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은주 기자] 생성형 인공지능(AI) 시대의 핵심 기반시설인 데이터센터가 서울의 새로운 도시갈등 요인으로 부상했다. 서울 25개 자치구청장들이 데이터센터 건립 규제를 강화해 달라고 만장일치로 요구한 것은 단순한 ‘개발 반대’라기보다, 수도권에 집중된 전력수요와 주거환경 부담을 현행 인허가 체계가 충분히 걸러내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데이터센터는 클라우드·온라인 금융·전자상거래·동영상 스트리밍·AI 서비스 등을 24시간 가동하는 ‘디지털 경제의 발전소’이자 'AI의 심장'같은 역할이다. 하지만 대형 시설일수록 전력을 대량 소비하고 냉각설비와 비상발전기, 변전설비를 함께 갖춰야 한다. 주민에게는 AI 혁신의 상징이기보다 “전력망 부담과 소음, 화재 위험, 재산가치 하락 우려를 동반한 시설”로 인식되는 이유다.
데이터센터가 뭐길래
데이터센터는 서버·저장장치·네트워크 장비를 집적해 데이터를 저장·처리·전송하는 시설이다. 네이버·카카오·통신사·금융회사·클라우드 기업뿐 아니라 AI 모델을 학습·추론하는 기업에도 사실상 필수적인 인프라다.
과거에는 기업 전산실이나 통신시설 성격이 강했지만, AI 확산은 데이터센터의 물리적 규모와 전력밀도를 크게 바꾸고 있다. 특히 대규모 AI 연산에 쓰이는 GPU 서버는 일반 서버보다 발열량과 전력소비가 높아 냉각·전력 설비까지 대형화하는 추세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소비가 2024년 415TWh로 세계 전력소비의 약 1.5%를 차지했다고 추산했다. IEA의 기준 시나리오에서는 이 수치가 2030년 945TWh로 2배 이상 늘어나며, 세계 전력수요의 약 3%에 못미치는 수준다. 945TWh는 현재 일본 한 나라의 연간 전력소비량보다 약간 많은 규모다.
국내에서도 데이터센터는 이미 ‘희소한 산업시설’이 아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데이터센터는 165개소이며, 이 가운데 약 60.4%가 수도권에 위치한다. 민간 데이터센터만 놓고 보면 수도권 집중 비중은 약 75.3%에 달한다. 2000년 52개였던 국내 데이터센터 수가 24년 만에 3배 이상으로 불어난 셈이다.
구청장들이 직접 나선 이유
서울시구청장협의회는 8월 12일 제203차 정기회의에서 데이터센터 건립 관련 제도개선 건의안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핵심은 세 갈래다. 데이터센터 건축 시 자치구 차원의 건축심의를 의무화하고, 제2·3종 일반주거지역 내 입지를 제한하며, 장기적으로는 준주거·준공업·상업지역에서도 지역 여건을 반영해 자치구가 허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건축법을 고치자는 것이다.
현재 제도에서는 데이터센터가 건축법 시행령상 ‘방송통신시설’의 세부 용도로 분류된다. 2018년 9월 관련 시행령 개정으로 데이터센터가 명문화됐지만, 이는 오히려 광범위한 용도지역에서 입지 가능성을 열어둔 결과가 됐다. 서울시의회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데이터센터는 전용주거지역·제1종 일반주거지역·보전녹지지역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용도지역에 들어설 수 있다.
문제는 데이터센터가 주거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심사하거나 주민의견을 제도적으로 수렴할 장치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건축법 제11조 제4항은 주변 주거·교육환경에 부적합한 일부 건축물에 대해 건축위원회 심의를 거쳐 허가를 반려할 수 있도록 하지만, 데이터센터는 이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법규와 용도지역 기준을 충족하면 지방자치단체가 사업을 거부할 재량이 제한적이라는 뜻이다.
영등포구가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구 면적의 상당 부분이 준공업지역인 데다, 데이터센터 입지가 추가로 몰릴 경우 지역 전력계통 부담이 일반 건축물은 물론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전력공급 여건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구의 판단이다. 영등포구는 관내 추가 데이터센터 신청이 이어질 경우 7개 변전소만으로는 공급 여력이 부족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민원의 본질은 ‘전자파’보다 복합 부담
주민 반발은 흔히 전자파 우려로 표현되지만, 실제 갈등은 전력·소음·비상발전기·교통·경관·화재 불안·행정절차의 불투명성 등이 결합된 복합 문제에 가깝다. 따라서 ‘전자파 위험 여부’ 하나만으로 논란을 설명하면 핵심을 놓칠 수 있다.
특히 주민이 체감하는 부담은 ▲상시 소음과 진동 우려 ▲대규모·상시 전력수요 급증으로 인한 전력망 부담 ▲용수와 냉각 문제 ▲절차적 수용성의 네 가지로 나뉜다.
서울 금천구 독산동 사례는 이 갈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주민 비상대책위원회는 건축허가 취소 등을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냈고, 사업·시공 측은 반대 활동이 공사를 방해한다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이후 법원은 주민을 상대로 제기된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주민의 반대 활동을 정당한 권리 행사 범주로 판단했다. 다만 이는 시설 건축허가의 적법성 자체를 최종 판정한 본안 판단과는 구별해서 봐야 한다.
‘무조건 반대’ 아닌 입지정책 공백
이번 사안의 본질은 데이터센터가 필요하냐, 필요하지 않느냐의 이분법이 아니다. AI·클라우드·디지털 금융·콘텐츠 산업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데이터센터 공급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 실제로 한국과 일본은 현재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수요의 약 5%를 차지하며, 이 비중은 2030년까지 유지될 것으로 IEA는 전망했다.
그러나 데이터센터의 사회적 편익은 전국 단위 혹은 기업 단위로 발생하는 반면, 소음·경관·전력계통 부담 같은 비용은 입지 지역 주민에게 집중되는 구조가 갈등의 뿌리다. 즉 ‘AI의 편익은 모두가 누리지만, 입지의 부담은 동네가 떠안는다’는 인식이 강해질수록 인허가 이후의 민원과 소송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규제의 방향은 ‘선별 허가’
구청장협의회가 요구한 제도개선안은 즉시 효력이 발생하는 규제가 아니다. 서울시가 건축위원회 운영기준을 바꾸거나 도시계획 조례를 개정해야 실제 제도화가 가능하며, 준주거·준공업·상업지역 허가권 확대는 건축법 개정이라는 중앙정부·국회 차원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데이터센터는 AI 시대에 피할 수 없는 인프라다. 그러나 데이터센터가 도심 주거지에 들어서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기업의 서버 건물이 아니라 지역의 전력·환경·주거권을 재편하는 도시계획 시설이 된다. 서울 구청장들의 집단 행동은 ‘AI를 막자’는 선언이라기보다, 디지털 인프라의 입지 비용을 누가 어떤 절차로 부담할 것인가를 묻는 지방정부의 경고장에 가깝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