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희선 기자] 롯데백화점이 실적 호황 속에서 5년 만에 희망퇴직 카드를 꺼냈다. 기준임금 40개월분과 최대 2500만원의 재취업 지원금, 자녀 1인당 최대 1000만원의 학자금, 3개월 유급휴가까지 내건 이례적으로 두터운 조건이다. 동시에 신입사원 채용은 이어간다. 단순히 인원을 줄이는 구조조정이라기보다, 장기근속 중심의 인력구조를 재편하고 외국인 소비·프리미엄 패션·콘텐츠형 점포 운영에 맞춰 조직의 세대와 직무를 바꾸려는 선택으로 해석된다.
롯데백화점은 9월 21일 사내 공지를 통해 희망퇴직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신청 기간은 이날부터 10월 5일까지다. 대상은 근속 20년 이상 직원이며, GL2(옛 대리급) 이하 직원은 근속 15년 이상이면 신청할 수 있다. 퇴직자에게 기준임금 40개월분과 재취업 지원금 2000만원을 지급하고, GL2 이하 직원에게는 재취업 지원금을 2500만원으로 높였다. 자녀 학자금은 자녀당 최대 1000만원, 진로 전환을 위한 3개월 유급휴가 ‘리스타트’와 재취업 교육 ‘스텝업’도 제공한다.
‘불황형 감원’과 다른 이유
이번 희망퇴직의 가장 큰 특징은 실적 악화가 아니라 실적 반등 국면에서 시행된다는 점이다. 롯데백화점의 2021년 첫 희망퇴직은 코로나19 충격이 유통업계 전반을 덮친 시기에 진행됐다. 당시 조건은 임금 24개월분과 위로금 3000만원, 자녀 학자금 최대 3200만원이었다. 이번에는 급여 보상 기준이 24개월에서 40개월로 16개월 늘었다. 월 기준임금이 같다고 가정하면 현금성 보상 기준이 약 66.7% 확대된 셈이다.
정량적으로도 백화점 사업은 최근 롯데쇼핑 실적 회복의 중심축이었다. 롯데쇼핑 백화점 사업부의 2026년 2분기 매출은 8912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9.2%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1197억원으로 84.0% 급증했다. 분기 기준 역대 최대 매출이다. 국내 백화점 매출은 8556억원, 영업이익은 1123억원으로 각각 8.8%, 77.6% 늘었다. 해외 백화점도 매출 356억원, 영업이익 74억원을 기록해 영업이익 증가율이 309.7%에 달했다. 베트남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는 6개 분기 연속 분기 최대 영업이익을 경신했다.
상반기 기준으로도 국내 백화점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8.4%, 영업이익은 54.8% 증가했다. 롯데쇼핑 전체 연결 기준 상반기 영업이익은 3428억원으로 81.5% 늘었고, 순이익은 1585억원으로 1932.9% 증가했다. 백화점의 회복이 전사 수익성 개선을 끌어올린 구조다.
외국인 1조원 시대의 그림자
롯데백화점이 인력 재편에 나서는 직접적 배경에는 외국인 소비의 폭발적 증가가 있다. 롯데백화점의 올해 상반기 외국인 매출은 64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5% 증가했다. 2025년 연간 외국인 매출 7348억원에 반년 만에 근접한 규모다. 추세가 이어질 경우 3분기 중 외국인 매출 1조원 돌파 가능성도 거론된다.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 등 국내 주요 3사의 올해 상반기 외국인 매출은 합산 1조7200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보다 120% 증가한 수준이며, 지난해 연간 합계인 2조800억원의 약 83%에 해당한다. 롯데가 6400억원, 신세계가 5800억원, 현대가 약 5000억원으로 각각 역대 상반기 최대 외국인 매출을 기록했다.
관광객 유입 자체가 달라졌다. 한국관광공사 한국관광통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방한 외래객은 1070만9919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21.3% 증가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상반기의 126.9% 수준이다. 6월 한 달 방한객은 199만3128명으로 전년 동월보다 23.1% 늘었다.
소비 증가 속도는 방문객 증가보다 더 빠르다. 문화체육관광부·한국관광공사 집계 기준 올해 상반기 외국인 카드 지출액은 10조389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50.8% 늘었다. 야놀자리서치가 분석한 상반기 관광수입은 136억1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36.4%, 2019년 대비 31.6% 증가했고, 외래객 1인당 관광수입도 1270.4달러로 전년보다 12.4% 늘었다. 방문객 수뿐 아니라 ‘객단가’가 함께 상승하는 국면이라는 의미다.
백화점 입장에서는 이것이 기회이자 조직 변화의 압력이다. 과거 백화점 본점의 핵심 경쟁력이 명품 브랜드 유치와 VIP 관리, 내국인 중심의 고정 고객 서비스였다면, 지금은 다국어 응대, 면세·환급, 모바일 결제, K패션·K뷰티·팝업스토어 운영, 관광 동선 연계, 외국인 대상 디지털 마케팅 역량까지 필요해졌다. 오프라인 매장 판매 인력만으로 성과를 내기 어려운 구조로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롯데쇼핑은 본점과 잠실점을 상권 전체를 아우르는 거점으로 육성하는 ‘타운화(Townization)’ 전략과 K-콘텐츠 기반 상품기획, 외국인 전용 멤버십, 그룹 계열사 연계 마케팅을 강화해 상반기 외국인 매출 6400억원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백화점이 더 이상 물건을 파는 한 개 점포가 아니라 쇼핑·관광·식음료·문화·숙박을 엮는 복합 플랫폼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40개월치의 계산법
‘기본급 40개월치’라는 표현은 강력한 헤드라인이지만, 개별 직원이 실제로 받는 총액은 기준임금의 정의, 직급, 근속기간, 성과급 반영 여부, 재취업 지원금 및 학자금 지급 요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준임금이 월 500만원인 직원이라면 40개월분은 2억원이다. 여기에 재취업 지원금 2000만원을 더하면 현금성 지원은 단순 계산으로 2억2000만원이 된다. GL2 이하라면 재취업 지원금 2500만원을 합산해 2억2500만원이 될 수 있다. 여기에 자녀 학자금과 유급휴가 지원은 별도 조건에 따라 추가될 수 있다.
회사 입장에서도 40개월분은 결코 가벼운 선택이 아니다. 희망퇴직은 퇴직자가 발생하는 해에 위로금과 지원금을 일시 비용으로 반영해야 하지만, 이후 고정 인건비를 낮추고 조직의 직급 피라미드를 조정할 수 있다. 특히 백화점처럼 점포·브랜드·상품기획·마케팅·디지털·관광 서비스가 복합적으로 얽힌 사업에서는 인원 총량보다 인력의 구성과 생산성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
이번 제도의 핵심은 ‘나갈 사람만 나가는’ 자발적 퇴직과 ‘새 인력을 들이는’ 채용을 병행한다는 데 있다. 롯데백화점은 상반기에 영업·상품기획·마케팅 직무 신입사원을 채용했고, 하반기에는 영업 직무 신입 채용도 예정하고 있다. 장기근속자에게는 전환의 선택지를 제시하고, 새 인력에게는 디지털·관광·콘텐츠·현장 영업의 역할을 맡기는 세대교체형 구조로 볼 여지가 있다.
‘감원’ 아닌 ‘인력 포트폴리오’
이번 희망퇴직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롯데백화점은 잘 팔릴 때 조직을 다시 짜고 있다는 것이다. 실적이 좋으니 퇴직 보상을 두텁게 제시할 수 있고, 외국인 매출이 커지니 과거의 백화점 운영 방식에 머무르지 않을 이유도 커졌다.
다만 회사 측 설명인 “성장 기반 마련”이 실제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지는 별도 문제다. 희망퇴직이 효과를 내려면 퇴직 후 공백이 생기는 현장 영업·상품기획·VIP 관리·브랜드 소싱 역량을 보완하고, 채용 인력을 단순 저비용 대체 인력으로 쓰지 않아야 한다. 장기근속자가 보유한 상권 이해도, 브랜드 협상력, 고객 데이터 해석력, 협력사 네트워크는 숫자로 쉽게 환산되지 않는 자산이기 때문이다.
특히 외국인 매출 급증은 관광 회복과 환율, 항공편 공급, 국가별 비자·외교 환경, K콘텐츠 인기에 영향을 받는 변동성 높은 수요다. 지금의 관광 특수가 상시 수요로 굳어질지는 확실하지 않다. 따라서 롯데백화점이 이번 인력 재편을 단순한 비용절감이 아니라 국내 VIP·지역 상권·온라인 연계·해외 점포를 아우르는 사업모델 전환으로 연결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백화점의 희망퇴직은 통상 ‘내리막’의 신호로 읽힌다. 그러나 이번 사례는 정반대의 질문을 던진다. 외국인 매출이 1조원을 바라보고, 분기 영업이익이 84% 뛰는 시점에도 기업은 왜 사람을 줄이려 하는가. 답은 매출의 크기보다 매출을 만들어내는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롯데백화점의 40개월치는 퇴직 보상금인 동시에, 관광·콘텐츠·디지털 유통 시대에 맞는 새 조직을 만드는 데 회사가 지불하는 전환 비용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