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현주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캐나다와 접한 온타리오호를 미국 연방정부 표기상 ‘아메리카호(Lake America)’로 바꾼 데 이어 대서양과 태평양까지 개명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이번 조치는 미국 내 연방기관의 지도·문서·데이터베이스에 적용되는 행정 조치일 뿐, 캐나다·국제기구·민간 지도 플랫폼에 동일한 이름을 강제할 법적 효력은 없다.
호수에서 대양으로 번진 ‘명명 정치’
트럼프 대통령은 8월 2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온타리오호를 ‘아메리카호’로 부르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우리는 만(gulf)을 하나 갖고, 호수도 하나 갖게 됐다. 이제 필요한 것은 바다”라며 “대서양 및·또는 태평양의 이름을 바꿀 수도 있고, 둘 다 바꿀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재 대서양·태평양의 개명은 행정명령이나 입법 절차로 구체화되지 않은 대통령의 발언 단계다.
백악관이 공개한 행정명령은 내무장관이 미국 지명위원회(Board on Geographic Names)와 협의해 30일 이내에 연방 지명정보시스템(GNIS)에서 ‘Lake Ontario’를 ‘Lake America’로 변경하고, 기존 명칭에 대한 참조를 삭제하도록 지시했다. 또한 연방정부의 지도, 계약서, 문서, 대외 커뮤니케이션에서 새 명칭을 사용하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라고 규정했다.
이는 “즉시 효력”을 선언한 정치적 메시지와 달리, 제도 집행은 적어도 30일의 행정적 전환 기간을 전제로 한다는 뜻이다. 백악관은 서명 당일 USGS(U.S. Geological Survey, 미국지질조사국)가 전자 문서와 GNIS상 명칭 변경을 처리했다고 밝혔지만, 행정명령 원문은 연방기관 전반의 후속 정비를 위해 30일의 기한을 제시한다.
숫자로 본 온타리오호의 현실
온타리오호는 단순한 지역 지명이 아니다. 북미 오대호 가운데 가장 동쪽에 위치한 국제 수역이며, 미국 뉴욕주와 캐나다 온타리오주 사이에 놓여 있다. 수면적은 약 1만9011㎢, 저수량은 약 1631㎦, 최대 수심 약 244m, 섬을 포함한 해안선 길이는 약 1146㎞로 알려져 있다. 면적 기준으로는 오대호 중 가장 작지만, 수량은 이리호보다 많다.
‘온타리오’라는 말은 캐나다 주(州)의 이름에서 파생된 것이 아니라 호수 명칭이 먼저였다는 것이 역사·언어 연구의 일반적 설명이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Ontari’io’가 “호수는 아름답고, 크다”는 뜻이라며 이 명칭이 400년 이상 됐고, 캐나다 연방 성립과 미국 독립선언보다 앞선다고 반박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행정명령에서 미국이 호수 수량의 대부분을 보유하고 깊은 수역도 미국 영토에 있다고 주장하며, 호수를 국가 경제와 안보에 중요한 자원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호수 자체가 양국 국경과 연결된 공유 수역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미국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캐나다 정부, 캐나다 지도, 국제 수로 관련 기관 또는 제3국의 표기를 구속할 수 없는 이유다.
‘미국 우선’의 지도화
이번 개명은 2025년 1월 20일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미국의 위대함을 기리는 명칭의 복원(Restoring Names That Honor American Greatness)’ 행정명령의 연장선이다. 당시 행정명령은 멕시코만의 미국 내 공식 표기를 ‘아메리카만(Gulf of America)’으로 바꾸고, 알래스카 최고봉 데날리의 연방 표기를 매킨리산으로 되돌리는 내용을 담았다.
백악관은 멕시코만을 미국 경제와 세계 경제의 미래를 형성할 “핵심적” 해역으로 규정하면서 명칭 변경의 배경으로 에너지·수산·물류 등 경제적 가치를 강조했다. 그러나 이 조치 역시 미국 연방정부의 명명 권한 범위에서 효력이 발생하는 것이며, 멕시코 또는 국제사회가 기존 명칭을 포기해야 하는 국제법적 의무를 만들지는 않는다.
디지털 지도는 이 같은 명명 주권의 한계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구글은 2025년 미국 GNIS의 변경을 반영해 미국 내 이용자에게는 ‘Gulf of America’, 멕시코 내 이용자에게는 ‘Gulf of Mexico’를 표시하고, 다른 국가의 이용자에게는 두 명칭을 병기한다고 밝혔다. 하나의 해역이 이용자의 접속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이름으로 나타나는 ‘분할 지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온타리오호 역시 동일한 문제가 더 복잡하게 재현될 수 있다. 멕시코만은 미국·멕시코·쿠바에 접한 광역 수역이지만, 온타리오호는 미국 뉴욕주와 캐나다 온타리오주가 직접 맞닿는 국경 호수다. 미국 연방 지도와 문서는 ‘아메리카호’를 쓸 수 있지만, 캐나다는 ‘온타리오호’를 유지할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다.
결과적으로 하나의 호수에 복수의 공식적·비공식적 명칭이 병존하는 ‘지도상의 이중 표기’가 장기화할 수 있다. 이는 추측이 아니라, 행정명령의 적용 대상이 미국 연방정부로 한정돼 있고 캐나다가 기존 명칭을 유지하겠다고 공식 천명한 데 따른 제도적 귀결이다.
간판은 바꿔도 법은 못 바꿨다
트럼프식 명명 정치의 핵심은 행정권으로 빠르게 실행 가능한 상징 조치라는 데 있다. 하지만 이름을 실제로 바꿀 수 있는 권한은 대상의 법적 성격에 따라 크게 다르다. 자연지명은 미국 연방 기록의 표기를 바꾸는 수준에 머물 수 있고, 법률로 설치된 공공기관은 의회가 부여한 법정 명칭을 대통령이나 이사회가 단독으로 바꾸기 어렵다.
대표 사례가 워싱턴DC의 케네디센터다. 트럼프 지지 성향 이사회는 2025년 말 공연장에 트럼프의 이름을 추가하려 했지만, 2026년 5월 연방법원은 이사회가 법정 권한을 넘었다고 판단했다. 크리스토퍼 쿠퍼 연방지방법원 판사는 “의회가 케네디센터의 이름을 정했으며, 이를 바꿀 수 있는 주체도 의회뿐”이라고 판시했고, 트럼프 이름이 포함된 외벽·디지털 표지와 공식 자료의 제거를 명령했다.
항소심도 7월 트럼프 이름을 항소 기간 동안 다시 외벽에 올리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8월에는 케네디센터 측이 새로운 표기 시도를 당분간 보류하겠다고 밝혔지만, 건물 외관에 “Restored and Renovated by President Donald J. Trump”라는 문구를 넣는 방안 등이 여전히 법정 공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즉 ‘트럼프-케네디센터’라는 공식 명칭은 법적으로 확정된 상태가 아니라, 법원의 제동을 받은 상태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국방부를 ‘전쟁부(Department of War)’로 되돌리려는 시도도 같은 맥락이다. 백악관의 2025년 9월 행정명령은 국방부의 항구적 명칭 변경에 필요한 조치를 60일 이내 대통령에게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행정명령 자체가 영구적 법정 개명을 완결한 것이 아니라, 그에 필요한 절차를 검토·권고하도록 한 것이다. 따라서 국방부의 법정 명칭이 의회 입법 없이 완전히 ‘전쟁부’로 바뀌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명칭 갈등이 남긴 세 가지 비용
첫째, 외교 비용이다. 온타리오호 개명은 관세 갈등으로 악화한 미·캐나다 관계에 상징적 마찰을 추가했다. 로이터는 이번 조치가 양국 간 수백억 달러 규모 교역을 둘러싼 관세 갈등이 벌어지는 와중에 나온 것이라고 보도했다. 지도 위의 명칭 변경이 무역·안보·국경관리 등 실물 현안의 협상력을 높인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상대국의 역사·정체성을 건드려 정치적 반발을 키울 가능성은 크다.
둘째, 행정·정보 비용이다. 연방 데이터베이스, 지도, 계약, 법령 해석 자료, 안내문, 교육·관광 콘텐츠를 동시다발적으로 정비해야 한다. 특히 국경 수역의 경우 미국 연방 데이터와 캐나다 공공데이터, 민간 지도 서비스, 항만·해운 정보가 다른 명칭을 병존할 경우 검색·표기·교육·위기 커뮤니케이션에서 불필요한 혼선이 생길 수 있다. 백악관 행정명령도 이 때문에 GNIS뿐 아니라 정부 문서와 지도 전반의 표기 지침을 별도로 요구했다.
셋째, 언론 자유와 표현의 비용이다. AP통신은 ‘Gulf of Mexico’ 표기를 계속 사용하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요구한 ‘Gulf of America’를 병기하는 편집 방침을 택했고, 이후 백악관의 일부 취재 접근 제한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2025년 4월 연방법원은 정부가 AP의 표현을 이유로 취재 접근을 제한한 것은 수정헌법 제1조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크다고 판단했으나, 이후 항소심 절차에서는 백악관이 대통령 집무실·전용기 같은 제한 공간의 접근을 통제할 수 있다는 취지의 결정도 나왔다. 명칭을 둘러싼 갈등이 지리·외교의 문제가 아니라, 언론의 편집 독립성과 접근권 문제로까지 번진 셈이다.
트럼프의 ‘간판갈이’는 단순한 말장난이나 즉흥적 이벤트로만 치부하기 어렵다. 행정명령 하나로 미국 정부가 쓰는 지도와 문서의 언어를 바꾸고, ‘미국 우선주의’를 가장 직관적인 시각 언어로 각인시키는 정치 전략이기 때문이다. 다만 지도에서 바꾼 이름이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이름이 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온타리오호와 멕시코만 사례가 보여주듯, 행정권은 국내 행정표기를 바꿀 수 있어도 공유 수역의 역사, 타국의 주권, 국제적 관행, 법률이 부여한 기관 명칭까지 일방적으로 재설계할 수는 없다.

































































