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정영 기자]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고(故) 구본무 선대회장의 배우자 김영식 여사 사이의 가족법 분쟁의 1심에서는 구 회장 측이 승소했지만, 약 2조원 규모의 상속재산을 둘러싼 본게임은 이제 서울고법 항소심으로 넘어갔다. 파양 청구 기각은 구 회장의 법적 양자 지위를 유지시킨 판결이지만, 상속재산분할협의서의 효력을 다시 다투는 상속회복청구 항소심의 결론까지 미리 정한 것은 아니다.
파양 1심 기각, 남은 법적 효과
서울가정법원 가사6단독 이은주 판사는 9월 3일 김영식 여사가 구광모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재판상 파양 청구를 기각했다. 이에 따라 구 회장은 구본무 선대회장의 법률상 양자라는 지위를 현시점에서 그대로 유지하게 됐다. 재판부는 법정에서 구체적인 기각 사유를 공개하지 않았고, 김 여사 측은 판결문을 검토한 뒤 항소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다.
김 여사는 2024년 11월 파양 소송을 냈다. 구 회장은 구본무 선대회장의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로, 구본무 선대회장이 외아들을 잃은 뒤인 2004년, 26세 때 양자로 입적됐다. 2018년 구본무 선대회장 별세 후 구 회장이 LG 경영권 승계의 중심에 선 배경에는 이 법률상 친자관계가 있었다.
재판상 파양은 단순히 당사자 간 갈등이 깊다는 사정만으로 인정되는 제도가 아니다. 민법 제905조는 양부모의 학대·유기 또는 양자의 복리 침해, 양자의 심히 부당한 대우, 3년 이상 생사불명, 그 밖에 양친자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 등을 요건으로 둔다. 이 사건에서 김 여사 측은 ‘양부모가 양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경우’인 제2호를 근거로 청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가 구체적 이유를 공개하지 않아 기각의 판단 구조는 판결문 확인 전까지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1심은 김 여사 측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상속소송 2심의 실질 쟁점
파양 사건의 결론과 별개로 상속회복청구 소송은 9월 4일 서울고법 민사8-3부에서 항소심 첫 변론준비기일을 맞았다. 원고는 김영식 여사와 두 딸인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 구연수 씨이며, 이들은 2023년 2월 “상속재산을 다시 분할해야 한다”는 취지로 소송을 제기했다.
분쟁의 출발점은 2018년 작성된 상속재산분할협의서다. 구본무 선대회장이 2018년 5월 별세하면서 남긴 유산은 ㈜LG 지분 11.28%를 포함해 약 2조원 규모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구광모 회장은 ㈜LG 주식 8.76%를 상속받았고, 구연경 대표와 구연수 씨는 각각 2.01%, 0.51%의 ㈜LG 지분을 받았다. 김 여사는 ㈜LG 주식을 상속받지 않았으며, 세 모녀는 금융투자상품·부동산·미술품 등을 포함해 약 5000억원 규모의 재산을 상속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세 모녀 측의 논리는 상속분할 협의가 착오 또는 기망에 기초했으므로 효력이 없거나 취소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법정상속분, 즉 배우자 1.5 대 자녀 각 1의 비율을 기준으로 유산을 다시 분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단순한 추가 금전배분 문제가 아니라, ㈜LG 지분의 배분과 LG 지배구조의 정당성 문제를 함께 겨냥한 청구다.
반면 구 회장 측은 구본무 선대회장이 차기 회장과 경영재산 승계 방향에 관한 뜻을 남겼고, 그에 맞춰 가족 간 합의와 구체적인 상속 협의가 이뤄졌다고 반박해 왔다. 항소심의 핵심도 결국 ▲상속재산분할협의서가 유효하게 성립했는지 ▲세 모녀가 충분한 정보와 자발적 의사에 따라 협의에 참여했는지 ▲유지 메모 또는 유언 취지에 관한 설명이 기망에 해당하는지 ▲그 기망이 인정되더라도 협의 자체를 무효 또는 취소할 정도의 인과관계가 있는지로 압축될 전망이다.
1심이 본 ‘합의의 유효성’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11부는 지난 2월 상속회복청구 1심에서 세 모녀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재판부는 상속재산분할협의서가 유효하게 작성됐으며, 상속 협의 과정에서 구 회장 측의 기망행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특히 1심은 세 모녀가 재무관리팀으로부터 상속 상황을 여러 차례 보고받고 협의 과정에 참여했으며, 원고 측 요청에 따라 협의서 내용이 일부 수정된 점을 주목했다. 이는 세 모녀가 단순히 일방적으로 통보받았다는 수준을 넘어, 각 상속재산의 배분에 대해 구체적인 의사를 표시하고 협의에 관여했다는 판단의 근거가 됐다.
세 모녀 측이 제기한 “경영재산은 모두 구 회장에게 상속한다는 취지의 유언장 또는 유지 메모가 존재한다고 속였다”는 주장도 1심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관련 증언 등을 바탕으로 구본무 선대회장이 경영재산 승계에 관한 뜻을 남겼고, 이를 기록한 메모가 존재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더욱이 재판부는 가정적으로 일부 설명에 문제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세 모녀가 개별 상속재산에 관해 구체적 의사표시를 한 이상 그것이 상속분할 협의 전체를 무효로 만들 정도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이 판결은 항소심에서 구광모 회장 측의 가장 강한 방어막이 된다. 항소심 재판부가 1심의 사실인정과 증거평가를 뒤집으려면, 세 모녀 측은 단순한 유산 배분의 불균형이 아니라 협의의 본질적 전제가 허위였거나 자유로운 의사결정이 침해됐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입증해야 한다.
‘가족관계’와 ‘재산분할’은 별개
파양 소송과 상속회복청구는 사실관계가 연결돼 있지만, 법적으로는 서로 다른 사건이다. 파양이 기각됐다고 해서 상속분할협의서가 자동으로 유효하다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상속소송에서 세 모녀가 일부라도 이긴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양친자 관계를 해소할 법정 사유가 곧바로 인정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두 사건이 공유하는 맥락은 뚜렷하다. 파양 기각으로 구 회장은 구본무 선대회장의 법률상 양자 지위를 유지하게 됐고, 이는 2018년 상속 당시 구 회장이 상속인으로 참여한 법적 출발점을 안정시키는 효과를 낸다. 하지만 상속 항소심의 직접 대상은 입양의 유효성 자체가 아니라, 상속인들이 2018년 체결한 재산분할협의의 유효성과 기망 여부다. 따라서 상속 2심의 관건은 “구 회장이 양자인가”가 아니라 “상속인들이 어떤 정보와 의사에 따라 어떤 합의를 했는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경영권보다 중요한 것은 ‘협의서의 신뢰’
이번 분쟁은 재벌가의 상속 다툼을 넘어, 대기업 승계에서 가족합의서와 비공개 의사결정 기록이 갖는 법적 무게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구본무 선대회장이 남긴 ㈜LG 지분 11.28% 가운데 구 회장이 상속받은 몫은 8.76%다. 이 지분은 구 회장이 최대주주 지위를 토대로 그룹 지배력을 구축하는 데 핵심적인 기반이 됐다.
그러나 항소심이 재분할 필요성을 인정할 경우의 파급력은 단순히 지분율 몇 %포인트의 문제가 아니다. 상속재산분할협의서 전반의 효력, 당시 상속 절차에 참여한 재무관리 조직의 역할, 오너 일가 내부의 의사소통 기록과 경영승계 관행이 법정 검증대에 올라갈 수 있다. 반대로 1심이 유지되면, 2018년 합의의 법적 안정성은 한층 강화되고 LG 지배구조를 둘러싼 불확실성도 상당 부분 해소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법률적 전망일 뿐, 항소심 재판부의 실제 판단을 예단할 수는 없다.
결국 LG가 상속분쟁의 2라운드는 ‘전통적 장자승계’나 도덕적 당위의 경쟁이 아니라, 2018년 상속분할협의서가 자유롭고 충분한 정보에 기초한 유효한 합의였는지를 가르는 증거의 싸움이 될 전망이다. 파양 1심 기각으로 가족관계의 법적 틀은 유지됐지만, 약 2조원 상속재산과 ㈜LG 핵심 지분의 최종 귀속을 둘러싼 법적 결론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