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승원 기자] 오픈AI가 한국 법인 출범 1년 만에 국내 기업용 챗GPT 이용 기반이 급팽창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장의 본질적 변화는 ‘사용자 수 28배’라는 양적 성장 자체보다, 기업들이 AI를 문서 요약·초안 작성용 보조 도구가 아니라 조사·분석·코딩·업무 자동화를 실제로 끝까지 수행하는 실행 주체로 활용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오픈AI는 9일 서울 강남구 조선팰리스에서 열린 한국 오피스 공식 출범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8월 말 기준 한국 내 챗GPT 엔터프라이즈 도입 규모가 사용자 수 기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28배 늘었다고 밝혔다. 또 에이전틱 업무 흐름을 겨냥한 챗GPT 워크와 코덱스의 국내 주간 활성 이용자는 지난 3월 대비 약 14배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기업 AI의 평가 기준이 “답변을 얼마나 잘 만드느냐”에서 “업무를 실제로 어느 범위까지 완수하느냐”로 옮겨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법무·영업·재무·마케팅·운영 등 다양한 직무에서 AI가 리서치와 보고서 초안을 지원하는 수준을 넘어, 여러 애플리케이션과 파일을 오가며 분석·작성·개발·자동화 작업을 연속 수행하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AI 답변’에서 ‘AI 실행’으로
이번 발표에서 가장 주목할 대목은 챗GPT 워크와 코덱스가 상징하는 업무 방식의 변화다. 생성형 AI의 초기 경쟁이 질문에 대한 자연어 답변과 콘텐츠 생성 능력에 집중됐다면, 최근 경쟁은 AI가 스스로 업무 목표를 분해하고 필요한 자료를 찾은 뒤 도구를 사용해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능력으로 옮겨가고 있다.
코덱스는 코드 작성·수정·검토를 돕는 코딩 에이전트이고, 챗GPT 워크는 애플리케이션과 파일을 연결해 조사와 분석, 문서 생산을 수행하는 업무형 기능으로 설명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AI를 직원 개개인의 검색·작성 보조도구로 공급하는 것보다, 특정 업무 프로세스에 연결해 반복 업무를 줄이는 편이 투자 대비 효과를 확인하기 쉽다.
예를 들어 재무·전략 부서에서는 AI가 실적 발표 자료와 내부 경영 데이터를 정리하고, 경쟁사 동향을 조사한 뒤, 회의용 초안과 질의 목록을 만드는 흐름까지 담당할 수 있다. 개발 조직에서는 요구사항 정리→코드 생성→테스트→오류 수정 제안의 연속 과정이 대표적이다. 다만 이런 활용은 기존 챗봇보다 훨씬 큰 생산성 잠재력을 갖는 동시에, 잘못된 데이터 접근과 권한 오남용, 결과 오류의 조직적 확산 위험도 키운다.
결국 기업이 봐야 할 핵심 지표는 단순한 AI 사용 횟수가 아니라 ▲업무 완료율 ▲사람의 검토·재작업 시간 ▲오류가 비용과 고객 경험에 미치는 영향 ▲권한 관리와 감사 로그의 수준 ▲민감정보 처리 범위다. 오픈AI가 언급한 ‘낮은 비용’ 역시 모델 사용료만이 아니라 검토 인력과 보안 운영, 시스템 통합 비용까지 합한 총소유비용(TCO) 관점에서 검증할 필요가 있다.
삼성전자와 서울대 등 대규모 조직에서 전사적 활용 기반이 넓어지고 있다는 오픈AI의 설명도 같은 맥락이다. 생성형 AI는 특정 부서의 파일럿에 머물 때보다, 조직 공통의 계정·보안·데이터 접속·교육 체계를 갖췄을 때 사용량과 활용 업무가 빠르게 늘어난다. 반대로 전사 도입은 개별 직원의 생산성 향상보다 정보보호·컴플라이언스·책임소재라는 경영 이슈를 먼저 풀어야 성공 가능성이 높다.
GPT-6 아스트라, 숫자보다 ‘검증 조건’이 관건
오픈AI는 지난 4일 공개한 GPT-6 아스트라가 컴퓨터 사용, 소프트웨어 개발, 과학·전문업무, 사이버보안 등의 에이전트형 작업을 강화할 모델이라고 제시했다. 특히 ARC-AGI-3에서 99.9점을 기록했다는 성능 수치를 강조했다.
그러나 이 수치는 해석에 주의가 필요하다. ARC Prize가 공개한 결과에 따르면 GPT-6 아스트라는 오픈AI의 내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Provider Adapter harness’ 조건에서 최고 99.9%를 기록했지만, 여러 제공자의 모델을 상대적으로 비교하기 쉬운 표준 하니스(Standard harness)에서는 최고 62.7%였다. 99.9% 결과는 고추론 설정에서 약 1만8817달러의 비용이 든 테스트에서, 표준 조건의 62.7% 결과는 약 2만6098달러의 비용이 든 테스트에서 나왔다.
아스트라의 공식 발표는 제한된 조직부터 적용한 뒤 챗GPT Plus·Pro·Business·Enterprise 고객, API, 마이크로소프트 애저와 AWS 베드록 등으로 접근 범위를 넓히는 방식을 제시했다. 이는 한국 기업이 단일 AI 벤더에 모든 업무를 맡기기보다, 기존 클라우드와 데이터 환경에서 여러 모델·에이전트 서비스를 조합하려는 흐름을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 사업의 승부처는 ‘데이터 주권’
오픈AI의 한국 전략은 모델 성능 경쟁만이 아니라 데이터 저장·추론 위치, 파트너, 보안 체계, 광고 사업을 동시에 묶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오픈AI는 챗GPT 엔터프라이즈·에듀·API 고객이 한국 내 고객 콘텐츠 저장을 지원하는 데이터 레지던시를 이용할 수 있다고 밝히고, 한국에서 모델 추론이 이뤄지는 ‘추론 레지던시’와 국내 데이터센터 구축을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특히 금융·공공·의료·제조 대기업처럼 데이터 반출과 망 분리, 규제 준수가 AI 도입의 핵심 변수인 산업에서는 저장 위치만큼 실제 추론 처리 위치와 운영 주체가 중요하다.
특히 에이전트가 API 없는 레거시 시스템의 화면을 조작하는 수준까지 확장될 경우, 편의성은 커지지만 인간 사용자의 계정 권한을 AI가 사실상 대신 행사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업무 자동화의 마지막 단계는 대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승인권한, 책임소재, 내부통제 설계의 문제라는 점에서다.
오픈AI가 사이버보안 분야에서 ‘데이브레이크’ 파트너를 신설하고 5곳 이상을 선정하겠다고 한 것도 같은 배경으로 풀이된다. AI가 취약점 탐지와 검증, 대응을 돕는 보안 도구가 되는 동시에 공격 자동화 능력을 높일 수 있다는 양면성 때문이다. GPT-6 아스트라의 사이버보안 성능을 둘러싸고도 강한 능력과 안전 통제의 필요성이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오픈AI는 ExploitBench 100% 등의 성능을 내세웠지만, 기업 사용자는 모델의 공격 관련 기능과 접근 권한, 모니터링 체계를 분리해 평가해야 한다.
광고는 새 수익원, 신뢰는 새 리스크
오픈AI는 한국에서 지난 6월 19일부터 무료 이용자와 저가형 ‘Go’ 요금제 성인을 대상으로 챗GPT 광고를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 광고 사업은 기업용 AI 확산과는 다른 축이지만, 챗GPT가 단순 생산성 도구를 넘어 검색·탐색·비교·구매 의사결정의 접점으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챗GPT 광고의 연환산 매출은 출시 약 200일 만에 10억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오픈AI가 밝힌 전체 연환산 매출 400억달러의 약 2.5% 수준이다. 광고는 40개국 이상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2월 9일 무료 사용자 및 Go 요금제 가입자를 대상으로 시범 도입된 뒤 한국에는 6월 들어 출시됐다.
광고 사업은 막대한 AI 인프라 비용을 낮추고 무료 접근성을 유지하는 재원으로 작동할 수 있다. 반면 생성형 AI가 사용자 질문의 맥락을 이해해 답변하는 서비스인 만큼, 검색광고보다 훨씬 엄격한 분리 원칙이 요구된다. 오픈AI는 광고가 답변과 명확히 구분되고 답변 내용에는 영향을 주지 않으며, 광고주에게 이용자 대화 내용이나 개인정보를 주지 않고 비식별 집계 성과만 제공한다고 밝혔다. 건강·정신건강·정치 등 민감한 주제에는 광고를 노출하지 않는다는 방침도 내놨다.
그러나 국내 광고주·이용자·규제기관이 향후 확인할 지점은 방침의 선언보다 실제 작동 방식이다. 추천·답변·광고의 구분이 이용자에게 충분히 명확한지, 광고 노출 기준이 대화 주제를 어느 수준까지 해석하는지, 광고 성과 측정 과정에서 어떤 정보가 수집·처리되는지 등에 대한 투명한 설명이 필요하다.
28배 성장의 다음 시험대
오픈AI 코리아 출범 1년의 성적표는 한국 기업의 AI 수요가 예상보다 빠르게 커지고 있다는 신호다. 챗GPT 엔터프라이즈 28배, 챗GPT 워크·코덱스 14배라는 수치는 기업이 생성형 AI를 전사 업무 인프라로 편입하려는 속도를 보여준다.
향후 경쟁은 “누가 더 많은 기업 계정을 확보하느냐”보다 “누가 민감한 기업 데이터를 안전하게 연결하고, 복잡한 업무를 낮은 총비용으로 끝까지 수행하며, 오류와 책임을 통제할 수 있느냐”에서 갈릴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제조·금융·통신·공공 등 고규제 산업의 비중이 큰 만큼, AI 시장의 승자는 가장 똑똑한 모델만이 아니라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업무 시스템을 제공하는 사업자가 될 공산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