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편집자주> 유튜브, 인스타 등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들이 '협찬을 받지 않았다', '광고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보이기 위해 "내 돈 주고 내가 샀다"라는 뜻의 '내돈내산'이라는 말이 생겼다. 비슷한 말로 "내가 궁금해서 결국 내가 정리했다"는 의미의 '내궁내정'이라고 이 기획코너를 명명한다. 우리 일상속에서 자주 접하는 소소한 얘기거리, 궁금증, 호기심, 용어 등에 대해 정리해보는 코너를 기획했다.
비가 내린 직후 공기 속에 번지는 특유의 흙내음은, 엄밀히 말해 빗물 자체의 냄새가 아니다. 건조한 기간 토양과 암석 표면에 축적된 식물성 기름, 토양 미생물이 만든 휘발성 물질, 그리고 빗방울이 땅을 때리며 만들어내는 미세 에어로졸이 결합해 완성되는 후각의 사건이다. 그 중심에 있는 분자가 바로 ‘지오스민(geosmin)’이다.
지오스민은 그리스어로 땅을 뜻하는 ‘geo’와 냄새를 뜻하는 ‘osme’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화학식은 12 22 인 세스퀴테르펜 계열 휘발성 유기화합물로, 축축한 흙의 향뿐 아니라 붉은 비트의 흙맛, 일부 민물고기의 흙내, 물에서 나는 곰팡이·흙 냄새에도 관여한다.
인간은 이 물질을 극도로 낮은 농도에서도 포착한다. 다만 “인간이 1조분의 5를 감지한다”는 널리 유통되는 표현은 조건을 명시하지 않은 단순화된 문장이다. 실험 조건과 매질, 개인별 후각 차이에 따라 역치는 달라진다. 최근 연구 검토에서는 물속 지오스민의 인간 후각 역치가 대체로 리터당 4~10나노그램(ng/L), 즉 피코몰 농도 범위로 제시됐다. 이는 물 1리터에 수 나노그램밖에 없는 농도이며, 최근 검토 논문은 이를 약 “올림픽 규격 수영장 200개 분량의 물에 티스푼 하나를 푼 것”에 비유했다.
빗방울이 만드는 ‘향기의 발사대’
‘비 냄새’의 과학적 이름은 페트리코르(petrichor)다. 이 단어는 호주의 연구자 이사벨 조이 베어(Isabel Joy Bear)와 리처드 G. 토머스(Richard G. Thomas)가 1964년 3월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한 논문에서 처음 제시했다. 그들은 건조한 기간 식물이 분비한 기름 성분이 점토질 토양과 다공성 암석 표면에 흡착됐다가, 비나 습기에 노출되면서 공기 중으로 방출되는 현상을 기술했다. ‘돌’을 뜻하는 그리스어 ‘petra’와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의 혈관을 흐르는 액체를 뜻하는 ‘ichor’를 결합한 말이다.
하지만 페트리코르는 지오스민 하나로 완성되지 않는다. 향을 하나의 악기 소리가 아니라 여러 성분이 겹친 오케스트라로 이해하는 편이 정확하다. 오존 냄새는 때에 따라 비가 오기 전이나 뇌우 직후 감지될 수 있으나, 마른 흙에 비가 처음 내릴 때 느껴지는 전형적 페트리코르와는 구별해야 한다.
2015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진은 고속카메라 관찰을 통해 빗방울이 다공성 토양 표면에 충돌할 때의 물리적 과정을 포착했다. 빗방울이 토양에 닿는 순간 그 아래에 작은 공기방울들이 갇히고, 이 기포는 물방울 내부를 통과해 표면으로 올라온 뒤 터진다. 그 순간 토양 표면의 화학물질과 미생물, 미세 입자를 담은 에어로졸이 공기 중으로 방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런 현상이 향기 성분뿐 아니라 토양의 미생물·화학물질 이동에도 관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중요한 조건은 ‘비의 세기’와 ‘토양의 상태’다. 보슬비나 적당한 강도의 비가 오랫동안 메마른 다공성 토양에 떨어질 때, 공기방울 생성과 에어로졸 분산이 활발해질 수 있다. 반대로 이미 충분히 젖은 땅이나 거센 폭우에서는 첫비 뒤의 흙내가 상대적으로 덜 두드러질 수 있다. 따라서 “비가 많이 올수록 비 냄새가 강하다”는 직관은 항상 맞지 않는다. MIT 연구는 특히 토양의 다공성, 표면 조건, 물방울 충돌 속도가 에어로졸 방출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줬다.
흙냄새 한 분자의 생존전략
지오스민은 단순한 ‘자연의 방향제’가 아니다. 미생물이 자신의 생애주기와 번식 전략에 연결해 내보내는 화학 신호일 수 있다. Streptomyces coelicolor를 대상으로 한 생합성 연구에 따르면 지오스민은 파르네실 이인산(FPP)을 출발물질로 하며, 하나의 이기능성 효소가 중간체인 저마크라디에놀 등을 거쳐 지오스민 형성을 촉진한다. 이 과정에는 마그네슘 이온이 관여하며, 미생물이 만든 효소가 탄소 골격을 재배열하는 복잡한 반응이 포함된다.
사람에게 지오스민은 장마철 창문을 열었을 때의 향수, 고향의 텃밭, 첫비의 기억을 소환하는 냄새일 수 있다. 그러나 미생물의 시점에서는 ‘토양 속에 포자를 퍼뜨릴 운반자를 호출하는 신호’에 가깝다. 인간이 시적으로 해석하는 냄새가 다른 생물에게는 생존·번식의 언어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점에서 페트리코르는 인간 중심의 자연 감상이 아니라, 토양 생태계의 보이지 않는 통신망을 후각으로 우연히 엿듣는 경험이다. 비가 땅에 떨어지는 몇 초 사이 토양 표면에서는 물리학이 작동한다. 기포가 생기고 터지며 미세 에어로졸을 쏘아 올린다. 그 에어로졸에는 화학이 실린다. 그리고 그 화학에는 미생물의 생태 전략이 기록돼 있다. 인간은 그 복합 신호를 ‘비 냄새’라는 감정의 언어로 번역한다.
‘향수’와 ‘경보’ 사이의 냄새
지오스민은 문화적으로는 낭만의 냄새지만, 산업적으로는 관리 대상이다. 수돗물·저수지·양식장·식품에서는 아주 낮은 농도에도 소비자가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관리 관점에서 지오스민은 독성 여부와 별개로 신뢰의 문제를 낳는다. 소비자는 수질검사표의 수치보다 먼저 코로 이상을 감지하고, 그 감각은 종종 ‘물이 안전한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비 냄새는 그래서 한 가지 의미로 환원되지 않는다. 그것은 건조한 땅이 물을 만났다는 기상학적 신호이고, 미생물이 만든 분자가 공기 중으로 이탈하는 화학적 사건이며, 토양 절지동물의 이동을 자극하는 생태적 메시지다. 동시에 도시의 인간에게는 아스팔트와 화단, 학교 운동장과 골목, 어린 시절의 계절감을 불러오는 문화적 기억 장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