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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항공

[The Numbers] K9, 스페인에 ‘설계권’ 심고 서유럽 성문 열다…한화 몫 6600억, 사업전체 7조 '잭팟'

 

[뉴스스페이스=이승원 기자]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가 스페인 방산시장에 진입했다. 다만 이번 계약의 본질은 단순한 완제품 수출이 아니다. 스페인 현지 기업이 차체 설계·생산과 임무·통신체계 통합을 맡는 고강도 현지화 모델을 앞세워, 진입장벽이 높기로 유명한 서유럽 방산시장을 뚫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8월 31일 스페인 방산기업 인드라 시스템스(Indra Sistemas)와 K9 자주포 및 관련 장비 수출 이행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계약 금액과 납기, 수량은 상대방의 비밀유지 요청으로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한국거래소의 수주 공시 기준인 최근 매출액의 2.5% 이상을 적용하면, 계약 규모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2025년 연결 매출 26조7029억원을 기준으로 최소 약 6676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시장 일각에서 ‘6600억원대 잭팟’이라고 부르는 근거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계약 직후 계약금 성격의 선수금으로 계약액의 20%를 받고, 올해 말까지 5%를 추가 수령하기로 했다. 최소 공시 기준 금액으로만 계산해도 연내 유입되는 선수금은 약 1669억원 이상이다. 다만 이는 계약액이 정확히 2.5%라는 가정에 따른 최저 추정치일 뿐이며, 실제 계약 총액·매출 인식 시점·납품 기간은 공개되지 않아 확정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

 

‘6600억’은 한화 몫, 사업 전체는 7조원대


이번 계약을 스페인 육군의 전체 궤도형 자주포 현대화 사업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스페인 정부가 추진하는 궤도형 자주포 사업 예산은 45억5400만유로로, 약 53억달러 규모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직접 공시한 계약은 이 거대 사업에서 K9 기반 플랫폼과 관련 장비를 공급하는 일부 계약으로 해석된다.

 

인드라는 올해 3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구속력 있는 협력협약을 체결하면서 K9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스페인형 궤도 자주포 체계 개발 방침을 공식화했다. 계획 물량은 총 280대로, 세부적으로는 궤도형 자주포 128대, 탄약운반차 120대, 지휘통제차량 11대, 구난차량 21대다.

 

서유럽 첫 진입의 비결은 ‘현지 생산’과 ‘기술주권’


K9은 이미 폴란드·노르웨이·핀란드·에스토니아·루마니아 등 유럽 북부·동부 및 중부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에 공급돼 왔다. 그러나 스페인은 K9의 첫 서유럽 시장 진입 사례다. 이번 계약으로 K9 운용 또는 도입 국가는 11개국으로 늘어나게 됐다.

 

성공의 핵심은 성능만이 아니라 산업협력 구조에 있다. 스페인은 무기를 사 오는 데 그치지 않고, 자국 내에서 설계·제조·정비 역량을 축적하는 ‘국방 기술주권’을 요구했다. 인드라는 북부 히혼(Gijón) 공장에서 차량 차체를 제조하고, 차량 운용을 총괄하는 임무체계, 360도 상황인식체계, 전장관리체계(BMS), 통신체계를 통합할 계획이다. 특히 인드라는 차체에 대한 설계 권한(design authority)을 갖는다고 밝혔다.

 

인드라는 이 사업을 위해 히혼 공장 설비와 신규 통합 공장 구축에 1억3000만유로를 투자할 계획이다. 회사 측은 이 사업이 직접고용 500명, 간접·유발고용 1000명을 창출할 것으로 예상했다. 유럽 각국 정부가 방산 조달에서 가격과 사거리뿐 아니라 일자리, 공급망, 현지 정비 능력, 수출통제, 기술자립까지 함께 평가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한화가 ‘K9 완제품 판매’에서 ‘현지 산업 생태계 동반 구축’으로 제안 방식을 바꾼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화 입장에서는 일정 수준의 기술 이전과 현지 생산을 감수하는 선택이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양보라기보다 서유럽 대형 조달시장의 룰에 맞춘 진입 전략에 가깝다. 현지 파트너가 차체 및 전자체계 분야의 주도권을 갖고, 한화는 검증된 포병 플랫폼과 시스템 통합 경험을 제공하는 역할 분담이다. 인드라 역시 한화와의 협력을 통해 개발되는 최신 기술을 한화 차량에 적용할 수 있는 협력 가능성을 언급했다.

 

‘대수술급 설계 변경’…K9의 약점이 아닌 확장성


이번 스페인형 자주포 사업은 기존 K9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방식이 아니다. 인드라가 차체를 설계·생산하고, 스페인산 임무체계·전장관리체계·통신체계·지휘소 체계를 통합한다. 결과적으로 K9은 완성 무기체계라기보다, 스페인군 요구조건에 맞춰 재설계할 수 있는 기본 플랫폼으로 채택된 셈이다.

 

이 과정은 기술·사업 측면에서 적지 않은 부담을 수반한다. 차체 설계권과 생산기술, 전자장비 통합, 유지·보수 체계, 사이버보안, NATO 상호운용성, 수출통제 조건 등을 조율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술 이전의 세부 범위, 핵심 지식재산권 귀속, 제3국 수출 권한, 실제 납품 물량 및 일정은 아직 공개 자료만으로 확정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K9의 플랫폼 경쟁력은 분명하다. 한화의 K9·K10 공식 홍보자료에 따르면 K9은 155㎜·52구경장 포를 탑재했으며, 15초 이내 3발의 급속사격, 분당 6~8발의 최대 사격률, 1시간 기준 분당 2~3발의 지속사격 능력을 제시한다. K307 고폭탄 기준 사거리는 40㎞ 이상으로 소개된다. 단순히 포탄을 멀리 보내는 무기가 아니라, 짧은 시간에 여러 발을 다른 궤적으로 발사해 동시에 목표에 도달시키는 다탄동시탄착(MRSI) 운용, 신속한 진지 전환, 자동화된 탄약 운용을 포함한 체계 경쟁력이 강점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은 장거리 화력과 탄약 보급, 드론·정찰 자산과 연동되는 전장관리 능력의 중요성을 재평가하고 있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Military Balance를 인용한 Defense News에 따르면 유럽 국가들은 2022년 5월부터 2024년 7월까지 로켓·관포병 전력에 150억달러 이상을 지출했다. 스페인이 궤도형 자주포 외에도 차륜형 자주포 부문에 29억유로를 별도 배정한 것도 이 같은 재무장 흐름과 맞물린다.

 

‘수출 대수’보다 중요한 유럽 공급망 진입


K9의 스페인 진출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11번째 고객국’을 추가한 수주 성과를 넘어선다. 폴란드처럼 대량 도입이 가능한 동유럽 시장에서 쌓은 실적을 발판으로, 서유럽의 기술주권·현지조달 요구까지 충족할 수 있음을 증명한 시험대였다는 점에서다.

 

다만 장밋빛 해석은 경계해야 한다. 한화의 실제 매출 규모와 납품 일정은 비공개이고, 스페인형 플랫폼의 개발·양산 과정에서 현지화 비용, 기술이전 범위, 품질보증, 원가 배분, 지식재산권 관리 등 변수가 남아 있다. 스페인 정부의 전체 45억5400만유로 사업예산을 한화의 수출액으로 보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그럼에도 이번 계약이 던지는 신호는 선명하다. 유럽 방산시장에서 이제 한국 기업은 ‘빠른 납기와 가격 경쟁력’을 제시하는 공급자를 넘어, 현지 산업기반·고용·설계역량·장기 유지체계를 함께 설계하는 파트너가 돼야 한다. 한화의 K9은 스페인에서 포신을 판매한 것이 아니라, 유럽형 방산 협력의 새로운 입장권을 따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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