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정영 기자] 북한에서 밀반출된 스마트폰이 겉보기에 일반 휴대폰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사용자의 거의 모든 행동을 감시하도록 설계된 국가 감시 도구라는 분석이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8월 28일(현지시간) 북한에서 반출된 스마트폰을 직접 분석한 탐사 보도를 공개했다. 이 기기는 통화·문자·결제 등 일상 기능을 제공하면서도 사용자가 입력하고 열람하는 행동을 국가가 추적·통제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의 모바일 확산은 디지털 개방의 신호라기보다, 폐쇄형 네트워크와 단말기 수준의 검열을 결합한 ‘통제된 디지털화’의 확장으로 해석된다.
WSJ가 들여다본 ‘해양 701’
WSJ는 28일(현지시간) 윤다슬(Dasl Yoon) 기자가 탈북한 전 북한 군인이 북한에서 밀반출된 스마트폰을 함께 살펴보는 5분 2초 분량의 영상 보도를 공개했다. 분석 대상은 2023년 생산된 북한산 중급형 스마트폰 ‘해양 701’로 알려졌으며, 겉모습과 기본 운영 방식은 안드로이드 기반 일반 스마트폰과 유사하다. 그러나 WSJ는 기기 내부를 확인한 결과, "북한 정권이 사용자가 입력하는 것과 보는 것을 감시할 수 있는 기능이 탑재돼 있다"고 보도했다.
기기는 음성통화와 문자, 각종 앱 실행 등 스마트폰의 기본 기능을 제공한다. 다만 글로벌 인터넷에는 연결되지 않는다. 와이파이 메뉴가 존재해도 개방형 인터넷 접속은 차단되고, 승인된 국내망에서만 데이터 이용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북한의 정보통신 환경이 기술적으로 낙후돼서가 아니라, 외부 정보 유입을 원천적으로 제한하기 위해 단말기와 네트워크를 동시에 통제하는 구조임을 보여준다.
화면을 기록하고, 단어를 바꾸다
가장 주목할 대목은 ‘화면이력’ 기능이다. 해양 701은 사용 중인 화면을 자동으로 캡처해 별도 폴더에 저장하며, 사용자가 이 기능을 끄거나 저장된 화면을 삭제하기 어렵도록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 기능이 실제로 몇 분 주기로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는 WSJ 원문 공개 내용만으로 독립적인 기술 검증이 충분하지 않다. 따라서 “5분마다 자동 캡처한다”는 구체적 주기는 추가적인 포렌식 분석 또는 원자료 공개가 뒷받침되기 전까지 확정적 사실로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사용 흔적을 단말기 내부에 남기고 이용자가 이를 임의로 제거하기 어렵게 하는 구조 자체는 복수 보도로 확인된다.
문자 입력 단계에서 작동하는 자동 검열도 확인됐다. ‘대한민국’을 입력하면 ‘(금지어)’로 치환되고, ‘김정은’이라는 이름은 자동으로 굵은 글씨로 표시된다. 한국에서 일상적으로 쓰이는 ‘남친’은 북한식 표준어 표현인 ‘남자친구’로 바뀐다. 이는 사후 단속이나 콘텐츠 차단을 넘어, 사용자의 언어 습관 자체를 단말기 소프트웨어에서 실시간 교정·통제하는 방식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이러한 기능은 국가가 단지 불법 콘텐츠의 유통 여부만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어떤 표현을 쓰고 어떤 콘텐츠를 보며 어떤 앱을 이용했는지까지 추적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을 제공한다. 스마트폰이 통신기기인 동시에 개인별 ‘행동 로그’를 축적하는 행정·통제 장치로 전환된 셈이다. 다만 해당 기록이 어떤 경로와 주기로 당국 서버에 전송되는지, 모든 단말기에서 동일하게 작동하는지 여부는 공개된 보도만으로는 알 수 없다.
“디지털 편의”와 “디지털 울타리”
북한 스마트폰은 단순한 감시 장치에 그치지 않는다. 주민의 일상 생활을 모바일 기반으로 끌어들이는 플랫폼이기도 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7월 북한의 최신 스마트폰 2대를 입수해 분석한 뒤, 주민들이 스마트폰으로 은행 업무를 보고, 미용 관련 영상을 시청하고, 생리주기 관리 앱을 이용하는 등 생활 서비스의 디지털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WP의 분석은 북한 당국이 주민에게 일정 수준의 디지털 편익을 제공하는 대신 그 활동을 국가가 통제하는 폐쇄형 시스템 안에 가두는 전략을 취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 38노스(38 North)의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에서 유통되는 스마트폰 종류는 2년 사이 두 배 이상 늘었고, 최소 10개 기업이 스마트폰과 피처폰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었다. 38노스는 당시 북한 인구를 약 2,400만명으로 보고, 이동통신 가입자 수를 약 650만~700만건으로 추정했다. 이는 약 120만대로 추정된 유선전화 수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다만 이 수치는 ‘스마트폰 사용자 수’가 아니라 이동통신 가입 건수 추정치이며, 복수 회선 보유나 피처폰 가입자를 포함할 가능성도 있다.
38노스는 2024년 당시 북한 시장에서 판매된 스마트폰 55개 모델을 목록화했다. 새 단말기 가운데에는 다중 메가픽셀 카메라와 중급형 수준의 사양을 갖춘 제품도 있었고, 일부 업체는 화면 크기와 사양을 달리한 복수 모델을 내놓는 방식까지 도입했다. 예컨대 화원(Hwawon) 브랜드는 500달러와 750달러 제품을, 진달래 6은 ‘6’, ‘6-1’, ‘6A’ 등 세 가지 모델을 제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시장의 외형적 다변화가 기술 자립이나 정보 자유화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38노스는 북한에서 판매되는 휴대전화 하드웨어가 북한산이 아니라 중국 기업에 의존하고 있으며, 북한 당국은 현지화한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에 승인되지 않은 앱 설치 제한, 비인가 동영상·전자책 재생 차단, 해외 전화·문자 및 인터넷 접속 차단 기능을 탑재한다고 설명했다.
4G 확대에도 ‘인터넷 없는 스마트폰’
북한은 2008년 말 공중 이동통신을 재가동한 뒤 오랫동안 3G망에 의존해 왔으며, 38노스는 2023년 4G 서비스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 국경 봉쇄가 완화된 뒤 새 스마트폰과 신규 브랜드가 등장했고, 평양의 전시회에서는 4G 단말기도 확인됐다. 더 빠른 데이터 전송 속도는 모바일 결제, 콘텐츠 소비, 생활형 애플리케이션의 이용 확대를 촉진할 수 있다.
그러나 4G는 북한 주민의 세계 인터넷 접근권 확대와는 다른 문제다. 북한식 모바일 고도화는 대역폭과 서비스 종류를 늘리는 방향으로 진행되지만, 연결의 목적지와 콘텐츠의 범위는 국가가 승인한 내부망으로 제한된다. 38노스는 모든 북한 스마트폰이 인터넷 접속과 국제 전화·문자 수발신을 차단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구조에서 스마트폰은 주민의 시간과 소비, 금융 거래, 여가 활동을 디지털 공간으로 옮기는 수단인 동시에, 국가가 그 활동을 보다 촘촘히 규율할 수 있는 인프라가 된다. ‘인터넷 없는 스마트폰’은 기술적으로 모순처럼 들리지만, 북한 체제에서는 오히려 핵심 통치 모델이다. 디지털 서비스는 제공하되, 디지털 주권은 개인이 아니라 국가가 독점하는 방식이다.
북한분야 한 전문가는 "북한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 지표는 ‘개방’의 지표가 아니라 ‘통제 가능한 연결성’의 확대 지표에 가깝다. 최소 10개 회사와 55개 모델, 650만~700만건의 이동통신 가입이라는 숫자는 북한이 모바일 기술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라며 "동시에 외부 인터넷·비인가 앱·외국 콘텐츠를 차단하고 단말기 내부에서 언어와 화면을 관리하는 소프트웨어는, 북한이 주민의 디지털 일상까지 국가 통치의 영역으로 편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