건, 전산 상시감시 47건, 농협중앙회 조합감사위원회사무처의 종합·부문검사 16건이었다. 내부 시스템이 포착한 사고가 더 많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세 건 중 한 건 이상이 외부의 신고·수사·보도에 기대 드러났다는 사실은 예방 중심 통제의 빈틈을 보여준다.
경기 오포농협의 사례는 회수 단계의 한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2022년 직원의 시재금 횡령으로 집계된 사고금액은 51억9405만원이지만, 회수액은 2억5255만원으로 4.9% 수준에 그쳤다. 광주 축산농협에서 올해 1월 적발된 44억9061만원 규모의 금품수수 사고도 수사기관을 통해 인지됐으며, 집계 시점까지 회수액은 없었다. 두 사례 모두 관련 직원은 징계해직됐지만, 사후 징계가 손실 회복이나 조합원·고객 보호를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사고 적발’과 ‘사고 예방’의 간극
지역 농·축협은 조합원을 기반으로 예금과 대출을 취급하는 상호금융기관으로, NH농협금융지주 산하 NH농협은행과는 조직·법적 지위가 다르다. 따라서 시중은행의 통제 체계를 기계적으로 이식하기보다, 조합별 경영 자율성과 지역 밀착형 관계망이라는 특성을 고려한 별도 관리 설계가 필요하다.
특히 장기근무와 지역사회의 촘촘한 인적 네트워크는 고객 접점과 현장 이해도를 높이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승인·집행·사후점검의 상호 견제를 느슨하게 만들 위험도 있다. 동일 직원 또는 동일 라인이 장기간 자금 집행과 고객관계를 함께 관리하고, 감사 기능이 조합 경영진이나 지역 이해관계로부터 충분히 독립적이지 못하다면 사소한 예외 처리가 반복되며 사고로 누적될 수 있다.
국제 기준도 해결의 방향은 명확하다.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는 은행의 내부통제가 권한 위임을 명확히 하고, 자금 집행·지급·회계처리 기능을 분리하며, 이들 절차를 대사하고 자산을 보호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제시한다. 독립적인 내부감사와 준법·통제 기능이 실제로 통제의 준수 여부와 효과성을 시험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바젤위원회는 2021년 ‘운영 복원력 원칙’에서도 단순히 사고 발생 후 복구하는 수준을 넘어, 사람·절차·시스템에서 생기는 내부·외부 위협을 상시 파악하고 취약점을 선제적으로 평가·통제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운영 복원력은 전산 장애나 사이버 공격만의 문제가 아니라 횡령, 부당대출, 개인정보 무단조회처럼 업무 프로세스에서 비롯되는 금융사고에도 적용되는 원칙이다.
처벌보다 중요한 ‘사전 차단’
현재 농협중앙회는 상호금융 사고 예방 교육을 확대하고, 총자산 8000억원 이상 조합을 대상으로 상임감사제 도입을 추진하는 한편 명절 전후·휴가철 등 취약 시기의 불시점검을 실시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번 통계가 보여주는 것은 교육과 일회성 점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우선 자금의 승인·집행·사후 대사 업무를 시스템과 조직 차원에서 분리해야 한다. 한 직원이 거래를 발굴하고 승인 절차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자금 집행 또는 사후 확인까지 사실상 관여할 수 있는 구조라면 통제는 형식에 머문다. 고위험 거래와 장기 미회수 채권, 반복적인 예외 승인, 특정 직원·거래처·차주에 집중된 거래를 자동 선별하는 이상징후 탐지도 상시 가동할 필요가 있다.
익명 신고채널의 실효성도 관건이다. 민원·제보가 74건에 달했다는 것은 내부 또는 외부의 문제 제기가 실제 적발의 중요한 출발점이 됐다는 뜻이다. 신고자가 인사상 불이익이나 지역사회 관계 악화를 우려하지 않도록 독립 접수창구와 신원보호 절차를 강화하고, 신고 후 조사 결과와 개선 조치까지 이사회 또는 감사기구에 정기적으로 보고하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
금융당국이 2024년 7월부터 금융권 내부통제 강화를 위해 도입한 책무구조도 제도도 참고할 만하다. 금융위원회는 대표이사와 임원에게 내부통제·위험관리의 집행과 운영에 관한 책임을 사전에 배분하고, 관리조치의 이행 결과를 보고하도록 하는 체계를 마련했다. 책무구조도는 책임자를 사후에 찾기 위한 문서가 아니라, 책임 공백과 중복을 사전에 줄이고 반복되는 위반을 차단하기 위한 관리 체계라는 설명이다.
다만 지역 농·축협에 이 같은 원칙을 적용할 때는 ‘규모별 차등’이 중요하다. 모든 조합에 대형 은행 수준의 인력과 시스템을 요구하기 어렵다면, 중앙회 차원에서 공통 이상거래 탐지 모형과 감사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일정 규모 이하 조합에는 공동감사·순환감사·외부감사 인력 풀을 제공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상임감사제 대상이 아닌 조합일수록 독립적 감시 역량의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보완장치가 필요하다.
징계 96건, 그러나 남은 질문
사고 관련 직원에 대한 조치 가운데 징계해직은 96건으로 가장 많았다. 감봉 54건, 견책 39건, 정직 26건, 주의촉구 14건 등이 뒤를 이었으며, 21건은 징계 심의를 앞두고 있고 7건은 소송·수사가 진행 중이다. 개인 책임을 묻는 절차는 진행되고 있지만, 1069억9959만원의 사고금액과 178억3406만원의 회수액 사이에는 891억6553만원의 격차가 남아 있다. 이는 단순한 회계상 차감액이 아니라 향후 손실 확정, 회수 가능성, 조합원과 고객 보호 대책을 지속적으로 확인해야 할 관리 과제다.
농·축협 금융사고의 본질은 ‘몇 명을 해직했는가’가 아니라 ‘사고 징후가 왜 자금 유출 이전에 멈추지 않았는가’에 있다. 외부 적발 36%, 회수율 16.7%라는 두 수치는 사후 적발과 사후 징계에 치우친 대응의 한계를 상징한다. 조합원 신뢰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상호금융에서 내부통제는 규정집이나 교육 실적이 아니라, 의심 거래를 사전에 차단하고 사고가 나면 실질적 손실 회복까지 연결하는 작동 체계로 증명돼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