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현주 기자] 글로벌 증시 변동성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고점 대비 약 37% 조정받은 가운데, 노무라증권이 두 회사의 목표주가를 각각 67만원과 470만원으로 유지했다.
노무라증권의 핵심 논지는 단순하다. AI 인프라 투자가 메모리 수요를 구조적으로 끌어올리는 반면 생산능력 확대는 늦어 공급 부족과 가격 상승이 장기간 이어질 것이며, 현재 주가는 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만 ‘노무라의 예언’이 현실이 되려면 ▲메모리 평균판매가격(ASP)의 고공행진, ▲빅테크의 AI 투자 지속, ▲HBM 중심 제품 경쟁력, ▲환율 부담의 상쇄라는 네 가지 조건이 동시에 충족돼야 한다. 특히 목표주가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2027년 이후에도 메모리 산업이 과거의 전형적 호황·불황 순환을 벗어나 구조적 공급 제약 국면에 들어섰는가’라는 질문이다.
3배 P/E라는 파격적 주장
노무라는 9월 4일 보고서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해 ‘매수’ 의견을 유지하면서 목표주가를 각각 67만원, 470만원으로 제시했다. 두 종목이 최근 고점 대비 약 37% 하락하면서 2027년 예상 주가수익비율(P/E) 평균이 약 3배까지 낮아졌다는 것이 저평가 판단의 출발점이다.
P/E 3배라는 수치는 시장이 두 기업의 이익을 ‘지속 가능한 정상 이익’이 아니라, 조만간 꺾일 수 있는 순환적 호황 이익으로 본다는 뜻에 가깝다. 메모리 반도체는 역사적으로 공급 과잉이 가격 하락과 이익 급감을 부르는 전형적 경기민감 업종이었다. 시장이 낮은 멀티플을 적용하는 데에는 그만한 산업적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무라의 해석은 다르다. 이번 사이클은 스마트폰·PC 중심의 범용 D램 수요 회복이 아니라, AI 데이터센터가 HBM·서버 D램·고용량 기업용 SSD를 동시에 흡수하는 ‘복합 메모리 수요’ 국면이라는 것이다. 공급업체들이 고수익 HBM 생산과 첨단 패키징에 웨이퍼·장비·인력을 우선 배분할수록 범용 D램과 낸드의 여유 생산능력도 줄어드는 구조다.
노무라는 전 세계 메모리 생산능력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려면 4년 이내 월 720만장으로 두 배, 6년 이내 월 1100만장으로 세 배 확대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중국 업체들의 증설도 전체 수급을 뒤집을 수준은 아니며, 공급 부족은 2028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시장 데이터는 ‘강세’ 편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의 최신 전망은 노무라의 큰 방향성에 힘을 실어준다. 트렌드포스는 주요 클라우드서비스사업자(CSP)의 설비투자(CapEx)가 2026년 전년 대비 98%, 2027년 50%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AI 서버와 데이터센터 증설이 본격화하면서 D램과 낸드플래시가 차지하는 CSP 설비투자 비중도 2026년 47%에서 2027년 68%로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AI 생태계의 비용 구조가 GPU뿐 아니라 메모리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음을 뜻한다. AI 가속기 한 개의 성능만으로는 대규모 언어모델의 학습·추론 수요를 처리할 수 없고, HBM과 서버 D램, 데이터 저장용 기업용 SSD가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 메모리 공급사가 가격결정력과 물량 협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논리의 실물 근거다.
가격 추세도 가파르다. 트렌드포스는 서버 D램 계약가격이 2025년 하반기에 누적으로 64% 상승한 데 이어 2026년에는 약 270% 추가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기업용 SSD 가격도 2025년 하반기 약 35% 오른 뒤 2026년 누적 235%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일반 소비자용 메모리보다 AI 데이터센터용 고사양 제품을 중심으로 가격 전가력이 확대되고 있다는 의미다.
트렌드포스는 HBM과 RDIMM의 합산 비중이 2026년 D램 전체 비트 공급 51%라고 밝혔다. 이는 단순히 메모리 수요가 늘어난다는 수준을 넘어, 한정된 공급능력이 서버와 AI용 고부가 제품에 집중되면서 산업 전체의 제품 믹스가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LTA’가 사이클을 바꿀까
노무라가 이번 보고서에서 특히 주목한 대목은 장기공급계약(LTA·Long-Term Agreement)이다. 빅테크 등 주요 고객의 일부사례에서는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최대 현 시세보다 20% 높은 가격 상한을 감수하고 5년 단위 계약을 체결하며, 계약 과정에서 20~30%의 선급금과 강한 위약금 조항까지 적용중으로 전해졌다.
이 구조가 사실상 자리 잡는다면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 공급사에는 큰 변화다. 과거에는 고객사가 메모리 가격 하락기 때 구매를 미루고 재고를 최소화하면서 반도체 업체의 실적 변동성을 증폭시켰다. 반면 장기계약은 일정 물량, 가격 범위, 선급금, 위약금 등을 통해 수요의 불확실성을 일부 공급사에서 고객사로 옮길 수 있다.
시장에서도 LTA 확대 움직임은 확인된다. 트렌드포스는 윈본드의 사례를 인용해 고객들이 2028년 이후 물량까지 포괄하는 LTA를 요청하고 있으며, 일부 고객은 이미 2029~2030년 물량 협상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AI 서버, 데이터센터, 기업용 스토리지, 엣지 AI 수요가 이어지는 가운데 2027년 D램 수급이 2026년보다 더 타이트해질 수 있다는 업계 진단도 소개했다.
그러나 LTA가 곧바로 메모리 산업의 ‘영구적 탈(脫)사이클화’를 의미한다고 보기에는 이르다. 가격 상한은 공급사에는 급격한 가격 하락을 방어하는 장치가 될 수 있지만, 반대로 가격 급등기의 추가 상승폭을 제한할 수 있다. 고객의 AI 투자 수익화가 늦어지거나 데이터센터 투자 계획이 보수적으로 바뀌면, 계약 물량의 실제 집행 속도와 제품 구성이 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즉 LTA는 공급사 실적의 하방 안정성을 높일 수는 있어도, 업황 변동성을 완전히 제거하는 만능장치는 아니다. 계약의 기간, 물량 확약 수준, 가격 연동 방식, 고객의 해지·감액 조건은 공개되지 않은 경우가 많아 계약별 경제성은 외부에서 정확히 검증하기 어렵다.
노무라 예언의 조건
노무라의 목표주가가 현실화될 가능성을 좌우할 변수는 ‘수요가 많다’는 한 문장보다 훨씬 구체적이다.
첫째, 빅테크의 AI 설비투자가 실제 집행으로 이어져야 한다. 트렌드포스가 추정한 2026년 98%, 2027년 50%의 CSP 설비투자 증가 전망은 강세론의 가장 중요한 전제다. 클라우드 기업들이 AI 서비스에서 기대만큼의 수익을 내지 못하거나 자본지출을 조정하면 메모리 조달 계획도 영향을 받는다.
둘째, HBM과 서버 D램의 공급 병목이 해소되지 않아야 한다. 2027년 하반기에는 공정 전환과 신규 생산라인 가동으로 서버 D램·HBM 비트 공급이 27%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수요 증가율보다 공급 증가율이 더 빨라지면 ASP 상승세는 둔화될 수 있다.
셋째, 낸드 시장은 D램·HBM과 분리해 봐야 한다. D램은 AI용 HBM과 서버 D램 수요로 긴축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지만, 낸드는 증설과 최종 수요 둔화에 더 민감하다. 넷째, 원화 강세가 이익을 훼손하는 속도보다 ASP 상승이 빨라야 한다. 노무라는 원화 가치가 10% 오르면 국내 메모리 업체의 영업이익이 약 12% 감소할 수 있다고 추정하면서도, 메모리 가격 상승이 환율 영향을 상쇄할 것으로 봤다.
결론적으로 노무라의 ‘67만전자·470만닉스’는 무모한 숫자 놀음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탄탄한 근거를 갖고 있다. AI 데이터센터가 메모리를 단순 부품이 아니라 병목 자원으로 바꾸고 있고, 가격·물량·장기계약이 동시에 공급사에 유리하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CSP의 투자비 중 메모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2027년 68%로 뛸 수 있다는 트렌드포스의 전망은 이번 호황의 강도를 보여준다.
증권업계 및 자본시장 전문가들은 "노무라의 예언이 ‘이번에도 맞았다’는 평가를 받으려면, 공급 부족의 지속 그 자체보다 삼성전자의 HBM 경쟁력 회복, SK하이닉스의 선도적 수익성 유지, 고객사의 AI 투자 집행, 원화 강세와 증설 부담의 통제가 동시에 확인돼야 한다"면서 "지금의 저평가 논리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지만, 목표주가가 현실이 되는 과정은 메모리 가격표보다 훨씬 복잡한 기술·환율·수요의 방정식이 될 전망이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