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현주 기자] 서울 아파트 시장에서 ‘가격 피난처’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관악구 평균 아파트값이 처음으로 8억원을 넘어섰고, 노원구도 7억원 진입을 불과 156만원 앞뒀다.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평균 매매가격 6억원 미만 지역은 이미 자취를 감췄다. 전셋값과 월세 부담이 매수 전환을 자극하면서, 과거 실수요자의 진입 통로였던 강북·서남권 중저가 시장이 서울 집값 상승의 새 진원지가 되는 양상이다.
‘6억원 이하’ 서울은 사라졌다
23일 한국부동산원 자료에 따르면 8월 관악구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8억736만원으로, 한 달 새 1316만원 오르며 처음 8억원대에 진입했다. 노원구도 6억9844만원으로 집계돼 7억원 돌파까지 156만원만 남았다. 노원구 평균가격이 7억원을 넘으면 약 4년 만의 7억원대 복귀다.
서울의 중저가 주거지로 분류되던 지역의 가격대도 9억~10억원 선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성북구 평균 아파트값은 9억2789만원, 강서구는 9억4487만원, 동대문구는 9억7306만원에 이른다. 서대문구는 10억1749만원으로 이미 평균 10억원을 넘어섰다.
특히 서울 25개 자치구의 평균 아파트값이 모두 6억원을 넘긴 것은 2022년 12월 이후 약 3년 6개월 만이다. 도봉구 평균가격이 올해 5월 5억9527만원에서 6월 6억415만원으로 상승하면서 서울의 마지막 ‘평균 5억원대’ 지역도 사라졌다. 이는 단순히 일부 인기 지역 가격이 오른 것이 아니라, 서울 주택시장의 최저 진입가격 자체가 구조적으로 위로 이동하고 있음을 뜻한다.
“강남 하락, 비강남 상승”의 역설
최근 서울 주택시장은 전통적인 강남 주도 상승장과는 다른 흐름을 보이고 있다. 고가 아파트가 밀집한 강남권은 세제 개편 논의와 대출·거래 규제 등의 영향으로 조정 국면에 들어선 반면,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았던 강북·외곽 지역은 실수요 유입으로 상승 폭을 넓히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의 9월 둘째 주 주간 조사에서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보다 0.16% 올랐다. 그러나 한강 이북 14개구의 상승률은 0.29%로 한강 이남 11개구의 0.04%를 크게 웃돌았다. 중랑구는 0.51% 올라 서울에서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고, 도봉구와 서대문구는 각각 0.47%, 성북구 0.43%, 동대문구 0.36% 상승했다. 같은 기간 강남구는 0.36%, 서초구는 0.26%, 송파구는 0.12% 하락했다.
즉 ‘강남에서 시작된 가격 상승이 서울 전역으로 번지는 확산형 상승’이라기보다, 고가 지역에서 밀려난 실수요가 예산에 맞는 대체 지역으로 이동하며 가격 격차를 메우는 ‘추격 매수형 상승’에 가깝다. 강남의 가격 조정 폭보다 비강남권의 상승이 더 빠르게 나타날 경우, 서울 전체의 주거비 하한선은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
서울 아파트값은 9월 둘째 주 기준 84주 연속 상승했다. 이전 최장 상승 기록은 2020년 6월 둘째 주부터 2022년 1월 셋째 주까지 이어진 85주였는데, 현 흐름이 한 주 더 이어질 경우 기록과 같아진다. 상승 속도는 8월 넷째 주 0.29%에서 9월 둘째 주 0.16%로 다소 둔화했지만, 상승의 중심이 고가 강남권에서 중저가 외곽권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 시장의 핵심 변화다.
전셋값이 만든 ‘매수 전환’ 압력
서울 외곽 아파트값 상승의 직접적인 배경으로는 전월세 부담 확대가 지목된다.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지난해 12월 5억9251만원에서 올해 8월 6억3663만원으로 8개월 사이 4412만원 상승했다. 상승률로 환산하면 약 7.4%다. 같은 기간 평균 월세는 149만원에서 164만원으로 15만원, 약 10.1% 올랐다.
전세 보증금이 수천만원 단위로 오르고 월세까지 상승하면, 세입자에게는 “계약을 연장할 것인가, 대출을 더해 외곽 아파트를 매수할 것인가”라는 선택 압력이 커진다. 특히 기존 전세보증금과 주택담보대출을 결합해 매수 가능한 가격대가 형성된 노원·도봉·강북·성북·관악·강서 등으로 수요가 몰리는 구조다.
실제로 9월 둘째 주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전주보다 0.17% 상승했고, 한강 이북 14개구의 상승률은 0.27%였다. 노원구는 0.45%, 중랑구는 0.40%, 동대문구는 0.34% 상승해 매매시장뿐 아니라 임대차시장에서도 비강남권의 오름세가 두드러졌다.
서울 아파트 평균 월세는 8월 164만1000원으로 조사됐다. 전월 대비 0.91% 상승한 수준이다. 성북구는 월세가 한 달 새 1.85% 올라 서울에서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고, 금천구 1.64%, 노원구 1.57%가 뒤를 이었다. 전세가 상승이 매수를 부르고, 매매가 상승이 다시 전월세 부담을 키우는 순환이 비강남권에서 강화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키 맞추기’의 실체와 착시
시장에서는 이를 ‘집값 키 맞추기’ 또는 ‘평탄화’라고 부른다. 하지만 가격 격차가 좁혀진다는 사실만으로 주거 여건이 개선됐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하위 가격대 지역이 강남 수준으로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서울 전체의 가격 하단이 상승하며 무주택자의 선택지가 줄어드는 방식의 평준화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직방이 국토교통부 아파트 매매 실거래가를 토대로 올해 1월과 8월의 전용면적 1㎡당 중위가격을 비교한 결과도 이 같은 흐름을 보여준다. 성북구는 ㎡당 1146만원에서 1260만원으로 올라 서울 평균 대비 가격 수준이 90%에서 99%로 높아졌다. 동대문구는 1218만원에서 1300만원으로 상승하면서 서울 평균의 96%에서 103%로 올라섰고, 강서구도 1239만원에서 1336만원으로 오르며 서울 평균 대비 98%에서 105%가 됐다.
노원구 역시 ㎡당 중위 실거래가격이 1004만원에서 1117만원으로 상승했다. 서울 평균 대비 수준은 79%에서 88%로 높아졌다. 여전히 서울 평균보다 낮지만, 격차가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는 뜻이다. 중랑구도 같은 기간 서울 평균 대비 74%에서 92%로 격차를 크게 줄였다.
내 집 마련의 문턱은 더 높아졌다
관악구 평균가격 8억원, 노원구 평균가격 7억원 임박은 서울 주택시장에 중요한 기준선의 변화를 보여준다. 과거에는 서울 외곽의 6억~7억원대 아파트가 청년·신혼부부·무주택 실수요자의 현실적 대안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이제는 평균가격 기준으로도 서울 전역에서 6억원 이하 아파트를 찾기 어려워졌다.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최대 6억원으로 가정하더라도, 평균 8억원짜리 아파트를 매수하려면 취득세·중개보수·이사비·리모델링 비용 등을 제외하고도 최소 2억원 안팎의 자기자금이 필요하다. 대출 한도는 개인의 소득, 주택가격, 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보유 부채 등에 따라 달라지므로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 다만 평균가격이 6억원에서 8억~10억원대로 이동할수록 필요한 현금과 상환 능력이 동시에 커지는 것은 분명하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1일 열린 ‘2026 서울 주택정책 성과공유회’에서 비강남권 아파트값 급등의 원인으로 전월세 가격 상승을 지목하며, 서민들이 서울 외곽 아파트라도 매수해야 한다고 판단하는 상황을 언급했다. 이는 정책 당국도 임대차 불안이 매매 수요로 전이되는 구조를 주요 위험 요인으로 보고 있음을 시사한다.
부동산업계 전문가는 "서울 주택시장의 현 국면은 ‘강남과 비강남의 격차 축소’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하기 어렵다. 가격 상단의 조정과 가격 하단의 상승이 동시에 진행되는 가운데, 서울 안에서 상대적으로 감당 가능한 주택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은 더 좁아지고 있다"면서 "중저가 아파트의 소멸은 단지 가격 통계의 변화가 아니라, 실수요자의 서울 정착 비용과 주거 사다리의 첫 칸이 높아지고 있다는 신호"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