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은주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11 테러 희생자 유족들의 요구를 받아 사우디아라비아 연루 의혹 관련 추가 기록 공개를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25년간 봉인돼 온 ‘사우디 변수’가 다시 미·사우디 관계의 민감한 정치·외교 의제로 떠올랐다.
다만 현재까지의 미국 정부 공식 조사 결론은 “사우디 정부나 고위 관리가 9·11 공격 또는 알카에다를 조직적으로 지원했다는 증거는 없다”는 것이며, 이번 논란의 핵심은 그 결론을 뒤집는 확정 증거가 아니라 개별 사우디인·사우디 연계 인물의 지원 정황을 어디까지 국가 책임으로 연결할 수 있느냐에 있다.
reuters, nytimes, theguardian, abcnews, theatlantic, nypost에 따르면, 2001년 9월 11일 미국 본토를 겨냥한 알카에다의 동시다발 항공기 테러는 미국 사회와 대외전략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납치된 민항기 4대 중 2대는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1대는 국방부 청사 펜타곤에 충돌했고, 나머지 1대는 펜실베이니아 들판에 추락했다. 납치범 19명을 제외하고 2977명이 숨졌으며, 항공기 승객·승무원 246명 전원, 세계무역센터에서 2606명, 펜타곤에서 125명이 사망했다.
테러의 직접 실행 주체가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끈 알카에다였다는 사실에는 큰 이견이 없다. 미국 9·11위원회는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KSM)를 ‘항공기 작전’의 핵심 설계자로 규정했고, 빈 라덴이 1999년 무렵 이 계획을 승인해 조직의 자금과 인력을 투입하도록 했다고 판단했다. 즉, 9·11의 작전 지휘·기획·실행 구조는 알카에다 중심으로 규명돼 있다.
그러나 19명의 납치범 가운데 15명이 사우디 국적자였다는 사실은 사건 초기부터 미국과 사우디의 동맹 관계에 거대한 균열선을 만들었다. 비율로는 약 78.9%다. 나머지는 아랍에미리트(UAE) 2명, 이집트 1명, 레바논 1명이었다. 국적 구성만으로 사우디 정부의 관여를 뜻하지는 않지만, 미국인 유족과 일부 정치권이 “테러범 개인의 국적 문제를 넘어, 이들이 미국 내에서 누구의 도움을 받았는지 끝까지 조사해야 한다”고 요구해온 배경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9·11 테러 25주년 직후인 13일, 아일랜드 방문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르며 유족들의 추가 문서 공개 요구에 대해 “돌아가면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요구의 대상은 테러범 또는 그 조력자들과 사우디 측 인물 사이의 접촉, 자금·주거·이동 등 지원 가능성을 담은 미공개 또는 추가 기밀 기록이다. 트럼프의 발언은 문서 공개를 확정한 것이 아니라 검토하겠다는 단계지만, 유족들이 수십 년간 요구해 온 ‘완전한 기록 공개’ 요구가 다시 백악관 의제로 올라왔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9·11 사우디 연루 논쟁은 엄밀히 말하면 서로 다른 두 질문이 섞여 있다. 첫째는 사우디 정부·왕실·고위 관리가 테러를 알고 지시하거나 자금을 댔는지다. 둘째는 사우디 정부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개인, 외교·종교기관 관계자 또는 정보망 인물이 미국에 입국한 납치범들에게 생활·정착·연락·자금 측면에서 도움을 줬는지다.
미국의 공식 조사보고서는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부정적 결론을 냈다. 2004년 9·11위원회 보고서는 사우디를 알카에다 자금의 중요한 원천으로 인식하면서도, 사우디 정부라는 기관 또는 사우디 고위 관리가 개인적으로 알카에다를 지원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탈레반 외에 외국 정부가 알카에다를 체계적으로 재정 지원했다는 설득력 있는 증거도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9·11위원회 산하 테러자금 조사 보고서는 9·11 작전 비용을 약 40만~50만 달러로 추산했다. 이 중 약 30만 달러가 납치범 19명의 미국 내 은행계좌를 거쳤고, 테러 직전 약 2만6000달러가 아랍에미리트의 조력자에게 반환된 것으로 조사됐다. 위원회는 테러범들의 자금이 해외 송금, 현금·여행자수표 반입, 해외 금융계좌의 신용·직불카드 사용 등을 통해 조달됐다고 분석했으며, “미국 내 인물이나 외국 정부가 납치범들에게 실질적 자금을 제공했다는 증거는 없다”고 명시했다.
이는 “사우디 정부가 9·11 작전을 재정적으로 후원했다”는 주장을 공식적으로 입증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반대로, 이 결론이 미국 내 사우디 관련 인물들의 접촉·지원 의혹까지 모두 해소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바로 그 간극이 유족 소송과 문서 공개 요구가 이어지는 이유다.
논쟁의 출발점 중 하나는 2002년 의회 공동조사 보고서에서 장기간 비공개였던 이른바 ‘28쪽’이다. 이 부분은 2016년 공개됐다. 문서는 일부 납치범이 미국 체류 중 사우디 정부와 연결됐을 수 있는 인물들과 접촉하고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다만 보고서 작성자들조차 해당 내용 가운데 일부는 FBI가 확보한 미확인 정보라고 주의시켰고, 백악관은 공개 뒤에도 사우디 정부 또는 고위 인사가 알카에다에 자금을 댔다는 미국 정부 판단에는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유족과 법률대리인들이 주목하는 인물은 사우디 국적의 오마르 알바유미다. 그는 2000년 초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한 납치범 나와프 알하즈미와 칼리드 알미드하르를 만난 뒤 이들의 아파트 마련과 샌디에이고 정착을 도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훗날 아메리칸항공 77편을 납치해 펜타곤에 충돌시킨 조직원들이다.
2024년 공개된 영국 수사당국 압수 자료는 논쟁에 새 불을 붙였다. 영국 경찰은 9·11 테러 열흘 뒤 알바유미의 영국 버밍엄 자택을 수색했고, 그가 그린 항공기 스케치와 수학식이 적힌 메모 등을 확보했다. 뉴욕타임스는 해당 수식이 항공기가 수평선상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하강률을 계산하는 데 쓰일 수 있다는 FBI 분석이 뒤늦게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유족들의 문제 제기는 외교적 논란을 넘어 미국 법정에서 진행 중인 국가책임 소송으로 이어졌다. 이 소송은 2016년 제정된 ‘테러지원국 정의법(JASTA·Justice Against Sponsors of Terrorism Act)’의 적용과 맞물려 사우디의 주권면제 주장에 도전해 왔다. JASTA는 외국 정부가 미국 영토에서 발생한 테러 행위를 방조·지원했다는 주장이 일정 요건을 충족할 경우, 미국 법원에서 민사소송 대상이 될 수 있도록 예외를 둔 법이다.
2025년 8월 뉴욕 남부연방법원의 조지 B. 대니얼스 판사는 사우디의 소송 각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유족 측 소송의 진행을 허용했다. 법원은 사우디 정부에 고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들이 알하즈미와 알미드하르를 지원했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제시됐다고 봤다.
다만 이는 사우디 정부의 책임 또는 유죄를 확정한 판결이 아니다. 소송을 계속 심리할 관할과 법적 요건이 충족될 수 있다고 판단한 절차적 결정이며, 국가 차원의 테러 공모 여부는 향후 증거개시와 본안심리를 거쳐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추가 기록 공개를 실제로 지시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과거사 공개 문제가 아니다. 석유, 역내 안보, 이란 견제, 무기 거래, 중동 질서 재편을 축으로 유지돼 온 미·사우디 전략관계의 정치적 비용을 다시 계산하게 만드는 사안이다.
9·11위원회 테러자금 보고서는 테러 이전 미국과 사우디의 협력이 불충분하고 선택적이었다고 지적했다. 당시 미국은 사우디의 알카에다 자금 차단 협력이 미온적이라고 봤으며, 사우디 내부의 기부자·조력자·자선단체 등을 통한 자금 유출을 통제하는 데 허점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동시에 위원회는 사우디 정부나 고위 관리가 알카에다를 의도적으로 지원했다는 증거는 찾지 못했다고 결론지었다. 즉, 미국의 공식 기록은 ‘국가 차원의 공모’와 ‘감독 실패 또는 민간·준민간 경로의 자금·인적 연결 가능성’을 구별해 다룬다.
새 문서에서 만일 사우디 정부 기관, 외교관, 정보 관계자 또는 정부 고용 인물과 납치범 사이의 직접적인 지시·보고·자금 흐름이 확인된다면 파장은 작지 않을 수 있다. 유족 소송의 증거 구도가 달라지는 것은 물론, 미국 의회의 대사우디 압박, 무기·안보 협력의 조건화, 사우디의 국제 이미지와 투자 유치 전략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반대로 추가 공개 문서가 기존 판단처럼 의혹과 접촉 정황은 보여주되 국가 지시나 고위층 인지·지원의 직접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논란은 법적 책임보다는 ‘정보 은폐와 동맹 우선주의’라는 정치적 비판으로 수렴될 가능성이 크다. 유족들에게는 진상규명 문제지만, 워싱턴과 리야드에는 국가안보 문서 공개의 범위와 동맹 관리의 비용이 맞물린 고난도 외교 현안인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