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희선 기자] 두유 브랜드 ‘베지밀’ 제조사 정식품이 대리점에 제품 물량을 부당하게 떠넘겼다는 이른바 ‘밀어내기’ 의혹으로 공정거래위원회 현장조사를 받았다. 정식품이 같은 유형의 행위로 제재를 받은 2014년 12월 이후 약 11년 9개월 만이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9월 8일부터 11일까지 나흘 동안 충북 청주의 정식품 본사에 조사관을 보내 대리점 거래 실태를 점검했다. 핵심은 정식품이 대리점의 실제 주문 의사와 무관하게 제품 구매를 강요했는지, 또는 주문 내용을 일방적으로 바꾸거나 일방 출고하는 방식으로 재고 부담을 전가했는지 여부다. 정식품은 “조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라며 별도 입장을 내지 않았다.
이번 사안이 주목받는 것은 단순한 첫 의혹이 아니라는 데 있다. 공정위는 2014년 정식품 부산영업소가 2011년부터 2013년 6월까지 관할 대리점 35곳을 상대로 제품 구입을 강제한 행위를 적발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2억3500만원을 부과했다. 당시 부산영업소는 매월 10~14개 제품을 ‘집중관리 품목’으로 정한 뒤 품목별 할당량을 부여했다. 대리점 주문량이 할당량에 미달하면 영업직원이 주문서를 수정하거나 물량을 출고한 것으로 공정위는 판단했다.
당시 문제의 품목에는 신제품과 판매가 부진한 제품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식품·음료 유통에서 유통기한은 재고 부담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다. 특히 두유처럼 유통기한이 제한된 제품은 본사가 정한 판매 목표가 대리점의 실수요 예측을 압도할 경우, 대리점이 할인 판매·덤핑 또는 폐기 비용을 떠안을 위험이 커진다. 2014년 사건의 본질은 본사가 매출과 재고 리스크를 유통 말단으로 이전했는지에 있었다.
정식품은 2014년 제재 당시 주문 시스템을 개선하고, 전국 14개 영업소의 대리점장 437명과 상생협약을 체결하는 등 재발 방지책을 마련했다고 공정위에 알렸다. 그러나 11년여 뒤 같은 ‘구입강제’ 의혹으로 다시 조사선상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시 개선책이 현장 영업 관행까지 실질적으로 통제했는지 검증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2014년 제재와 이번 조사의 법적 프레임은 다르다. 2014년에는 대리점법 제정 이전이어서 공정거래법상 거래상 지위 남용 규정이 적용됐다. 반면 이번 조사는 대리점 거래를 별도로 규율하는 ‘대리점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즉 대리점법 위반 혐의로 진행되는 것으로 보도됐다.
대리점법 제6조는 공급업자가 거래상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해 대리점이 구입 의사가 없는 상품이나 용역을 구입하도록 강제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시행령은 구입강제의 구체적 유형으로 ▲특정 상품 주문을 강요하거나 주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행위 ▲대리점 주문 내용을 일방적으로 수정해 구매 의사가 없는 상품을 공급하는 행위 ▲기타 대리점 의사에 반하는 강제 구매를 명시한다.
따라서 조사 결과를 가를 핵심 증거는 ‘판매 목표’ 자체가 아니라 그 목표가 어떻게 실행됐는지다. 본사가 대리점과 협의해 매출 목표를 세우는 것만으로 법 위반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목표 미달을 이유로 공급 중단, 인센티브 삭감, 계약상 불이익을 암시하거나 실제로 가하고, 대리점의 주문과 다르게 제품을 출고했다면 구입강제 또는 판매목표 강제 문제로 번질 수 있다. 공정위는 2018년부터 주문 없는 상품의 일방 공급과 묶음 구매 강제까지 불공정 대리점 거래 유형으로 구체화했다.
조사 결과 위반이 인정되면 공정위는 해당 행위 중지, 시정명령 사실의 공표 등 시정조치를 명할 수 있다. 과징금 부과 여부와 규모는 위반 기간, 거래 규모, 행위의 강도, 피해 범위, 반복성 및 자진시정 여부 등을 종합해 개별적으로 판단될 사안이다.
정식품은 단순한 중소 식품 브랜드가 아니라 국내 두유 유통 구조에서 상당한 시장 존재감을 가진 기업이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 식품산업통계정보를 인용한 2024년 보도에 따르면 베지밀의 국내 두유시장 점유율은 49.3%로 1위다. 시장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선도 사업자일수록 유통망과 대리점에 행사하는 영향력에 대한 관리 책임도 그만큼 무거워진다.
재무 정보에서도 정식품의 사업 규모는 확인된다. 정식품이 공개한 결산공고와 감사보고서 기반 기업정보에 따르면 2024년 매출은 2261억5009만원, 영업이익은 51억3838만원으로 영업이익률은 약 2.3%였다. 2025년 매출은 2392억6829만원으로 전년보다 5.8%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50억3000만원 수준으로 집계됐다. 매출은 증가했지만 이익률이 낮은 식품 제조업 구조에서 유통단계의 재고·할인·폐기 비용을 누가 부담하는지는 기업의 수익성뿐 아니라 거래 공정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정식품에는 단순한 법률 대응을 넘어 유통 거버넌스를 입증할 과제가 생겼다. 대리점별 주문·출고·반품·재고·폐기 데이터의 독립적 검증, 영업 인센티브 구조의 공개적 점검, 익명 신고채널의 실효성 검증, 유통기한 임박 제품의 비용 부담 원칙 명문화 등이 뒤따라야 ‘상생협약’이 선언이 아니라 제도로 작동했다는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공정위 역시 이번 조사를 개별 기업의 일회성 제재에 그치지 않고, 식품·음료 업계의 판매 목표와 출고 압박이 대리점의 재고 위험으로 전가되는 구조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2013년 남양유업 사태 이후 ‘밀어내기’는 한국 유통산업의 대표적 갑을 문제로 자리 잡았다. 정식품 사건의 결론은 한 기업의 법 위반 여부를 넘어, 대리점법 시행 이후 공급업자의 영업 관리가 실제로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