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현주 기자]
<편집자주> 지금 이순간에도 강남으로의 이주를 꿈꾸며 ‘강남 환상’ 혹은 '강남의 찐가치'에 사로잡혀 있는 비강남 사람들에게 진실된 모습을 알리고자 한다. 때론 강남을 우상화하고, 때론 강남을 비하하는 것처럼 느껴질 지도 모르지만, 언젠가 강남의 가치가 급등해 비자를 받아야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 '강남VISA'라 명명한다. 나아가 강남과 강북간의 지역디바이드를 극복하는데 일조하고 이해의 폭을 넓혀 허상도 파헤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 개인의 사적인 의견이니 오해없이 그냥 가볍게 즐겨주길 바란다.
샤넬이 이상한(?) 신발을 만들었다. 사진 속 신발에는 우리가 신발이라고 부르는 핵심 부품 상당수가 보이지 않는다. 앞코도, 발바닥을 감싸는 갑피도, 바닥 밑창도 없다.
남은 것은 발뒤꿈치를 받치는 작은 힐 캡과 발목을 묶는 가느다란 스트랩이다. 정면에서 보면 맨발이고, 측면에서 보면 뒤꿈치 장식이며, 이름을 붙이자면 ‘신발 없는 신발’에 가깝다. 즉 이번에 선보인 물건은 “발을 감싸는 신발”이 아니라 “발이 신발처럼 보이게 하는 최소한의 장치”인 셈이다.
SNS 반응 역시 “이건 신발도 아니다”, “불편함은 커지고 기능은 줄었다”는 농담과 비판으로 관심이 쏠렸다. 샤넬의 힐 캡이 화제가 된 이유 역시 ‘예쁘다’ 혹은 ‘못생겼다’의 이분법보다, 디지털 환경에서 논쟁성을 갖기 때문이다. 한 장의 사진만으로도 “뒤꿈치만 가리는 280만원대 신발”이라는 이야기 구조가 완성된다. 제품 설명보다 밈(meme)이 먼저 작동하는 셈이다.
샤넬은 왜 신발의 80%를 지웠나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검은 가죽 소재의 작은 뒤꿈치 캡과 발등·발목을 감싸는 가는 끈으로 구성됐다. 발가락, 앞꿈치, 아치, 밑창의 대다수는 그대로 노출된다. 보통 신발을 구성하는 갑피·중창·밑창·뒤축 중 ‘뒤꿈치 구조’만 남긴 셈이다. 샤넬이 내부적으로 사용한 표현은 ‘barefoot heel cap(맨발용 뒤꿈치 캡)’이다.
이 제품은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티유 블라지가 2026년 4월 28일 프랑스 비아리츠에서 공개한 CHANEL Cruise 2026/27 컬렉션의 런웨이 슈즈다. 미국 Vogue는 이 디자인을 ‘barefoot sandals’ 또는 ‘non-shoe’로 소개했고, Complex는 “로고가 새겨진 블록 힐과 두 개의 발목 스트랩만 남기고 밑창·토박스·아치 지지대를 없앤 구조”라고 설명했다.
런웨이 공개 이후 약 4개월 뒤인 2026년 8월 20일, 배우 마가렛 퀄리가 런던 오데온 럭스 레스터 스퀘어에서 열린 영화 The Dog Stars 월드 프리미어에 이 슈즈를 착용하며 논쟁이 재점화됐다. Vogue는 샤넬의 검은색 드레스와 함께 맨발 샌들을 선보였다고 보도했다. Complex도 퀄리를 이 신발을 공개적으로 착용한 첫 셀러브리티로 소개했다.
SNS와 숏폼 영상에서는 “샤넬이 새로 공개한 신발, 가격은 약 280만원”이라는 식의 자막이 퍼지고 있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 이 수치를 샤넬의 공식 가격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현재까지 공개 자료에 따르면, 이 제품은 완제품 신발이라기보다 컬렉션의 미학과 주목도를 극대화하기 위한 패션 오브제 수준이다.
물론 비교 기준은 있다. 샤넬 미국 공식 웹사이트에서 크루즈 2025/26 컬렉션의 블랙 페이턴트 카프스킨 샌들은 1500달러, 램스킨·실크 샌들은 1750달러로 제시됐다.
왜 하필 뒤꿈치?…신발인가, 뒤꿈치 주얼리인가
샤넬의 이번 선택은 이 브랜드의 가장 강력한 신발 유산인 ‘투톤 캡토(cap-toe)’를 뒤집은 디자인 실험이다. 가브리엘 샤넬은 1957년 앞코에 대비색을 배치한 슬링백 슈즈를 선보였고, 이것은 발을 작아 보이게 하고 다리를 길어 보이게 하는 샤넬의 대표적 시각 언어가 됐다.
그런데 마티유 블라지의 크루즈 2027 디자인은 샤넬의 전통적인 ‘앞코 캡’을 제거하고, 오히려 뒤꿈치에 캡을 씌웠다. 신발의 역사에서 앞코는 보호·장식·실루엣의 중심이었지만, 이 제품은 발의 반대편에 브랜드 로고와 구조를 몰아넣는다. 요약하면 샤넬은 자신을 상징해 온 “앞코의 검정”을 “뒤꿈치의 검정”으로 이동시킨 셈이다.
이 전환은 단순한 기괴함을 넘어, 클래식의 해체와 재조립이라는 패션 문법이다. ELLE는 이 제품을 “의도적으로 미완성인 신발”로 평가하며,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타비 슈즈, 더 로우의 플립플롭 열풍, 발가락을 분리한 비브람 파이브핑거스와 발렌시아가 협업 등 최근의 ‘기이한 신발’ 계보 속에 위치시켰다.
샤넬 역시 이 물건을 단순히 샌들이라고 부르기보다 ‘힐 주얼리(heel jewellery)’로 접근하는 듯하다. 마거릿 퀄리의 레드카펫 착용을 다룬 해외 보도에서 샤넬은 "작은 가죽 힐 캡, 인터로킹 CC 장식, 앞쪽에서 묶는 두 개의 가죽 끈"으로 이 물건을 설명했다.
이 명명은 매우 중요하다. 신발은 대체로 걷기 위한 물건이고, 주얼리는 몸을 장식하고 사회적 신호를 보내기 위한 물건이다. 샤넬의 힐 캡은 전자의 기능을 최소화하고 후자의 기능을 극대화한다. 발을 보호하는 면적은 줄었지만, 발목과 뒤꿈치가 보내는 브랜드 신호는 오히려 강해졌다.
물질의 양과 상징가치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럭셔리 산업의 역설도 여기서 드러난다. 가죽과 밑창이 적어서 저렴해야 한다는 직관은 브랜드·희소성·디자인 저작권·상징자본이 가격을 좌우하는 럭셔리 시장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것을 신발이라고 불러도 되는가”라는 질문 자체가 제품의 마케팅 자산이 된다.
맨발의 자유와 불편함의 정치학
이 디자인은 해변 도시 비아리츠라는 장소성과 맞물려 있다. 비아리츠는 가브리엘 샤넬이 1915년 첫 쿠튀르 하우스를 연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샤넬 크루즈 2027 컬렉션은 바다와 해변, 휴양지의 해방감을 주요 모티프로 삼았다.
샤넬 공식 사이트가 공개한 2026 코코 비치 컬렉션 역시 셸 레이스, 실크 드레스, 저지 수영복, 멀티컬러 스트라이프 니트, 노티컬 무드 주얼리 등을 통해 “블랙 샌드 비치 위의 샤넬”을 제시한다. 힐 캡은 이 해변성의 극단이다. 구두를 벗고 모래를 밟는 감각을 유지하면서도, 발뒤꿈치에는 샤넬의 표식을 남기는 방식이다.
철학적으로 보면 이는 ‘부재를 통한 존재’의 상품화다. 신발의 대부분이 사라졌기에 남은 뒤꿈치 캡은 더 눈에 띈다. 발을 덮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발에 시선이 집중되고, 브랜드는 소재의 면적이 아니라 결핍 자체를 디자인한다. 미니멀리즘이 보통 형태를 줄여 기능의 본질에 다가가려 했다면, 이 제품은 기능을 일부러 비켜나가며 이미지의 본질을 시험한다.
다만 신체과학과 일상성의 관점에서 이 제품을 ‘걷기 위한 신발’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일반 신발의 밑창은 발바닥의 피부를 마찰·압력·열·오염물로부터 분리하고, 쿠션 구조는 반복 보행에서 발과 하지에 전달되는 충격을 조절한다. 이 샌들은 앞발과 발바닥을 대체로 노출시키므로, 거친 도로·도심 보도·장거리 보행의 보호 장비로는 기능적으로 부적합하다.
패션쇼의 런웨이와 레드카펫은 평평하고 통제된 표면이며, 짧은 시간의 연출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이 물건은 신발의 실용성을 겨루기보다, “아름다움은 불편함을 감수할 만큼 강력한가”라는 오래된 패션 산업의 질문을 다시 꺼낸다.
샤넬은 신발을 줄인 것이 아니라 질문을 늘렸다
그럼에도 이 신발은 이미 한 가지를 해냈다. 사람들이 발을 보게 만들었고, 신발의 기능을 의심하게 만들었으며, 가격표가 나오기도 전에 명품의 가치를 토론하게 만들었다. 샤넬이 지운 것은 밑창만이 아니다. 신발을 바라보는 우리의 익숙한 기준도 함께 지웠다.
신발은 줄였지만, 질문은 더욱 늘렸다. 왜 신발에는 반드시 밑창이 있어야 하는가. 발을 감싸지 않고도 신발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가격이 높으면 기능이 부족한 물건도 예술적 오브제가 되는가. 럭셔리는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가, 아니면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보는지 시험하는가. 맨발의 자유를 말하면서도 그 자유를 특정 브랜드의 로고와 희소성으로 포장하는 것은 해방인가, 또 다른 규율인가.
결국 이 신발은 ‘발을 위한 제품’이 아니라 논쟁을 위한 제품, ‘신는 물건’이라기보다 ‘보이기 위한 장치’에 가깝다. 샤넬은 뒤꿈치 한 조각과 두 가닥의 끈으로 신발의 정의를 흔들었고, 소비자는 그 빈 공간을 웃음·비판·호기심·공유로 채우고 있다. 가격과 상업 출시를 둘러싼 정보공백까지 포함해, 이번 힐 캡은 2026년 럭셔리 패션이 만든 가장 영리한 ‘미완성의 완성품’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