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희선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에게 1000억원 이상을 썼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측 이상원 변호사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항고하면서, 최 회장과 노 관장 사이의 장기 이혼·재산분할 분쟁이 다시 ‘숫자의 전쟁’으로 번지고 있다.
이번 항고의 핵심은 검찰의 불기소가 ‘1000억원’이라는 수치의 진실성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 발언자가 허위임을 인식했다는 점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판단이었다는 데 있다.
최 회장 측은 15일 입장문에서 "이상원 변호사의 발언이 허위사실 유포에 해당한다"며 "서울중앙지검의 불기소 처분에 불복해 항고했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2023년 11월 노 관장이 김 이사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변론준비기일 뒤 언론에 “최 회장이 2015년 이후 김 이사장에게 쓴 돈만 1000억원이 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 발언에 대해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불기소 처분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최 회장 측은 불기소 처분의 법적 의미가 수치의 사실성 확인과는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최 회장 측은 “허위사실에 대한 인식, 즉 발언자가 해당 내용이 허위라는 사실을 알면서 유포했다는 점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취지일 뿐, 1000억원이 실제 지출액이라고 확인한 처분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형사상 명예훼손 사건에서 ‘표현 내용의 진위’와 ‘피고소인의 허위 인식’이 별도의 쟁점으로 다뤄질 수 있다는 점을 전면에 내세운 대응이다.
양측의 공방은 단순한 액수 차이보다 ‘무엇을 김 이사장 관련 지출로 볼 것인가’라는 산정 기준의 충돌에 가깝다. 최 회장 측은 김 이사장과 함께 생활비로 사용한 금액이 발언 당시 기준 약 20억원이며, 이 금액은 금융거래 내역 조사를 거쳐 재산분할 재판부에 소명했다고 밝혔다.
반면 1000억원이라는 주장은 최 회장 개인 계좌에서 이뤄진 여러 지출을 폭넓게 합산한 수치라는 것이 최 회장 측의 설명이다. 최 회장 측은 해당 산정에 사용처가 서로 다른 지출, 노 관장에게 지급된 금원, 자녀 관련 지출 등이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일부 보도에서 최 회장 측은 최 회장의 수감 기간 개설된 국민은행 계좌의 204억원도 노 관장을 위해 개설된 계좌이며, 그 지출 상당 부분이 노 관장에게 귀속됐음에도 김 이사장 관련 지출로 계산됐다고 주장했다.
이번 명예훼손 항고전은 최 회장과 노 관장 사이의 재산분할 소송과 분리된 형사 절차이지만, 양측 모두 진행 중인 대법원 판단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서울고법 가사1부는 올해 7월 파기환송심에서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금 944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2024년 항소심이 산정한 1조3808억원보다 4368억원, 약 31.6% 줄어든 금액이다.
재산분할액의 변화는 이번 논란이 발생한 법적·사회적 맥락을 보여준다. 1심은 재산분할액을 665억원으로 판단했으나, 2024년 항소심은 약 4조115억원의 공동재산을 전제로 노 관장 몫을 35%로 산정해 1조3808억원을 인정했다. 이후 대법원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약 300억원이 SK그룹 성장에 기여했다는 항소심 판단을 재산분할 기여도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고 재산분할 부분을 파기환송했다. 파기환송심은 분할 대상 재산을 약 2조8999억원으로 다시 산정하고, 노 관장의 비율을 3분의 1로 판단해 9440억원을 정했다.
현재 최 회장은 9440억원 가운데 7000억원 부분은 수용하고, 이를 초과하는 2440억원에 대해서만 재상고해 대법원 판단을 받겠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1000억원’ 발언을 둘러싼 명예훼손 사건은 재산분할금의 직접적인 산정 사건은 아니지만, 자산 형성·지출·재산 귀속을 둘러싼 양측의 상반된 서사가 법정 안팎에서 충돌하는 부수 전선이 됐다고 볼 수 있다.
김 이사장 관련 법적 책임은 이미 별도의 민사 손해배상 사건에서 판단된 바 있다. 서울가정법원은 2024년 8월 노 관장이 김 이사장을 상대로 제기한 30억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김 이사장이 최 회장과 공동으로 노 관장에게 위자료 2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항소 없이 확정됐다.
다만 이 20억원은 김 이사장에게 지급된 생활비 또는 재산 이전 규모를 인정한 금액이 아니라, 혼인 파탄에 따른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다. 법원은 최 회장과 김 이사장의 관계, 혼외자 출산, 공개적 행보 등이 부부 간 신뢰관계를 훼손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도됐다.
한마디로 이번 공방은 ‘1000억원 대 20억원’이라는 자극적 숫자 대결이지만, 법적으로는 누가, 어떤 계좌와 자산을, 어떤 기준으로, 누구를 위한 지출로 분류했는가의 문제다. 대규모 재산분할 사건에서 숫자는 결론이 아니라 출발점이며, 숫자에 붙은 거래 명세와 법적 성격이 승패를 가른다는 점을 다시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