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편집자주> 유튜브, 인스타 등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들이 '협찬을 받지 않았다', '광고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보이기 위해 "내 돈 주고 내가 샀다"라는 뜻의 '내돈내산'이라는 말이 생겼다. 비슷한 말로 "내가 궁금해서 결국 내가 정리했다"는 의미의 '내궁내정'이라고 이 기획코너를 명명한다. 우리 일상속에서 자주 접하는 소소한 얘기거리, 궁금증, 호기심, 용어 등에 대해 정리해보는 코너를 기획했다.
‘양 양 양’으로 끝나는 고을을 따라가면 고기 냄새가 난다. 울산 언양(彦陽)의 바싹불고기, 전남 광양(光陽)의 숯불고기, 전남 담양(潭陽)의 떡갈비, 경남 밀양(密陽)의 돼지국밥, 충북 단양(丹陽)의 마늘떡갈비가 그렇다.
한자 표기에서 공통으로 드러나는 ‘볕 양(陽)’은 음양론에서 햇빛·양지·따뜻함·활력을 뜻한다. 다만 이 다섯 지명이 모두 같은 뿌리에서 나왔거나, ‘양반 도시였기 때문에 육식 문화가 발달했다’고 단정할 만한 사료는 부족하다.
그럼에도 이 도시들은 한반도의 주요 교통로, 행정 중심지, 장시(場市), 산지와 평야·하천이 만나는 결절점으로 성장했고, 그 과정에서 고기는 단순한 영양원이 아니라 권력의 접대 음식, 시장의 노동식, 지역의 관광 브랜드가 됐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양(陽)’은 지명의 우연한 공통분모일 수 있지만, 고기를 굽고 다지고 끓여 손님을 맞아 온 다섯 고을의 문화사에는 분명한 공통된 결이 있다.
‘양(陽)’은 계급명이 아니라 풍광의 언어
언양·담양·밀양·단양·광양의 ‘양’은 모두 볕 양(陽)이지만, 이 글자가 곧 ‘양반(兩班)의 양’은 아니다. 한자 지명에서 양(陽)은 흔히 산의 남쪽, 강의 북쪽, 햇볕이 잘 드는 양지, 밝고 번성하는 공간이라는 상징을 품는다. 중국의 낙양(洛陽), 양양(襄陽)처럼 지리와 길상성을 함께 담는 방식이다.
그러나 다섯 고을의 앞 글자는 서로 완전히 다른 장소의 기억을 간직한다. 광양의 광(光)은 빛, 밀양의 밀(密)은 빽빽함 또는 깊음, 담양의 담(潭)은 못과 깊은 물, 단양의 단(丹)은 붉은 빛·단약의 이미지, 언양의 언(彦)은 뛰어난 선비라는 뜻을 지닌다. 즉 ‘양’은 공통이지만, 각 도시의 지명은 산세·물길·빛·행정적 이상·문인의 이미지를 서로 다르게 압축한 언어다.
특히 이들 지역이 조선시대 행정과 교통의 요지였다는 점은 중요하다. 밀양은 영남대로 축에 놓여 한양과 동래를 잇는 길목이었고, 삼랑진은 물자와 사람이 모이는 수운·육운의 결절점이었다. 지역 기록은 밀양 돼지국밥이 1938년 무안장터에서 시작해 6·25전쟁기의 피란민과 서민층의 든든한 식사가 됐다고 전한다.
언양 역시 영남권 교통망과 고속도로 개통의 수혜를 크게 받았다. 언양불고기는 일제강점기 무렵 목장·도축장·푸줏간이 발달한 환경을 기반으로 성장했고, 1960년대 후반 고속도로 건설 노동자들이 즐겨 찾으면서 전국적 명성을 얻었다는 설명이 전한다. 1988년에는 향토음식으로 지정됐다.
이렇게 보면 ‘양반도시’라는 표현은 사회사적 사실이라기보다 문화적 비유에 가깝다. 더 정확한 문장은 이렇다. 볕 양자 고을의 고기 음식은 양반의 격식, 장터 상인의 속도, 노동자의 열량, 여행자의 호기심이 겹쳐 만들어진 결과물이라는 분석이 가능한 셈이다.
다섯 도시의 다섯 음식은 모두 고기를 중심에 두지만, 조리법은 지역의 자연환경과 계층·유통 구조에 따라 뚜렷하게 갈린다.
언양, ‘불고기’보다 ‘바싹’이 먼저다
언양불고기는 국물이 흥건한 서울식 불고기와 다른 결을 지닌다. 소고기를 얇게 손질하고 간장 양념을 입힌 뒤 석쇠에서 수분이 날아가도록 굽는다. 그래서 ‘바싹불고기’라는 별칭이 붙었다. 농민신문은 언양식의 특징을 “국물 없이 석쇠에서 바싹 익히고 참숯의 훈연향이 밴 불고기”라고 설명한다.
이 음식의 핵심은 고기의 양보다 표면적이다. 고기를 얇게 펴고 잘게 손질하면 양념이 고르게 닿고, 불과 만나는 면적은 커진다. 마이야르 반응, 즉 고기의 아미노산과 당이 열에 반응하며 갈색 향미를 만드는 과정도 활발해진다. 언양불고기의 ‘바싹함’은 단순히 수분을 날린 결과가 아니라, 고기·양념·숯불 사이에서 향이 농축되는 조리 과학의 산물이다.
광양, 숯불과 구리 석쇠가 만든 ‘마로화적’
광양불고기는 얇게 저민 소고기를 양념한 뒤 참숯불 석쇠에 굽는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지역 문화 기록은 광양불고기를 “천하일미 마로화적(天下一味 馬老火炙)”이라고 부른다. 마로는 광양의 백제시대 지명이고, 화적은 불에 구운 고기를 뜻한다. 즉 “마로의 불고기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맛”이라는 지역의 오래된 자기 선언이다.
광양시 문화관광 자료에는 조선시대 유배 온 선비가 지역 아이들을 가르치자 주민들이 소를 잡아 숯불고기로 보답했다는 향토음식의 기원을 설명하는 전승설화가 소개된다.
광양불고기의 매력은 ‘즉석성’에 있다. 장시간 재워 국물을 머금게 하는 방식보다 얇은 고기에 양념을 입혀 빠르게 굽는다. 고기의 지방, 참숯의 열, 연기 속 휘발성 향미가 결합하면서 단맛·불향·육향이 짧은 시간에 폭발한다. 같은 불고기라 해도 서울식이 국물과 전골의 문법에 가깝다면, 광양식은 불과 석쇠의 문법에 가깝다.
담양, ‘체면’이 다져낸 부드러움
담양떡갈비는 고기의 계급성과 민주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음식이다. 갈빗살을 다져 양념해 굽는 조리법은 질긴 고기를 부드럽게 바꾸는 기술인 동시에, 손에 들고 뜯는 갈비 대신 젓가락으로 먹을 수 있게 만든 식사 예법의 산물로 해석된다.
담양 지역의 전승은 노송당 송희경이 15세기 초 궁중에서 맛본 음식을 담양에 전했다는 데 닿아 있다. 관련 기록과 기사들은 송희경이 담양에 정착한 뒤 갈빗살을 다져 양념하고 갈비뼈에 붙여 굽는 궁중식 방식을 전했다는 향토음식 기원설을 소개한다.
담양의 오래된 떡갈비 전문점 가운데에는 1900년대 초 창업 이후 4대째 가업을 잇는 사례도 있다. 이는 ‘유서 깊은 음식’이 단지 조선시대의 전설로만 생존한 것이 아니라, 근현대 외식업의 세대 계승을 통해 재생산됐음을 보여준다. 떡갈비의 부드러움은 식감의 문제가 아니다. 씹는 부담을 줄이고, 고기를 손으로 뜯는 행위에 수반되는 위계를 없애며, 가족 단위 식탁으로 확장될 수 있게 한 사회적 기술이다.
밀양, 장터와 피란의 기억을 끓인 국밥
밀양돼지국밥은 불고기·떡갈비와 달리 ‘불 앞의 고기’가 아니라 ‘국물 속의 고기’다. 밀양 지역 향토문화 자료는 이 음식이 1938년 무안장터에서 시작됐고, 6·25전쟁 당시 밀양·부산 일대 피란민과 서민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한다.
돼지국밥은 값비싼 부위를 과시하는 음식이라기보다, 도축 이후 남는 부위와 뼈·고기를 오랫동안 끓여 열량과 단백질을 추출하는 생활의 조리법이다. 밀양식은 소뼈로 육수를 내 맑고 담백한 국물을 강조하는 설명도 전한다. 다만 돼지국밥의 세부 레시피는 식당별로 크게 다르고, 국물의 색·사골 사용 여부·부추와 새우젓의 비중도 일률적으로 규정하기 어렵다.
밀양의 경우 ‘육식 문화가 발달한 부유한 양반 도시’라는 한 줄보다, 교통도시의 장터 음식이 전쟁과 이주의 시대를 통과하며 지역의 정체성이 된 사례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불고기와 떡갈비가 대접의 언어라면, 국밥은 생존과 환대의 언어다. 뜨거운 국물 한 그릇은 이동하는 사람에게 가장 빠르게 전달되는 지역 공동체의 복지였다.
단양, 마늘이 고기의 지역성을 다시 썼다
단양의 경우 대표 음식은 전통 고기요리 하나로 오래 고정돼 있었다기보다, 지역 특산물인 마늘이 다양한 외식 메뉴와 결합하면서 관광 브랜드로 성장한 사례다. 단양 마늘은 석회질 토양과 큰 일교차 속에서 길러져 단단하고 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단양군의 음식점 정보에는 ‘마늘떡갈비’를 대표 메뉴로 내세운데 이어 마늘통닭·마늘만두·마늘순대 등을 지역 먹거리로 개발해 확장중임을 보여준다.
마늘떡갈비의 본질은 전통의 보존이 아니라 전통의 조합이다. 다진 고기라는 익숙한 형식에 지역 농산물의 향을 입혀 ‘단양에서만 먹어야 할 이유’를 만든다. 마늘의 황화합물은 가열 과정에서 특유의 알싸한 향과 감칠맛을 내고, 육류의 지방감과 만나 풍미의 대비를 만든다. 산지 농산물이 고기요리를 ‘지역 음식’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양반 음식’과 ‘서민 음식’은 한 식탁에 있었다
이 다섯 도시의 고기 음식을 양반 음식과 서민 음식으로 칼같이 나누기는 어렵다. 담양떡갈비와 광양불고기에는 궁중·사대부·유배 선비의 서사가 강하게 얽혀 있다. 반면 밀양돼지국밥은 장터와 피란, 노동과 생계의 음식으로 출발했다. 언양불고기는 도축장과 푸줏간, 고속도로 노동자와 관광객의 이동이 만든 근현대 외식 문화의 산물이다. 단양 마늘떡갈비는 지방 특산물과 시장·관광 정책이 결합한 비교적 현대적인 음식 브랜드다.
그러므로 ‘볕 양자 고을은 양반 고기 도시’라는 명제는 절반만 맞다. 볕 양자 고을의 육식 문화는 조선시대의 위계와 의례, 근대 장터의 상업성, 전쟁과 산업화 시대의 노동, 오늘날 관광객의 체험 소비가 차례로 겹쳐진 결과다.
고기는 오랫동안 귀한 단백질이었고, 귀한 손님에게 가장 강한 환대의 신호였다. 그러나 고기를 잘게 다져 떡갈비로 만들고, 얇게 저며 불고기로 펴고, 뼈와 살을 우려 국밥으로 만들면서 고기는 계층을 넘어 더 많은 사람의 식탁으로 이동했다. 한우 갈빗살의 호사와 돼지국밥의 포만감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지역 사회가 서로 다른 시대에 고기를 분배해 온 방식이다.
음식은 지리의 ‘먹는 지도’다
학계에서 향토음식은 맛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이미지와 관광 행동을 연결하는 매개로 분석된다. 강원도 향토음식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향토음식의 고유성이 지역의 환경적·문화적 이미지에 정(+)의 영향을 미치며, 추천 의도와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한 확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광주 지역 대표음식 연구에서도 응답자들은 대표음식이 갖춰야 할 요소로 맛과 양을 중요하게 평가했고, 인지도 조사에서는 송정떡갈비가 21.4%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재방문 의사 항목에서는 ‘매우 있다’가 32.8%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음식이 단순한 부대 서비스가 아니라 도시의 기억을 재방문하게 만드는 장치라는 뜻이다.
국제 연구 역시 비슷한 결론에 이른다. 유네스코 미식창의도시 맥락을 분석한 연구는 음식 체험이 인지, 지역 환경에 대한 노출, 감각·인지에 기반한 시식, 기억이라는 네 단계로 구성된다고 설명한다. 여행자는 먼저 “언양불고기가 유명하다”는 정보를 접하고, 현지의 길·숯불·시장·식당을 경험한 뒤, 냄새와 맛을 기억으로 저장한다. 그 기억은 귀가 후 SNS 사진, 블로그 후기, 재방문 계획, 선물 구매로 이어진다.
이 관점에서 ‘양양양’ 고을의 고기 음식은 단순한 메뉴가 아니다. 지리의 압축 파일이다. ▲언양불고기에는 목축·도축·고속도로의 시간 ▲광양불고기에는 참숯·석쇠·유배 설화와 남도 환대의 미학 ▲담양떡갈비에는 궁중의 예법과 다짐이라는 조리 기술 ▲밀양돼지국밥에는 장터·피란·노동의 뜨거운 복지 감각 ▲단양 마늘떡갈비에는 산지 농업과 관광시장 혁신의 문법이 들어 있다.
‘볕 양(陽)’은 물리적으로는 햇볕이 드는 곳을 뜻하지만, 문화적으로는 사람이 모이고 길이 열리며 음식이 전파되는 장소의 은유가 될 수 있다. 햇볕이 잘 드는 양지는 농경지와 마을을 키우고, 사람과 물자가 오가는 길은 시장을 만들며, 시장은 고기를 굽고 국물을 끓이는 식당을 낳는다. 결국 다섯 도시의 공통점은 ‘양반’이라는 신분의 잔향보다, 빛·길·시장·환대가 결합한 지역 문명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